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7. 이원수의 ‘밤중에’

기자명 신현득

국민 동요 ‘고향의 봄’ 지은 시인이
일제 수난 속에 시로 쓴 독립선언서

“왜 잠 깼니? 어서 자거라. 어서 자거라!”

이 구절에서 6·70대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초등학교 시절(당시는 국민학교) 교과서에서 배웠던 동시 한 편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가난했던 시절, 잘 살아보려고 애썼던 시대의 어린이들에게 교과서에 실려 심금을 울렸던 명작 한 편을 살펴보자.

삯바느질로 생계를 이어가는
어머니의 사랑·염려 담은 시
1943년 일본말 시 사이 끼여
‘아이생활’지에 발표한 수난도


밤중에 / 이 원 수

달달달달 ···

어머니가 돌리는
미싱 소리 들으며
저는 먼저 잡니다,
책 덮어 놓고.
“어머니도 어서
주무세요, 네.”

자다가 깨어보면
달달달 그 소리.
어머니는 혼자서
밤이 깊도록
잠 안 자고 삯바느질
하고 계셔요.

돌리시던 미싱을
멈추시고
“왜 잠깼니?
어서 자거라.”

어머니가 덮어주는
이불 속에서
고마우신 그 말씀
생각하면서
잠들면 꿈속에도
들려옵니다.

“왜 잠깼니?
어서 자거라.
어서자거라.”

잠들었던 아이가 깨어보니 어머니는 아직도 미싱을 돌리고 있다. 밤늦도록 삯바느질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시의 분위기로 보아서 아버지가 있는 가정은 아닌 것 같다. 어머니와 아이 두 식구가 어머니의 삯바느질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게 분명하다.

아이는 졸음이 와서 책을 덮으며 “어머니도 어서 주무세요.” 하고 잤다. 밤중에 깨어보니, 아직도 “달달달달…” 어머니의 미싱 소리다. 어머니가 깊은 밤까지 쉬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어머니가 잠을 깬 아이를 보고 “왜 잠 깼니?” 한다. 아이를 푹 재우고 싶은 어머니의 염려였다. 사랑의 목소리였다. “왜 잠 깼니? 어서 자거라. 어서 자거라.” 다시 눈을 감은 아이는 어머니의 그 고마운 목소리를 꿈나라에서도 듣는다.

나이 든 독자들은 초등학교 때의 기억에 남은 동시 한 편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밤중에’는 1950년대에서 1960년대까지 국어 교과서에 실려 있던 시다. 지은이는 국민동요 ‘고향의 봄’(홍난파 곡)으로 널리 알려진 이원수(李元壽, 1911~1981) 시인이다.

이 작품은 아픈 역사를 지니고 있다. ‘밤중에’는 일제 말기였던 1943년 ‘아이생활’지 9월호 17쪽과 18쪽에 걸쳐서 게재 되었다. 일제는 1940년에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를 폐간시켰고,  1941년 12월에는 태평양전쟁을 일으켰다. 우리 말 아동잡지로는 유일하게 남았던 ‘아이생활’지는 그들의 간섭에 일본말 기사 절반을 섞어야 했고, 황국신민서사를 앞쪽에다 실어야 했다. 이원수의 시작품도 일본말로 된 시 사이에 끼여서 실렸는데 원제목은 ‘어머니’였다. 이러한 수난 속에서 발표된 이 동시작품은 시로 쓴 독립선언서였던 것이다.

이원수는 마산 보통학교 6학년 때에 방정환 주간의 ‘어린이’(1926년 4월호)에 동요시 ‘고향의 봄’이 뽑히면서 아동문학 창작을 시작했다. 이후 동화 창작에도 힘써 많은 동화작품을 남기기도 했다. ‘고향의 봄’이 나라와 민족 노래로 불려지면서 지은이 이원수는 어린이들 사이에 ‘고향의 봄 할아버지’로 불리는 인기인이 되었으며, 그가 세상을 마치던 1981년 1월에는 신문 한 면을 이원수 일대기로 채운 어린이신문이 있었다. 

신현득 아동문학가·시인 shinhd7028@hanmail.net

[1408호 / 2017년 9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