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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평화의 원리

기사승인 2017.11.14  16: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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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대를 존중하고 받아들이는 게 평화의 본질

인간에게 숲은 그 자체로 치유의 공간이자 평화의 장입니다. 색이며 소리며 공기며 향기며 맛이며 무엇 하나도 뺄 것 없이 숲을 이루는 모든 것은 인간의 지친 삶을 회복케 하고 다친 영혼을 치유합니다. 그래서 인간에게 숲은 어머니의 품을 닮았고, 그래서 우리에게 숲은 평화의 공간으로 인식됩니다.

다툼 속 조화 이뤄사는 숲 생명들
평화는 자신 드러내는 데서 출발
진면목 안놓치는 존재만이 주인돼


하지만 자세히 살피면 그곳에 사는 생명들에게 숲은 어느 전쟁터보다 치열한 전장입니다. 물리적으로 주어진 자기 삶의 자리를 제 스스로 움직여 벗어날 수 있는 식물은 없습니다. 움직일 수 없는 형벌을 받은 온갖 종류의 식물들이 제 삶을 펼치고 지탱하고 완성하기 위해 쉴 새 없이 다투고 또 다퉈야 하는 공간이 바로 숲입니다. 식물과 식물끼리는 빛과 양분, 그리고 한정된 수분 따위를 다퉈야 합니다. 또한 초식 및 잡식 동물들로부터 식물은 제 잎이며 줄기며 열매를 지켜내야 합니다.

오묘하게도 치열하게 다투는 생명들의 그 하루하루 삶은 숲이라는 전체 속에서 놀라운 조화와 평형을 이루어냅니다. 나무와 풀은 나비나 나방이 되기 위해 몸부림치는 애벌레들에게 제 몸뚱이의 한 부분인 풀잎과 나뭇잎을 갉아 먹힙니다. 무참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수풀들은 그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지켜냅니다. 그들이 만드는 쌉쌀하거나 독특한 맛과 향은 자기를 방어하기 위해 만든 물질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피톤치드(phytoncide)라고 부릅니다. 그들의 상처와 그 방어와 치유의 과정에 기대어 동물은 긴 시간 삶을 이어왔습니다.

꽃을 피워내기만 하면 자신을 공격했던 그 애벌레들이 이제는 나비나 나방, 혹은 어떤 벌레가 되어 그들의 꽃으로 찾아듭니다. 그들은 꽃이 나누는 꿀과 감로, 혹은 꽃가루에 기대에 또 다른 생의 국면을 지탱합니다. 동시에 그 과정에서 곤충과 벌레들은 그 꽃이 품고 있는 개화의 목적을 실현해 줍니다. 수풀에게 열매라는 결실을 안겨줍니다. 그렇게 맺힌 열매에 기대어 다시 아주 많은 생명들이 생명을 이어갑니다. 다툼 속에 평화가, 평화 속에 다툼이 마치 모순처럼 한 쌍을 이루는 평형이 숲을 관통합니다.

자연을 관통하는 이치의 압축판인 숲의 원리를 헤아려 보면 평화는 다툼이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그것은 차라리 다툼이 끊이지 않는 상태에서 다툼의 주체들이 이루어낸 절묘한 조화요 균형에 가까운 무엇이라고 해야 옳을 것입니다.

눈부신 봄과 여름을 거쳐 찬란하게 농익어가는 저 가을을 목도하며 나는 어쩌면 사람사는 세상의 평화 역시 그런 이치 위에 놓인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평화는 보다 선명하게 자기를 드러내는 것에서 출발하는 것이라 여기게 됩니다. 자신의 진면목을 놓치지 않은 존재들만이 숲의 주인으로 살 수 있습니다. 자신의 주인 자리를 놓치고 숲의 한 자리를 차지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예속된 삶을 받아들이느라 가짜로 살거나 다른 생명을 부러워하느라 누군가를 흉내 내며 사는 것만으로는 자신을 지켜낼 수 없습니다. 때로 고함을 지르고 때로 누군가를 향해 날을 세우며 사는 시간도 있어야 자신을 지킬 수 있습니다. 평화는 그 뒤에 따라 옵니다.

그 갈등이 사위는 지점, 그러니까 제 삶의 주체인 각자가 상대의 그러함을 받아들이고 존중하여 빚어내는 오묘한 조화, 그것이 평화의 본질일 것입니다. 숲이 이루는 평화의 백미는 단풍과 낙엽으로 드러납니다. 이제 저 시간이 사위며 찾아오는 낙엽의 시간은 치열하게 자신을 지켜낸 자들이 자신만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이웃 생명들을 향해 떨궈내는 따뜻한 헌신의 증거입니다.

제 욕망을 거두어 제 뿌리를 지키려는 자각이 단풍입니다. 내것 네것 가리지 않고 숲이라는 공동체에 찾아들 겨울의 시간을 견뎌내기 위해 바닥을 데울 따뜻한 이불을 만드는 울력이 낙엽입니다. 나는 비록 가난하지만 단풍처럼 내 삶을 사랑하고, 낙엽처럼 이웃을 헤아리는 평화를 추구합니다. 나는 그렇게 내가 마주하는 온 생애를 사랑하며 동시에 평화롭게 나이 들어가는 꿈을 새삼 꾸게 됩니다.

김용규 숲철학자
happyforest@empas.com


[1415호 / 2017년 11월 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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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규 happyforest@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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