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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불갑산 불갑사-해불암- 연실봉-구수재

기사승인 2017.10.16  13:5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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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홍빛 꽃 가득 찬 여기는 찬란한 피안의 숲

   
▲ 산이 피워낸 꽃무릇은 불갑산 중턱을 거슬러 올라가 최고봉인 연실봉에까지 군락을 형성하고 있다.

영광(靈光) 법성포(法聖浦)! ‘성인이 법을 전한 항구’다. 성인은 마라난타(摩羅難陀)다.

백제불교 최초전래지 법성포
法은 불교·聖은 마라난타

실크로드 걸어 백제 땅 밟은
고승은 여환삼매·신통력 소유

여름꽃 상사화 ‘그리움’ 의미
가을꽃 꽃무릇 ‘깨달음’ 상징

산 스스로 피워낸 붉은 꽃
연실봉 정상까지 군락 형성


‘침류왕이 즉위한 해(384) 9월, 인도승려 마라난타(摩羅難陀)가 진(晋. 동진, 317∼420)나라에서 들어왔다. 왕이 그를 맞이하고 궁에 두며 예경했다. 불법은 이로부터 시작됐다.’ (‘삼국사기’)

백제에 최초로 불교를 전한 인물은 인도 승려 마라난타라는 사실을 ‘삼국사기’는 800여년 동안 입증해 오고 있다. 법은 불법(佛法)이다. 부처님 법 이 땅(백제)에 처음 내렸으니 지명(地名) 또한 ‘신령스런 빛’ 영광(靈光)이라 했다.

스님 있는 곳에 절 들어서는 법. 마라난타 스님이 처음 창건한 절은 불갑사(佛甲寺). 백제 최초의 절이니 십간(十干)의 첫째 갑(甲)을 써 ‘첫째(으뜸) 절’ 불갑사(佛甲寺)라 했다. 절을 외호하고 있던 산은 원래 모악산에 속한 봉우리였으나 어느 새 불갑산(佛甲山)으로 명명됐고 최고 봉우리도 ‘연실봉(蓮實峰. 516m)이라 불린다.

대웅전의 창(窓)을 장식한 꽃살문이 참배객들을 반긴다. 녹색과 홍색으로 빚은 연꽃과 국화다. 여느 사찰 대부분이 남향인데 반해 불갑사 대웅전은 서쪽을 향해 자리 잡고 있다. 그 연유가 궁금한데 불갑사가 간행한 ‘백제불교의 초전법륜성지 영광 불갑사’가 의문을 풀어준다.

   
▲ 연실봉 200m 아래의 해불암.

백제시대에는 법성포로 불리기 전에 아무포(阿無浦)라 했다. ‘아무(阿無)’는 ‘나무아미타불’의 ‘아미(阿彌)’를 차용하거나 변형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추측은 마라난타 스님이 처음 이 곳에 도착해서 아미타 정토신앙을 설파한 것에 근거를 두고 있다. 아미타불의 정토는 방위 상 서쪽에 있다. 따라서 대웅전의 서향은 서방정토를 의미한다. 또한 마라난타 스님이 서쪽에서 건너 왔기에 후학들이 스님을 기리려 서쪽으로 잡았다는 설도 있다.

대웅전 용마루 중앙의 보탑이 인상적이다. 용의 얼굴 위에 탑 한 층 올리고는 그 위에 보주(寶珠)를 얹었다. 저 보주는 광대무변으로 퍼져 나가는 진리의 빛, 즉 영광(靈光)을 상징할 터다. 대웅전 정문을 열어 본다. 반전이다! 삼존불은 북쪽에 앉으셔서 왼쪽으로 돌아 남쪽을 보고 계시다.

누구든 대웅전의 닫집과 천정을 본다면 수많은 보주와 연잎에 ‘옴’자를 새긴 무늬, 그리고 다양한 넝쿨문이 선사하는 화려함에 숨이 막히리라. 하나, 다람쥐처럼 생긴 작은 생물체를 따라 기둥 타고 내려오는 익살스러운 용을 본다면 선조들의 해학에 무릎 ‘탁’ 치며 함박웃음 지을 것이다.

불갑산에는 다섯 개의 암자가 있다. 산내 암자 이름 허투루 짓지 않지만 불갑산 다섯 암자는 초발심에서 열반에 이르는 수행 단계를 함축하고 있다. 정진의 수도암(修道庵), 깨달음의 오진암(悟眞庵), 성불의 해불암(海佛庵), 보임의 불영대(佛影대), 열반의 전일암(餞日庵). 영광 법성포에서도 불갑산이 최고 성지임을 선언한 듯한 암명(庵名)이요, 좌선 풀고 나간 포행 산길에서도 깨달음을 향한 선정만큼은 놓지 말라는 선지식들의 사자후다!

한 번에 다섯 암자 순례하는 건 녹록치 않다. 오늘은 해불암으로 향한다. ‘어서 빨리 깨달음에 이르자’는 원력이나 조급함 때문은 아니다. 그 길에 꽃무릇이 군락으로 피어있기 때문이다.

이 산에 절을 짓고 백제 땅에 법을 전한 마라난타는 어떤 스님일까?

‘해동고승전(海東高僧傳·삼국시대 고승들의 전기를 집대성한 책)’은 침류왕이 교외까지 나가 마라난타를 맞이했다고 전한다. 침류왕이 직접 마중 나간 정황에 비춰볼 때 비범한 고승이 곧 동진에서 백제로 입국, 또는 이미 백제 땅을 밟은 스님이 궁궐로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미 인지하고 있었다고 봐야한다. 그 마라난타는 누구인가? 민회식 선생이 ‘간다라에서 영광까지’(영광군청)에 펼쳐놓은 그의 여정을 보자.

   
▲ 땅 위에 핀 꽃은 분홍빛이고 흐르는 물에 핀 꽃은 진홍색이다.

마라난타는 대승불교와 불교예술의 발생지 간다라(Gandhara)의 초타 라호르(Chota Lahore. 파키스탄 북서지역)의 ‘길리 마을’ 바라문(婆羅門)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유산을 거듭했는데 병든 스님을 간호한 공덕으로 마라난타를 낳았다. ‘분드 마을’의 절에서 수행 하던 마라난타 스님은 368년(세납 30세) 고향을 떠나 스왓트(Swat), 길기트(Gilgit)를 거쳐 천산산맥(天山山脈)을 넘어 쿠처(Kucha, 고대 불교왕국. 현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서 수행한 후 돈황(敦煌)에 이르렀고, 스님의 세납 34살이었던 372년 동진에 닿았다. 실크로드에서 4년을 보낸 셈이다.

당시 동진(東晉, 317~420)은 효무제(孝武帝. 372∼396)가 다스리고 있었다. 불교에 심취해 승려들의 친분도 두터웠던 그는 ‘불법을 숭신하여 복을 구하라’고 선언하기도 했으며, 궁 안에 절을 지을 만큼 건축불사에도 남다른 열정을 쏟았던 인물이다. 그러나 치세 말기에는 총기가 떨어져 실정을 거듭했는데 이때 궁중을 드나들던 일부 승려들은 이권에 개입하며 뇌물을 받아 궁중 풍기를 문란케 하기도 했다.

고구려가 전진(前秦)과 교류할 때 백제는 동진과 물꼬를 트고 있었다. 전진 왕 부견이 보낸 순도에 의해 고구려에 불법이 전수됐다.(372) 불교를 중심으로 국민 대통합을 이뤄 낸 고구려는 강해지고 있었다. 이러한 사실을 모를 리 없는 백제도 불교유입에 촉각을 곤두세웠을 것이다. 그렇다면 마라난타는 어떤 경로를 통해 백제 땅을 밟았을까?

‘송고승전(宋高僧傳·중국 당·오대 시대 고승의 전기를 집대성한 책)’은 ‘마라난타는 여환삼매(如幻三昧·요술처럼 신통력을 발휘하는 삼매)를 얻어 물에 들어가도 젖지 않고, 불에 들어가도 타지 않았으며, 능히 금이나 돌을 변화시키는 등 그 조화가 무궁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적시된 내용의 사실여부를 떠나 동진에서 비범한 인물로 평가 받았음을 알 수 있다.

마라난타 스님의 법력과 명성은 사신을 통해 백제에게도 알려졌을 터다. 정보를 입수한 백제는 사신을 효무제에 보내 마라난타의 백제입국을 논의했을 수 있다. 또한 동진에 건넌 간 백제 사신이 마라난타를 직접 만나 불법을 전해 달라 청했을 여지도 있다.

마라난타 스스로 백제행을 단행해 법성포에 첫 발을 내디뎠을 수도 있다. 당시 동진의 불교가 왕실과 결탁해 부패해 가고 있었다는 점, 백제가 불교의 불모지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마라난타 스님의 백제입국 단독 가능성은 높다. 이 설에 무게를 둔다면 한강 유역에 자리했던 궁궐 안의 침류왕이 영광의 마라난타가 도읍으로 온다는 사실은 어떻게 알고 마중까지 나갔을까? ‘해동고승전’에 이런 대목이 있다.

‘마라난타는 인도출신의 승려다. 그는 신통력을 가졌고, 그의 수행 정도는 가히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다.’

동진에 이어 백제 땅에서도 마라난타 스님 특유의 법력과 이적을 보였다는 방증이다. 따라서 법성포에 도착한 직후에도 신이한 일들을 내보였을 터이고, 마라난타의 법력 소식을 전해들은 침류왕이 직접 초청했을 것이다.

아, 꽃무릇이다. 산 곳곳에 피어 있다. 절 주변의 엄청난 꽃무릇은 사람 손길로 조성한 것이지만 산 아래서 중턱에까지 이르는 군락지는 오롯이 산 스스로 피워 낸 것이다. 이른 아침의 청롱한 빛 한 줄기 녹색의 나뭇잎 살짝 비껴 꽃무릇에 앉으니 그 선홍빛 찬란하다. 푸른 하늘 아래의 녹색 숲에 붉은 융단을 깔아 놓은 듯하다.

   
▲ 불갑산 연실봉에서 바라 본 불갑사 전경.

꽃무릇은 꽃과 잎이 평생 만나지 못하는 화엽불상견(花葉不相見)의 운명을 안고 있기에 세간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의미한다. 이와 똑같은 사연을 가진 또 하나의 꽃이 있다. 서로를 그리워하는 상사(相思)를 의미하는 상사화다. 간혹 두 꽃을 혼동하기도 하는데 상사화는 8월 전후로 피는 여름꽃으로 연한 홍자색인 반면 꽃무릇은 9월 중순께 피는 가을꽃으로 붉은 색이다. 꽃잎 모양도 확연하게 다르다. 사찰에서는 꽃무릇을 ‘붉은 상사화’, ‘금선화(金仙花)’라 부르기도 했다. 

예로부터 절은 꽃무릇을 곁에 두었다. 꽃무릇에서 추출한 녹말은 접착성이 있어 경전을 제본하거나 고승의 진영을 붙일 때, 탱화를 제작할 때 요긴하게 쓸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 이건 실용성에 입각 한 얘기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꽃무릇의 또 다른 이름은 ‘만수사화(曼殊沙華)’. 만수사(曼殊沙)는 ‘보드랍다’는 뜻이다. 세상에서 가장 보드라운 꽃을 본 사람들의 마음은 어떻게 사운거렸을까? 예로부터 ‘이 꽃을 보면 악업(惡業)을 여읜다’고 전해져 왔다. 부처님께서 설법 하실 때 하늘에서 내린 천상의 꽃이기 때문이다. ‘법화경’을 보자.

‘이때 하늘에서는 만다라꽃, 마하만다라꽃, 만수사꽃, 마하만수사꽃들이 비 오듯이 내리어 부처님과 모든 대중 위에 뿌려졌으며, 부처님의 넓은 세계는 여섯 가지로 진동하였다.’(‘경전 속 불교식물’서 인용)

천상의 꽃이며 악업을 소멸시키는 꽃. 하여 꽃무릇은 ‘깨달음’, ‘피안’을 상징한다. 불교성지 영광 법성포 한 가운데 우뚝 선 불갑산에 자리한 대웅전의 보주가 발한 신령스런 빛이 닿은 피안의 꽃이기에 그 선홍빛 더 찬란하다. 깨달음의 붉은 빛 가득 찬 피안의 숲 이 곳은 불갑산이다.

참고자료: 오순제 논문, ‘백제불교에 대한 재 고찰’. 이만 논문, ‘불갑사의 역사와 인물’.

채문기 상임논설위원 penshoot@beopbo.com

 

 

[도·움·말]

 

   
 
 

길라잡이

들머리는 불갑사 주차장. 불갑사 참배 후 불갑저수지를 지나면 해불암과 구수재로 나눠지는 갈림길이다. 해불암 길은 가파르고, 구수재 길은 완만하다. 어느 길을 선택했든 연실봉에 오른 후 오르던 길 다시 내려가(약 100m) 구수재 또는 해불암으로 방향을 틀어야만 한다. 연실봉을 넘어 구수재로 가는 길은 초보자에게 쉽지 않다. 구수재에서는 이정표를 확인한 후 연실봉 혹은 불갑사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 이정표 확인을 소홀히 하면 자칫 용천사로 빠지게 된다. 총 길이는 약 7.5km. 소요 시간은 3시간.

 

이것만은 꼭!

   
 
불갑사 대웅전: 보물 830호. 앞면 3칸, 옆면 3칸의 겹처마 팔작지붕 양식에 배흘림 기둥을 세웠다. 불갑사 대웅전 앞면 3칸의 문은 출입문이 아니라 창(꽃살문)이다. 출입문은 동쪽 벽 가운데 칸에 냈다. 용마루 중앙에 탑이 서 있으니 눈여겨보기 바란다.

 

 

 

   
 
불갑사 닫집: 대웅전에 봉안되어 있는 목조석가여래삼존불은 남쪽을 바라보고 있다. 삼존불을 장엄한 닫집에는 화려한 꽃무늬와 해학 넘치는 동물 조각들이 새겨져 있다.

 

 

 

 

 

 

 

 

   
 
마라난타사: 영광군이 민자유치 사업의 일환으로 백제에 불교를 처음 전한 마라난타 스님을 기념해 조성한 공간이다. 1999년에 착공했고 현재 부용루, 만다라광장, 팔각정, 전시관 등 70% 완공됐다.

 

 

 

 

[1411호 / 2017년 10월 1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채문기 상임논설위원 penshoot@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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