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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스님 김씨’

스님이 신학생에 장기기증
운동본부, 스님에 ‘씨’ 호칭
상대 종교 몰이해가 원인

며칠 전 (재)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에서 보도자료가 왔다. 이곳은 목사님이 재단을 만들고 이사장을 맡고 있는 곳으로 불교언론에 보도자료가 오는 것은 이례적이다. 내용은 미담이었다.

보도자료를 정리하면 11월9일 서울 아산병원에서는 순수 신장기증 수술이 이뤄졌다. 신장 이식자는 포항에 사는 45세의 형모씨였다. 그는 어릴 때부터 신장병을 앓았고, 1989년에는 친아버지로부터, 1990년에는 삼촌에게서 신장을 이식받았다. 하지만 2003년 거부반응으로 다른 신장 기증자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며 힘겨운 투병생활을 견뎌내야 했다. 그러다 14년 만인 지난 가을 기적적으로 신장기증자를 만나 수술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늦깎이 신학생인 그에게 선뜻 신장을 기증한 사람은 놀랍게도 강원도 원주에 거주하는 스님이었다. 보도자료에는 ‘송우’라는 46세의 스님이 출가한 이유와 신장을 기증하게 된 사연도 간단히 소개돼 있었다. 젊은 시절 스님은 개인사업과 회사생활을 하다가 삶의 회의를 느끼게 됐고, 어느 날 모든 것을 내려놓고 도보여행길에 올랐다. 그렇게 6년간의 긴 도보여행을 마치고 2005년 출가해 스님의 삶을 새롭게 시작했다.

스님이 생면부지의 신학생에게 콩팥 하나를 나눠준 것은 부친에 대한 기억 때문이었다. 광산에서 오랫동안 일을 해온 부친은 젊은 시절 갑작스런 사고로 부득이 하나의 신장으로 생활을 해야 했다. 이때 스님은 부친을 보며 신장 하나로도 일상생활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고 그때부터 신장기증에 관심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사찰에 다니던 만성신부전증 환자에게 신장을 기증하려고 했으나 절차 문제로 포기해야 했고, 올 초 부친이 세상을 떠난 것을 계기로 건강이 허락할 때 신장기증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이번에 마음을 냈다고 했다. 보도자료에는 스님이 80회 이상 헌혈에 참여하며 이웃을 위한 나눔을 실천해오고 있다는 점과 형편이 어려운 노인들을 위한 요양원을 짓는 게 꿈이라는 내용도 담겨있었다.

각박해지는 세상에서 자신의 신체 일부를 보시해 누군가의 생명을 살리는 일은 많은 이들의 귀감이 되기에 충분하다. 더욱이 스님이 다른 종교의 예비 성직자에게 신장을 떼 준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가 보도자료를 배포한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보도자료를 접하며 불편했던 것은 호칭의 문제였다. ‘40대 스님 김OO씨’와 ‘송우 스님 김OO씨’라는 말을 시작으로 ‘생명나눔과 각별한 인연을 지닌 김OO씨는…’ ‘김씨의 아버지는 젊은 시절 갑작스런 사고로…’ ‘김씨는 신장기증 후에는…’ ‘김씨를 통해 새 생명을 선물 받게 된 이식인은…’ 등 시종일관 스님이라는 호칭 대신 김씨로 표현하고 있었다. 집과 가족을 떠나 출가한 스님에게 속명을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지도 않을뿐더러 결례이기 십상이다.

▲ 이재형 국장
종교가 다양화될수록 종교간 대화와 교류의 중요성은 커질 수밖에 없다. 대화와 교류의 전제조건은 이해와 존중에 있으며, 그것은 상대 종교에 대한 ‘앎’에서 출발한다. 기본적인 이해조차 없는 대화와 교류는 겉돌 수밖에 없으며 지속력을 갖기도 힘들다.

스님이 신학생에게 신장을 보시한 것은 개인 차원을 넘어 종교인으로서의 바람직한 자세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럼에도 장기기증을 받은 장기기증본부가 정작 일반 신문이나 방송에서도 쓰지 않는 호칭을 사용해 의미를 퇴색시킨 것은 아쉬운 일이다.

이재형 mitra@beopbo.com


[1415호 / 2017년 11월 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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