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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개혁은 과거 망령 떨치는 의식

지난 8월 말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2차 파기환송심 판결이 이루어졌다. 4년 형이 선고됨으로써 국정원의 정치개입, 선거개입에 대한 유죄가 거의 확정된 셈이다. 어버이연합 추선희 사무총장이 국정원으로부터 돈을 받은 사실을 인정하는 등 국정원의 국내 정치개입, 선거개입에 관한 증거들이 계속 나오고 있어 국정원의 근본을 다시 생각하게끔 하고 있다. 정말 이 시점에서 진지하게 다시 물어야만 할 것이다. 과연 국정원이란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가? 과연 존재할 필요는 있는 것인가?

일단 국정원의 필요성에 대한 물음은 유보해 두기로 하자. 이렇게 존재한다면 과연 있을 필요가 있는가를 묻는 것이지, 그 존재 자체가 불필요하다고 말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렇게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것, 정말 이렇게 있으려면 차라리 없애야 된다는 말이 성립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렇기에 진지하게 그 근본에 대한 물음을 던져야 할 시점이라는 것이다.

필자의 대학 시절에 제일 무서운 것은 중앙정보부, 줄여서 중정이었다. 거기 끌려간다는 것은 거의 지옥을 다녀오는 것으로 생각되는 곳, 그곳이 중정이었다. 그 때의 중정은 정권의 충실한 하수인이었다. 그리고 박정희 정권이 유신을 통해 독재를 장기화하려 하면서, 결국 독재의 충실한 하수인이 되었다. 전두환 정권 이후 안기부로 국정원으로 이름은 바뀌고 그 위상과 역할도 달라졌는지 모르지만, 그 뿌리 깊은 성향이 여전히 이어져 오고 있는 것 같다.

그것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말에서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그는 이명박 정권의 정책이 잘 추진되도록 하는 것이 국정원의 임무라고 강조해 지시하고 있다.(2009년 5월15일) 가장 근본적인 혼동, 국가와 정권에 대한 혼동을 바탕으로 국정원의 임무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종북 좌파 세력들이 우리사회에 발붙이지 못하도록 하는 것에서 국정원의 존재의미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2012년 6월15일) 문제는 여기서 종북 좌파라는 이름이 정권의 필요에 의해 자신의 적대 정치세력을 탄압하기 위해 멋대로 붙여질 수 있다는 점이다. 정권과 국가를 동일시하고, 국가 안보라는 이름아래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과거의 망령이 수십 년을 뛰어넘어 다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 다시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역대 정권들이 자기 정권의 유지를 위해 이런 국정원의 어두운 측면을 용인해 왔다고 보아야 한다.

문재인 정권의 출범 초기, 국정원의 문제가 본질적으로 제기된 이 시점이야말로 이러한 국정원의 모습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기회이다. 국정원의 선거개입은 박근혜 정권의 정당성을 뿌리로부터 흔들만한 일이었으며, 문재인 대통령이야말로 그러한 국정원의 공작에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당사자라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과감하게 국정원을 개혁할 명분과 힘을 지니고 있다.

물론 오랜 동안 힘을 휘둘러오던 기관이고, 국가와 중요 인물에 대한 기밀을 가장 많이 가진 기관이기에 그 위상을 유지하기 위한 커다란 저항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올바른 국가기관으로 바르게 선다는 확실한 대의명분으로 난관을 헤쳐 나가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온 국민이 이 대의명분에 동의하고, 또 저항세력도 쉽게 딴죽을 걸 수 없는 시점이다. 이렇게 국정원 문제에 대한 큰 가닥이 잡혔을 때 정권 스스로 온 국민 앞에 당당히 그 큰 지향을 밝힐 필요가 있다. “절대로 정권을 위한 하수인으로 국정원을 이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그에 걸맞는 개혁과 인사를 단행해야 할 시점이 아닌가 싶다.

비밀스런 힘을 가진 기관이 그 힘을 잘못된 방향으로 사용하기 시작하면 그 폐해는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러하기에 그러한 힘을 규제하고, 잘못된 힘의 사용을 막는 제도와 조치는 아무리 엄혹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런데 지금까지 재판과정을 살펴보면 사법부도 정권과 비밀스런 힘에 휘둘려 온 혐의를 벗을 수 없다. 이제 상황도 조성되고 명분이 분명해진 지금, 무소불위의 힘을 지닌 과거의 망령을 물리치는 거룩한 의식을 치러야 하지 않을까 싶다.

성태용 건국대 철학과 교수 tysung@hanmail.net

[1409호 / 2017년 9월 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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