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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병고를 친구로 삼다 ③

“언제나 현재의 몸으로 가치를 창조하는 게 중요합니다”

▲ 2005년 불광산을 예방한 조계종 스님들과 불광산의 자원봉사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대만 불광산 제공

"빈승은 늙거나 병듦을 괴로움으로 여기지 않고 있습니다. 언제나 현재의 몸으로 늙음과 고통, 병고를 받아들이면서 생활 속에서 자신의 가치를 창조하고 스스로 귀인이 되고자 쉼 없이 배워나가고 있을 뿐입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인생의 온갖 문제들도 끊임없이 찾아왔습니다. 1991년 8월 불광산이 타이베이에서 공승법회를 거행하는 날 아침, 법회 참석을 위해 빈승은 욕실에서 목욕을 하고 옷을 갈아입고자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방 전화가 계속해서 울리기에 달려가서 전화를 받으려고 했지만 받기 직전 벨소리가 멈추기에 저는 다시 욕실로 돌아와서 목욕을 계속했습니다. 이 때 전화벨이 다시 울리기 시작했고 누군가 급한 사람이 전화를 하는 것이라는 염려에서 전화를 받으려고 급히 뛰었는데 바닥에 있는 비눗물에 저는 욕실바닥에 널브러졌고 대퇴골이 부러졌습니다. 제자들은 급히 저를 타이베이 ‘영민총 의원’으로 이송했고 ‘진천웅(陳天雄)’ 주임 의사의 집도로 수술을 받고 철강 못 네 개를 박아 뼈를 고정했습니다.

병원 침대에서 잠을 자려면 통증을 참기가 어려웠습니다. 한 밤중 제자 심평(心平)스님이 옆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간병을 하는 것을 보면서 저는 ‘심평 네가 침대에서 자고 의자는 내가 앉도록 해줘라. 여기서 자려니 너무 힘들구나“하고 말했습니다. 제자는 저의 의사를 거역하지 못하고 침대에 올라가서 누웠고 저는 의자에 앉아서 쉴 수 있었습니다. 잠깐 후에 제자는 ‘은사 스님! 이건 아닌 것 같아요. 이따가 주사를 놓으러 간호사가 올 텐데 저를 환자로 알고 잘못 주사를 놓으면 안 되잖아요”하며 벌떡 일어났습니다. 통증은 저를 정신없게 하였기에 나중에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였는지는 전혀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 때부터 강철 못 네 개는 빈승의 정강이 속에 남았으며 지금까지 22년이란 세월이 넘었습니다. 매번 출국하려고 공항 출입국 안전검사를 받을 때마다 몸에 금속물품을 지니지 않았어도 매번 검사기계에서는 금속에 반응하는 소리가 났고 출입국 직원들이 제 몸을 아무리 수색하여도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사람이 많이 드나드는 곳이어서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되다보니 민망하여 몸 안에 강철못 네 개가 들어있다고 설명해야만 하는데 몸속에 들어있는 것을 꺼내 보일 수는 없지 않을까요? 그들이 제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다보니 나중에는 아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들 마음대로 검사하게 하였습니다. 이렇게 네 개의 강철못은 평화롭게 수십 년 세월 동안 줄곧 저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다리 골절이 있은 후 빈승은 걷지 못하는 고충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병상에 누워 있다 보니 손님을 맞지 않아도 되고 법문을 하지 않아도 되어 마치 무문관 수행을 하는 것처럼 한가하고 편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빈승을 관리하는 사람들도 많아져서 “은사 스님! 저것은 드시면 안돼요”라고 이 사람이 말했는데 잠시 후 저 사람은 “은사 스님! 다리를 이렇게 움직이셔야 해요”라고 또 말을 하니 저는 더욱 구속당한다고 느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저를 걱정하고 저를 위해서 바쁜 것을 보면서 차마 그들의 호의를 거스르지 못하고 스스로 참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 가지 일에는 항상 좋고 나쁜 점이 있기 마련이고 괴로움과 즐거움이 따르는 법으로 모든 것이 자기의 한 생각 사이에 있는 것입니다. 긍정적인 한 생각으로 천상세계에 태어나고 부정적인 한 생각으로 지옥에 떨어지는 것으로, 모든 것이 우리들이 어떻게 느끼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집착하지 않는다면 인연 따라 즐겁고 걸림이 없을 수 있습니다.

보름 후 일본 동경 ‘헌정 의사청’에서 거행하는 강연일정에 필히 참석해야 했는데 “제가 대퇴골이 부러져서 휠체어에 앉아 있어야 하는데 어쩌면 참석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라고 주최 측에 사실대로 알렸습니다. 일본 ‘아사히신문’의 유명 기자인 ‘요시다(吉田實)’ 선생과 국회의원 여러 명이 갖가지 배려를 하겠다며 재삼 성의를 표하기에 저는 일정대로 참석해야만 했습니다.

강연 장소에 도착해 보니 장애인 시설이 없는 공간이었는데 결국은 일본 국회의원 여러 명이 함께 저의 휠체어를 들어 무대로 옮겨 주어서 강연을 할 수 있었습니다. 빈승은 자신이 한명의 출가자일 뿐이라서 대단한 것이 없기에 평소 영예로운 느낌을 별로 갖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많은 국회의원들이 저를 들어 올리던 순간, 저는 “예전에 오랜 세월동안 중국인이 일본의 발길에 짓밟혀 왔었는데 지금 당신들이 국회의원이라는 대단한 신분인데도 한 출가자를 무대에 들어 올리고 있다”라는 생각이 들면서 빈승은 ‘쉽지 않은 만남’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3개월 이후 저는 휠체어에서 일어나서 걷는 연습을 반복하였고 자유롭게 오르내릴 수 있게 되자 의사들도 신기해 했습니다. 그래서 병이 있는 것은 걱정거리가 아니며 증상에 맞게 약을 쓰면 빠르게 건강을 회복할 수 있는데 만약 나 몰라라 회피한다면 그 아무리 대단한 의술을 가진 사람이라도 치유하기 어렵습니다.

빈승의 일생에서 가장 심각한 질병으로 말한다면 아마도 1995년 4월 심장관상 동맥이 막혀서 타이베이 ‘영민총의원’에서 관상동맥 우회수술을 받은 것입니다.

그 이전 1992년부터 세계 여러 곳에서 불광회가 계속해서 설립되면서 저는 전 세계 여러 곳으로 홍법활동을 다녔는데 당뇨병 역시 계속 저와 함께하다 보니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저의 몸을 잠식해 들어가면서 제 육체적 구조를 망가뜨렸습니다. 1994년 8월 빈승이 남아프리카에서 홍법을 하고 있었는데 한 밤중에 갑자기 심장에 통증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저는 이미 이번 일정의 여러 행사와 발언에서 힘이 많이 든다는 느낌을 명확하게 느끼게 되었고 신체적인 증상 역시 매우 심각해 의사를 찾아봐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신체적인 불편함을 참으면서 저는 대만으로 돌아왔고 타이베이 ‘영민총의원’ 강지환(江志桓) 선생은 바로 저를 위해 심혈관 검사를 하여 심장에 혈액을 공급하는 세 개의 굵은 혈관이 막혔다는 것을 확인한 뒤 저에게 바로 수술치료를 받을 준비를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많은 일정이 그 해에 예정된 상황으로, 미주와 유럽지역의 신도와 회원들에게 불광회 설립과 회의주재를 약속했기에 저는 신도들과의 약속을 제 멋대로 바꾸거나 약속을 어길 수 없었습니다. 저는 일생으로 약속을 지켜왔고 약속을 번복하는 일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강지환 선생은 저에게 신중하게 생각해보라고 권유하면서 “스님의 몸은 돌보지 않아도 되는 겁니까? 수술을 받아야 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닙니다. 더욱이 스님의 관상동맥 3분의 2가 이미 다 막혀있습니다”라고 말하며 치료를 권했습니다. 나중에 저는 의사와 합의가 되었고 의사들은 저에게 어떻게 조심해야 하고 어떻게 주의해야 하며 어떠한 증상이 있으면 바로 돌아와야 한다며 끊임없이 신신당부 했습니다. 의사들이 하는 수 없이 해준 협의와 보살핌 속에서 저는 변경하기 쉽지 않은 일정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연말에 돌아와 새해를 맞이하게 되었고 저는 다시 필리핀으로 가서 국제불광회 세계총회 제6차 이사회에 참석하였습니다. 1995년 4월 빈승은 무거운 심장을 갖고 대만으로 돌아와서 얌전하게 타이베이 ‘영민총의원’으로 가서 입원했습니다. 당시 원장이었던 ‘팽방곡(彭芳谷)’ 선생과 부원장 강필녕(姜必寧) 선생의 주관 아래 저를 위해 강지환, 채세택, 진국한(陳國瀚) 등 관련 분야 전문의들을 포함한 의료팀이 조직되어 심장수술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강필녕 부원장은 저에게 심장과 전문의 몇 명을 소개해 주면서 물었습니다. “모두들 대단한 기술을 가진 분들입니다. 스님은 누구를 고르시겠습니까?”라고 말했고 저는 평소 병원 출입이 드물어서 의료영역의 의사를 잘 몰랐지만 “장연(張燕)선생으로 하겠습니다”라고 직감적으로 말했습니다. 심장수술은 시간이 많이 걸려서 젊은 체력에 민첩한 의술과 새로운 의료지식 등 모두 다 중요한 조건이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술 전 장연 선생은 심장모형을 들고 저의 병실로 와서는 “저는 장연이라고 하는데 스님의 심장수술을 집도할 의사입니다. 저는 스님을 성운대사로 여기지 않고 단지 저의 환자로 대할 겁니다. 수술 전에 심장의 구조와 상관관계 수술과정을 스님께 말씀드리려고 합니다”라고 말을 했습니다. 저는 이렇게 젊은 의사가 이렇게 솔직하고 엄숙하게 말을 하는구나하고 생각했지만 저는 의사에 대한 신심이 있었고 그 솔직함과 직설적인 면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수술 날이 마침내 다가왔고 빈승의 기억으로 그날 아침 7시 모든 준비를 마치고 마음 편하게 수술방에 들어가기를 기다렸습니다. 그 당시 심장수술을 받는다는 것은 아주 엄중하고도 큰일이어서 옆에 서 있는 제자들의 근심어리고 긴장된 표정을 보고 기분이 좋은 듯이 손을 흔들어 보이면서 “걱정하지 말라. 틀림없이 잘 하고 올께!”라고 위로했습니다. 이러한 행동은 아마도 제 일생에서 위험과 어려움에 대면하게 되었을 때마다 항상 두려워하지 않았던 용기에서 기인했던 것 같습니다.

8시간이 지나고 수술실에서 회복실로 옮겨져 관찰시간이 되었습니다. 마취에서 깨어난 저는 맞은 편 벽에 걸린 벽시계가 6시를 가리키고 있는 것을 보았고 바깥에서 들어오는 빛은 아침인지 황혼녘이었는지 구분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다시 눈을 감고 기다렸는데 한참을 지났다고 생각하고 다시 눈을 떠 보니 시계는 6시 5분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몇 시간은 지났다고 생각했는데 어찌하여 겨우 오 분이었을까요? 시계가 저와 이 세상의 유일한 연결체가 되어주었고 시계가 가는 것은 저의 생명이 아직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므로 시계는 제가 죽지 않았고 아직 살아있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습니다.

번역=이인옥 전문위원


[1415호 / 2017년 11월 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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