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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아미타불의 본원이 진실하다면

“스승을 믿고 스승의 말씀까지도 믿습니다”

참으로 멀리서 오신 걸음이었습니다. 아마도 서울과 부산 거리보다는 훨씬 더 먼 거리였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20년 동안이나 지도해 주신 스님이 떠난 뒤로 못내 그립기도 하고, 또 신앙상의 가르침이 목말라서 찾아온 걸음이었습니다.

내용보다 사람 믿음 우선
자기자신을 믿지 못하지만
스승 깊게 믿고 수행 진력

그런데 정작으로 오랜 만에 만나 뵙게 된 스님께서는 딱 부러지게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흔들리는 모습만 보입니다. 제자들이 그렇게 멀리 찾아온 뜻은 결국 “극락왕생의 길을 묻고자 함에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염불 외에 (또 다른) 왕생의 방법을 안다거나, 또는 왕생의 법문(法文) 등을 제가 알고 있으리라고 마음속에 궁금히 생각하고 있으시다면, 그것은 크나큰 잘못입니다.”라고 말합니다.

만약 그렇다면 다른 곳의 학승들을 찾아가서 여쭈라고 말합니다. 특별한 법문이나 방법을 알지 못한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그러면, 이 스님이 아는 것은 무엇일까요?

“이 (A)에게 있어서는, 다만 염불을 하여 아미타불의 구원을 입어야 한다고 하신 좋은 분 (B)스님의 말씀을 받아, 이를 그대로 믿을 뿐 그 외에는 각별한 사연을 갖지 못합니다.”

A스님은 B스님의 제자입니다. A스님은 B스님을 ‘좋은 분’이라 말씀하십니다. 선지식(善知識)이라는 뜻입니다. 스승에 대해서 믿는다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스승을 믿으므로, 스승께서 내려주신 가르침을 믿을 뿐이지, 사실 그 내용의 진실성 여부에 대해서는 판단을 중지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의 믿음을 봅니다. 스승에 대한 믿음입니다. 스승에 대한 믿음으로 말미암아서 스승의 말씀 역시 믿는다는 것입니다. 이는 어떻게 보면, 스승의 말씀을 따져서 진리여부를 판단하고, 그를 따르든지 말든지를 판단하라는 불교인식론의 기본입장과는 다르게 보입니다.

내용(法)보다는 사람(人)에 대한 믿음을 우선시합니다. 이번에도 상식과는 다른 길을 갑니다. “염불을 하는 것이 진정 정토에 왕생하는 원인이 되는 것인지, 혹은 지옥에 떨어질 업(業)이 되는 것인지, 그것도 도무지 저는 알지 못합니다.” 모르면서, 스승을 믿고, 연이어서 스승의 말씀까지 믿는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데에는 스승에 대한 판단력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판단력이 없는데, 스승을 믿습니다. 그래서 잘못되면 어떻게 될까요? “저에게 있어서는 설사 (B)스님에게 속임을 당하여, 염불을 함으로 말미암아 지옥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염불 이외의 수행으로 정진 노력해서 성불할 수 있었던 몸이, 염불을 함으로 인하여 지옥에 떨어진다면 그야 속았다는 후회도 있겠습니다만, 그러나 어떠한 수행에도 도달하기 어려운 몸이고 보면, 결국 지옥에 떨어지기 마련이었기 때문입니다.”

스승을 믿는다는 것은 결국 자신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스스로에게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자력(自力)으로 수행 정진하여 성불할 수 있었던 몸이라면, 그런 근기(根機)였는데, 삿된 스승을 만나서 하지 말았어야 할 수행, 즉 염불을 했다고 한다면, 그래서 그 결과로 지옥에 떨어진다면, 지옥에서 후회할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 스님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스스로 그런 자력의 길을 걸어갈 근기가 아니라는 점을 깊이 자각한 것입니다. 그럴 바에야, 어쩔 수 없이 마지막 선택으로 염불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는 고백입니다.

저는 이 말씀에 깊이 공감합니다. 사실, 염불을 권진(勸進)하고 있지만 이 염불법문이 모든 사람들이 다 취해야 할 길이라 생각해서는 아닙니다. 또 이미 참선이나 진언이나 관세음보살염불이나 다른 수행을 하시는 분들조차, 그것을 버리고 염불을 하라고 강요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미 하던 수행법이 있다면 그것을 더욱 굳건히 해가시면 됩니다.

다만 염불은 다른 수행법, 주로 자력의 수행법을 취해서 행할 수 있는 근기와 믿음이 안 되는 근기라면 마지막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베풀어진 것입니다. 그렇기에 굳이 염불을 권진한다는 것이 곧바로 염불이, 정토사상이 최고의 불법이라고 인정받으려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을 다투는 것은 정토신앙의 근본이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어떠했을까요? (B )스님을 믿고서 그 가르침을 받아들여서 염불을 하고 있는 지금, 이 (A)스님 스스로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요? 지옥을 갈 수밖에 없다고 아직도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틀림없이 극락을 갈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안심하고 있는 것일까요?

확신과 안심을 하고 있습니다. 어찌하여 그런 확신과 안심이 가능했던 것일까요? 앞에서 말씀한 것처럼, “염불을 하는 것이 정토에 왕생하는 원인이 되는 것인지, 혹은 지옥에 떨어질 업이 되는 것인지, 그것도 도무지 저는 알지 못합니다”라고 했다면, 확신과 안심을 위해서는 특별한 근거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바로 아미타불의 본원이었습니다. “아미타불의 본원이 진실하다면 석존(釋尊)의 설교 또한 허언(虛言)일 수 없습니다. 석존의 설법이 진실하다면, 선도(善導)대사의 해석이 또한 허언일 수 없습니다. 선도대사의 해석이 진실하다면, (B)스님의 말씀이 허언일 수 있겠습니까. (B)스님의 말씀이 진실하다면, 이 (A)가 말하는 취지 또한 근거가 없다고 할 수 없겠지요.”

(A)스님으로부터 따지고 올라가면, 법통(法統)이 (B)스님으로 올라가고 다시 당나라의 선도대사, 석가모니 부처님, 그리고 마침내는 아미타불이 됩니다. 이는 어떻게 보면, 좀 안 맞는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왜냐하면 아미타불보다 석가모니불이 뒤에 나오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아미타불을 법신(法身)으로 보고, 석가모니불을 화신(化身)으로 보는 방식의 해석이 가능할 것입니다. 보통 아미타불을 보신(報身)으로 보지만, 이렇게 법신으로 보는 관점 역시 없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저로서는 그런 방식의 해석보다는 그저 (A)스님이 모든 문제해결의 만능키(Key)로서 ‘아미타불의 본원’을 주목하고 있다는 점에 주의하고자 합니다. 아미타불의 본원이 진실하냐 아니냐, 문제는 바로 그것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미타불의 본원은 곧 법장보살이었을 때 세웠던 48가지 서원을 가리킵니다. 그것이 진실하냐 아니냐? 이렇게 우리에 게 물어보고 있습니다.

그것이 진실하다고 우리가 판단하고 동의할 수 있다면, 극락은 존재하느냐 않느냐, 또 염불을 하면 극락을 갈 수 있는가 아닌가 하는 문제들은 애당초 문제가 될 수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모든 문제가 해소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렇게 말씀드린 이상은 염불을 택하여 믿으시든가, 혹은 떨쳐버리시든가” 그것은 바로 우리들 몫이라 말씀하십니다.

과연 이런 말씀을 누가 하셨던 것일까요? A스님은 누구시며, B스님은 또 누구실까요? 이러한 말씀이 수록된 책이름은 무엇일까요? 정답은 지난 편지에서 확인해 주십시오.

김호성 동국대 불교학부 교수 lokavid48@daum.net
 

[1410호 / 2017년 10월 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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