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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라훌라와 출가

기사승인 2017.09.19  13:4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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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훌라님, 출가는 아무런 공덕이 없습니다”

‘부처님이 라훌라에게 이르셨다. “네가 유마힐의 병문안을 가라.” 그러자 라훌라가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도 그의 병문안을 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옛적에 비야리성 여러 장자의 아들들이 저에게 출가하여 도를 닦는 것이 무슨 공덕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제가 그들을 향해 출가의 공덕과 이익에 대해 말했는데 유마힐이 제게 찾아와 이렇게 말했습니다. “라훌라님 출가의 공덕과 이익은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출가에는 이익과 공덕이 있다거나 없다거나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유위법에는 출가한 이가 있지만 무위법에는 출가한 이도, 공덕과 이익도 없는 것입니다. 출가에는 이쪽도 없고 저쪽도 없으며 중간도 없습니다. 외도들의 육십이견을 여의고 모든 마군을 항복받고 헛된 명성을 초월하며 모든 허물을 여의는 것이 참된 출가입니다.” 그리고는 장자의 아들들을 향해 “그대들은 정법 가운데에서 출가하라고 권하였습니다. 이에 장자의 아들들이 부모의 허락을 받아야한다”고 대답하자 유마거사가 그들에게 말하였습니다. “꼭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 만일 그대들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일으키면 그대로 구족계를 받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장자의 아들들이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발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그의 병문안을 갈 수 없습니다.’

불교 특징 중 하나가 출가제도
많은 경전에서 출가공덕 찬탄
유마거사는 무아·공 입장에서
분별심 벗어나는 ‘출가’ 강조


불교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출가제도가 있다는 점이다. 출가는 불도를 깨닫기 위해 가정을 떠나 구도의 길을 걷는 것을 말한다. 세상 사람들은 대부분 가정을 중심으로 삶을 영위하려 한다. 추구하는 가치나 행복도 가정 속에서 이루려 한다. 출가는 이러한 삶의 방식을 포기하고 열반을 성취하기 위해 오로지 수행을 생활로 삼는다.

‘미린다왕문경’에서는 미린다왕이 나가세나 존자에게 출가의 목적을 묻자 “괴로움을 없애고 집착을 벗어나 오로지 해탈을 얻기 위함”이라고 대답하고 있다. 또 ‘오복덕전경(五福德田經)’에서 부처님은 출가의 목적을 “생사를 벗어나려는 마음을 내어 수도하기 위해, 사치를 버리고 법복을 입기 위해, 목숨을 던져 불법을 따르기 위해, 모든 애욕과 집착을 떠나기 위해, 대승법을 간절히 구하여 중생을 건지기 위해서”라고 설하고 있다. 이와 함께 출가의 공덕에 대해서는 많은 경전들이 극구 찬탄하면서 출가를 권유한다. 그러고는 그 같은 목적으로 출가를 하면 그 공덕이 말할 수 없이 크다고 가르친다.

‘출가공덕경’에서는 “높이가 삼십삼천에 백천(百千)의 탑을 세우는 것보다도 하루 출가의 공덕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혹 출가하여 그 행위가 모자라더라도, 머리를 깎고 가사(袈裟)를 걸친 모습에는 천마(天魔)도 두려움을 갖는다고 하였으며 ‘대집경(大集經)’에는 머리를 깎고 가사(袈裟)를 입으면, 천인이 공양한다고 하였다.

라훌라는 부처님의 혈육이다. 그도 부처님처럼 왕위를 버리고 대도를 성취하기 위해 출가의 길을 걸었다. 왕으로서의 한번 생보다는 출가하여 불도를 깨닫는 것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공덕이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마거사는 이러한 출가의 공덕을 전혀 다른 식으로 바라보고 있다. 진정한 출가에는 아무런 공덕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일체가 공이며 무아이기 때문이다.

공과 무아의 도리에서는 출가를 했으나 출가를 한 주체로서의 나가 없다. 나가 있으면 유위법이 되어 공덕도 있고 과보가 있겠지만 나가 없으면 무위법이 되어 공덕과 과보가 성립되지 않는다. 나가 없는데 공덕을 누리고 복을 받을 일이 있겠느냐는 것이다. 출가란 생멸하는 유위에 들기 위함이 아니라 불생멸의 무위에 들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출가는 출가했다는 생각을 움켜쥐고 거기에 머물러서도 안 되며 그에 따르는 공덕이나 과보를 기다려서도 안 된다. 수준이 높은 출가는 무아와 공의 입장에서 행해져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출가는 비단 집을 떠나 가사를 걸쳐야만 되는 것이 아니라 몸이 세속에 있더라도 즉시에 올바로 발심하여 무아와 공의 이치를 굳게 믿는 것으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제열 불교경전연구원장
yoomalee@hanmail.net
 

[1408호 / 2017년 9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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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열 yoomal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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