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획일화가 양극화 주범

양극화가 심각할 정도로 심화된 우리 사회의 지금,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소통이요 건강한 대화다. 문재인 정권 출범 이래 과거 정권과는 반대편의 흐름이지만 정권에 특정 색깔을 부여하고 반대하거나 요구하는 상황을 헤쳐가는 모습이 안쓰러웠던 일이 많았다. 그런 가운데 얼마 전 이루어진 원전문제를 둘러싼 시민참여단의 결정을 지켜보며 하나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게 되었다. 결론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건강한 집단 지성에의 신뢰를 보여주는 그 과정 자체가 우리 사회의 양극화를 해소하고 소통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좋은 사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이념과 현실 사이의 고민이 드러나는 결정과 그것을 이끌어 내는 과정, 자신의 노선과는 다르더라도 그 결론을 조심스럽게 수용하는 정권의 모습이 거기 더해진다면 아주 귀한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공자는 “말을 기준으로 하여 사람을 쓰지 않고, 사람을 기준으로 하여 (그 사람이 평가가 나쁘다고 하여) 말을 버리지도 않는다”고 하였다. 요즈음처럼 양극화가 심해가는 세상에서 참으로 귀감으로 삼아야 할 말이다. 옳고 그름을 따지기보다 네 편이냐 내편이냐를 따지는 세상, 그것이 계속되면 결국 ‘우리’로 함께 살 수 있는 사회가 무너진다. 양극화의 기본적인 행태가 나와 다른 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주장을 무조건 반대하고 매도하는 현상으로 나타나며, 그것이 결국 어떤 사람이나 집단을 완전히 부정하는 것으로 나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양극화는 그런 행태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닌 듯하다. 다른 편에 대한 비난과 부정으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 자신이 속한 집단에도 이런 양극화의 논리가 적용된다. 그 사람은, 또는 그 집단은 그런 집단이니까 그런 주장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몰아가는 것이 밖에서 작용하는 양극화의 논리라면, 나 또는 우리는 이런 존재이고 집단이니까 이런 주장을 해야 되고, 다른 주장을 해서는 안 된다고 강요하는 것도 일종의 양극화라는 말이다.

그리고 이런 식의 양극화 또한 매우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나아가 그런 사고방식이나 행태가 정치의 장에 나타나게 되면 정말 더더욱 위험하다. ‘좌익 빨갱이’ ‘꼴통 보수’식으로 매도하며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는 갈등도 문제지만, “저 사람은 우리 편인데 왜 저런 이야기를 하지?”, 아니면 “우리 집단에서 왜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야!”하며 획일화를 하려는 것 또한 상대편을 몰아치는 양극화만큼 위험하다는 말이다.

어떤 존재나 집단을 획일적인 기준 아래 묶어 놓고 전체성 속에 조화를 이루려는 시도를 근본적으로 막는다는 점에서는 똑같은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국가와 국민을 위하는 큰 그림 속에 종합적이고도 유연한 판단을 요구하는 정치의 장에 이런 사고가 작용하게 되면 정말 극단적인 선택을 강요하는 양상을 보일 수 있기에 더더욱 위험한 것이다.

문재인 정권이 출범한 뒤로도 이러한 우려를 낳을 수 있는 일들이 상당히 많았다고 생각한다. 진보라는 색채를 강하게 띠고 있다는 것이 또한 그만큼 유연한 판단과 결정을 하는데 장애가 될 수 있다는 점도 많이 드러났다고 생각한다. 그럴 때 진정한 우군은 국정을 맡은 어려움을 감안해 주면서, 너그럽게 현실에 맞는 판단을 하도록 도와주는 집단이다. 조금 현실적인 결정을 하는데 융통성을 발휘하면 자신의 선명성을 과시하듯 내세우며, 같은 편이라고 생각했던 네가 왜 이러냐고 몰아대는 것은 참으로 가장 졸렬한 모습일 뿐이다. 인간으로써 색깔을 가진다는 것은 피치 못할 일이다. 또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요 정치적 동물이니 같은 색깔을 가진 사람들이 집단을 이룬다는 것 또한 피치 못할 일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획일화를 꾀하느냐, 조화를 지향하느냐의 갈림길이 있다. 그 갈림길에서 양극화를 막을 수 있는 귀한 사례들을 만들어가는 일이 중요하다. 원전문제 공론화위원회가 그 귀한 예에 해당되지 않을까? 그런 귀한 예들을 자꾸 만들어가는 것이 바로 우리가 당면한 양극화의 위기를 해소하는 길이 아닐까?

성태용 건국대 철학과 교수 tysung@hanmail.net


[1414호 / 2017년 11월 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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