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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무불성(狗子無佛性)

반려견의 불성과 본성

불교에는 개에 관한 이야기들이 많다. 보신탕 문화의 잔재가 아직 남아있지만 불자들은 예외였다. 불자들에게 개는 가까운 인연의 환생이라는 의미가 강하다. ‘우란분경’에 개로 환생한 어머니를 제도한 목련존자의 이야기가 나온다. 지옥에 가 있는 어머니를 개로 환생케 한 뒤 제도해 극락정토에 천도시켰다는 내용이다. 그래서 불자들은 개를 부모나 친인척 같은 가장 가까운 인연의 환생으로 여긴다. 사찰 설화에도 개로 환생한 부모에 대한 이야기들이 넘쳐난다. “개로 환생한 어머니를 품에 안고 해인사 팔만대장경을 친견했다”는 김갑용 이야기는 대표적이다. 그러나 불자들에게 가장 강한 인상을 남기고 있는 개 이야기는 따로 있다. 구자무불성(狗子無佛性)이라 불리는 화두다. “개에게도 불성이 있느냐”고 묻는 학인의 질문에 조주 스님은 “없다”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다른 학인이 같은 질문을 하자 이번에는 “있다”라고 대답했다. 조주 스님이 이렇게 대답한 이유가 어디 있는지 참구하는 것이 이 화두의 요체다.

개에 관한 불미스런 뉴스가 늘고 있다. 개를 식구로 여기고 함께 생활하는 가정이 늘면서 일어난 현상이다. 개 줄을 하지 않고 공원이나 거리를 산책해 위압감을 주는 것을 넘어 목줄을 하지 않은 개가 사람을 물어 중상을 입히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다. 개의 조상은 늑대다. 개가 아무리 온순해도 늑대의 본성이 남아있다. 사람을 무는 것은 결국 개의 본성을 간과한 개 주인들의 책임이다. 개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이들에게 강한 처벌을 해야 한다는 공분이 거세게 일고 있는 이유다. 보신탕 문화가 잔재했던 이 땅에서 반려견이 늘어나는 것은 놀라운 변화다. 생명존중사상에 대한 인식의 확장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그러나 개로 인한 사고가 계속적으로 발생한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개를 보며 불성의 확장을 느끼기 전에 물지 안 물지 판단해야 하는 그런 상황이라면 올바른 변화라 할 수 없다. 이제 개는 가축이 아니라 사회의 일원이 됐다. 평화로운 공존을 위해서라도 바른 반려견 에티켓 정착과 함께 일탈행위에 대한 강력한 법적조치가 필요한 시점이다.

김형규 법보신문 대표 kimh@beopbo.com


[1409호 / 2017년 9월 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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