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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진작과 위작의 미묘한 경계선

기사승인 2017.09.19  13:3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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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교해지는 불상 위작, 진위 판별 어려워져

   
▲ 연가7년명 금동일광삼존불상, 고구려 539년, 높이 32.7cm.

문화재를 얘기할 때 항상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위작의 문제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위작이란 진품이 아닌 미술품을 말하는데, 작품이 충실하게 그 시대의 풍격을 표현하였으나 이익을 꾀하고 세상 사람들을 속이기 위한 목적으로 옛것을 모조한 작품을 말한다. 위작은 흔히 복제, 모조 등과 혼용되어 사용되기도 하지만 그 개념과 의미에서는 미세한 차이가 있다.

중국에선 위진남북조시대부터
각종 불상 관련 기물 모조 시작
청대에 모조작업 최고 성행

일제 이르러 위작 본격 유통
1970년대 이후 급격히 늘어나
인터넷경매로 합법 유통되기도
문화재 기준·가치에 혼란 야기


중국의 경우, 위진남북조시대부터 서화 감식이 시작되면서 각종 불상과 관련 기물들을 모조하였다. 당대에는 천보연간(742~755)부터 200여년간 강소성 구용현(句容縣)에 작업장을 설치하여 불상, 동발, 정병, 금은기와 같은 고기(古器) 등을 모조하여 제작하였다. 특히 북송 휘송 때에는 옛것을 좋아하고 숭상하는 복고바람이 유행하여 유교, 도교, 불교의 각종 조상 외에 청동기, 도자기 등 모조하지 않는 것이 없을 정도였다. 청대에 이르면 건륭황제가 대량의 금불과 금동불상, 청동불상을 모조하라고 명하게 되면서 불상의 모조작업이 가장 성행하였다. 그래서 청말에서 민국시기에는 북경 유리창을 비롯하여 동효시(東曉市), 낭방두(廊坊頭), 선어구(鮮魚口), 안정문(安定門) 밖의 황사(黃寺) 부근에 전문적으로 불상을 제작하는 소작방(小作坊), 즉 불작(佛作)이 많이 출현하였는데 주로 금동불상, 청동불상, 목조불상들을 제작하였다.

우리나라는 위작의 역사를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일제강점기(1910~1945) 때 본격화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시기에는 일본인들에 의해 합법적으로 문화재 복제품이 만들어지고 위작들이 유통되었다. 실제로 1931년에 발간된 ‘고고학 관계자료 모형도보’에는 우에노(上野) 제작소에서 교육 전시용으로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 유물 400여점을 복제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중 우리나라 유물은 고려시대 인종 시책(諡冊)을 비롯하여 평양 석암리 9호분 출토 황금대교, 경주 식리총 금동제신리, 경주 입실리 동검 등 총 17건 53점이 포함되어 있다. 당시 복제품은 주로 일제식민사관을 강화하기 위해 중국에서 영향을 받은 평양 낙랑무덤 출토의 고고학 관련 유물이었다. 서문에 적혀 있듯이, 당시 복제품은 악덕상인에 의해 진품으로 팔릴 정도로 유사하게 만들어졌으며 학교의 역사표본이나 박물관, 연구실에 장식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사실상 일제강점기에 유물 복제품이 얼마나 많이 만들어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상당한 숫자의 복제품이 진품으로 둔갑하여 거래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해방 직후 국립경주박물관이 일본인들로부터 압수한 약 2600여점의 문화재 중 중국 북위시대의 불상이 최근 복제품으로 밝혀졌다.

   
▲ 계미명 금동일광삼존불상, 고구려 563년, 높이 17.5cm.

가짜 불상을 진품으로 속여 팔다가 덜미가 잡힌 사기사건들이 1930년대 ‘조선중앙일보’와 ‘동아일보’ 등 여러 신문에 실려 있다. 전라도 광주에 거주하는 김모씨는 진유(眞鍮)로 금부처를 여러 구 만들어 소금물에 담근 뒤 땅속에 파묻었다가 녹이 생기면 고대 금불인 것처럼 속여 일본인에게 팔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또 다른 사건은 경성 부하에 거주하는 직물세공 직공 조모씨와 동업자 이모씨 2명이 가짜 불상을 고대의 골동품이라고 속이고 평양과 신의주에서 다량 판매하여 폭리를 취하였다가 경찰에 발각되었던 일이다. 이런 불상 위작 사기사건은 1970년대 이후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규모가 커지고 제작기술도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정교하고 치밀해졌다.

금속제 불상의 경우는 인분이나 소변에 3~4년 정도 묻어두면 검고 두터운 녹이 생기게 된다. 또한 암모니아, 황화칼륨, 질산 등 화학약품을 톱밥(흡수제)에 섞어 불상과 함께 비닐에 넣어두면 자연스럽게 녹이 생기는데 녹층이 얇은 편으로 붓자국이 남는 경우도 있다. 녹은 불상 재료의 합금비율이나 보관된 장소, 시간에 따라 여러 색깔을 띠기 때문에 녹을 위조하는 방법도 다양하다. 고대 불상은 대부분 전통 도금인 아말감기법(수은도금)으로 처리하는데 공정과정이 복잡하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대신에 금이 쉽게 떨어지지 않고 선명한 금색을 띠는 것이 특징이다. 위작 불상을 만들 때에는 대개 가격이 싸고 작업을 빠르게 할 수 있는 전기도금을 한다. 전기도금은 두께가 매우 얇고 표면이 매끈하거나 광택이 일정하며 대체로 붉은 색을 띠고 있다. 금속의 합금비율에서도 진위 여부를 알 수 있다. 금동불의 경우, 구리와 주석을 많이 사용하지만 납이나 아연을 섞기도 한다. 요즘 만든 불상은 구리나 주석 보다 가격이 훨씬 싼 실리콘을 주로 사용하며 니켈과 같은 합금제를 사용해도 위작임을 알 수 있다.

몇 해 전 서울에서 열린 ‘2004 남북공동기획 고구려문화전’에 북한 조선중앙력사박물관에 소장된 연가7년명(延嘉七年銘)의 금동일광삼존상이 전시된 적이 있다. 이 삼존불상은 고구려 불상으로 간송미술관 소장의 계미명(癸未銘) 금동삼존불상의 형태를 따르면서 광배 뒷면에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연가7년명 불입상의 명문이 새겨져 있다. 이럴 경우, 불상은 위작일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예를 들면, 연가7년은 539년이고 계미명은 563년으로 연대상 거의 차이가 없다. 그러나 계미명 금동삼존불상과 비교해 보면, 본존불의 협시가 보살상이 아니라 여래상으로 표현되었다. 여래상 3구를 배치한 삼불형식은 삼세불(三世佛) 또는 삼신불(三身佛)이든지 간에 통일신라시대 이후에 등장하기 때문에 고구려 불상에서는 볼 수 없다. 더욱이 얼굴이나 옷주름 등 세부표현에서 선조(線彫)가 불분명하고 예리하지 못하여 고구려 불상과는 확연하게 다르다. 광배에 장식된 화염무늬와 당초무늬, 대좌의 어자문 등에서도 어색하면서도 치졸한 조각기법을 보여준다.

불상은 갈수록 위작이 정교해지면서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들’이 나오면서 진위를 판단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근래에는 중국 북경이나 북한에서 가짜로 만들어진 불상들이 온라인을 통해 우리나라 고미술상과 직접 거래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어 이전보다 훨씬 시간적으로 빨라지고 간편화되었다. 국내에서도 서울 옥션(Aution)이나 코베이(Kobay)와 같은 전문적인 인터넷 경매시장을 통하여 위작들이 합법적으로 유통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 같이 문화재에 대한 위작들이 무분별하게 만들어지고 때로는 다량의 위작들이 중국을 거쳐 국내에 들어와 유통되면서 문화재의 기준과 가치에 혼란을 야기하는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이러한 일들이 확산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문화재의 감정에 더욱더 주의를 요한다.

이숙희 문화재청 문화재감정위원
shlee1423@naver.com
 

[1408호 / 2017년 9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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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숙희 shlee142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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