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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곁에 있는 귀한 인연에게 감사를

기자명 조정육

“내 곁을 지켜준 사람들이 바로 불보살님”

▲ 김성오, <결(結)>, 162.2×112.1cm, acrylic on canvas on board, 2017. 제주도에서 나고 자란 작가에게 어린 시절은 테우리였던 아버지와 함께 한 추억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가난한 테우리의 아들로 살면서 가난 대신 밤하늘의 별을 기억할 수 있는 것은 아버지의 사랑이 있어서다. 귀한 인연이 어디 아버지뿐이겠는가.

겨울 추위가 시작되었다. 난방을 해야 하는 계절이다. 난방을 하면 따뜻해서 좋은데 눈과 코가 건조한 것이 문제다. 특히 눈이 뻑뻑해서 조금만 책을 봐도 금세 피로감을 느끼게 된다. 가능하면 집에서 히터를 틀지 않는 이유다. 대신 내의를 여러 겹 껴입고 그 위에 스웨터를 입는다. 요즘 내의는 과거처럼 두껍지 않으면서 보온성이 뛰어나 활동하는데 전혀 불편함이 없다. 난방을 하는 대신 옷을 두껍게 입으면 공기가 청정하고 눈도 피로하지 않아 좋다. 덤으로 난방비도 아낄 수 있다. 잠자리에 들 때도 마찬가지다. 전기담요의 온도를 세게 올려서 이불 속을 따뜻하게 한 다음 잠들기 전에 끈다. 공기는 차갑지만 이불 속은 따뜻하니 전자파 걱정 없이 아침까지 곤히 잘 수 있다.

지독히도 가난했던 유년기 시절
겨울밤이면 언니들과 이불 싸움
이젠 싸우고 싶어도 곁에 없어

희로애락 같이하는 사람들이
매우 귀하고 귀하게 대할 인연

어제도 여느 때처럼 이불 속을 따뜻하게 한 다음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날씨가 갑자기 추워진 때문인지 방안 공기가 심하게 차가웠다. 이불을 꼭 덮고 누워 있는데 어깨가 시렸다. 바깥공기와 만나는 부분이 어깨이다 보니 그 부분을 이불로 꼭 여미는 것이 중요하다. 어깨가 훈훈해질 수 있도록 최대한 이불을 여미는데 그게 쉽지가 않다. 이불은 옷처럼 몸에 착 들러붙지를 않아 움직일 때마다 이불이 들썩거린다. 옆으로 누우면 등이 시리다. 손으로 등에 이불이 닿도록 다독거리는데 갑자기 어린 시절의 기억 한토막이 생각났다.

초등학교 입학할 때까지 살았던 우리집은 산자락 끝에 있었다. 주변에는 인가가 드물어 마을까지는 한참을 내려가야 했다. 집 둘레에는 전부 밭이었고 나무 한 그루가 없었다. 한겨울이 되면 밭 사이를 거침없이 불어온 바람이 독야청청 서 있는 우리집을 뚫고 지나가려는 듯 휘몰아쳤다. 가끔씩은 정말 집이 날아가 버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열시공이 제대로 되었을리 만무한 초가집에는 아귀가 맞지 않은 문풍지 사이로 황소바람이 들락거렸다. 그나마 이불이 탈 정도로 뜨끈뜨끈한 온돌 때문에 겨울추위를 견딜 수 있었다.

언니들과 함께 잠자리에 들 때면 이불 때문에 자주 옥신각신했다. 집은 광을 사이에 두고 양쪽에 방이 있는 일(一) 자형 초가였다. 나보다 열두 살 많은 큰언니와 그 위로 두 오빠는 일찌감치 도시로 나갔고 집에 남은 다섯 자매는 한 방을 썼다. 다섯 자매는 밥 먹을 때도 함께 먹었고, 학교 갈 때도 함께 다녔다. 잠을 잘 때도 함께 잤는데 문제는 한 이불을 덮고 잔다는데 있었다. 방바닥은 이불이 탈 정도로 뜨거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아랫목에 국한되어 있었다. 구들장을 덥히는 고래가 중간에 막혔는지 방바닥 가운데부터는 미지근하다가 윗목으로 갈수록 급격하게 냉각되어 베개 놓는 지점에 이르면 거의 냉골이었다. 다섯 자매는 아랫목이 있는 벽에 발이 닿을 정도로 최대한 밑으로 내려갔지만 윗목은 언제나 추웠다. 그 추위를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이불을 끌어당겨 얼굴까지 감싸느라 잠자리가 항상 부산했다. 다섯 명이 한 이불을 덮으면 양쪽에 있는 두 사람을 제외한 가운데 세 사람은 이불을 움직일 수 있는 재량권이 없어진다. 양쪽에서 두 사람이 이불을 팽팽히 잡아당기면 가운데 세 사람은 마치 판자 같은 이불 아래 누워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한 이불을 덮고 자야 하는 자매들의 운명이었다. 더구나 막내인 나는 신체가 가장 작아 더 많은 바람을 견뎌야 했다. 빳빳하게 떠 있는 듯한 이불 밑으로 황소바람이 찬 기운을 내뿜으며 돌아다녔고 그 바람을 막아보려고 이불을 끌어당기다보면 잠은 달아나기 일쑤였다. 궁벽한 산골마을에서 자매들은 서로 이불을 끌어당기느라 쉽게 잠들지 못했고 겨울밤은 길고도 깊었다.

이제는 그만 싸우고 빨리 자라고 잔소리하시던 부모님도 돌아가셨다. 한 몸처럼 붙어살던 자매들도 뿔뿔이 흩어져 각자 남처럼 산다. 어떤 언니는 성격 차이로, 어떤 언니는 돈 문제로, 어떤 언니는 종교 때문에 거리가 멀어져 왕래를 거의 하지 않고 남처럼 산다. 자매들 사이가 가깝고 먼 것과는 상관없이 겨울밤은 예나 지금이나 춥고 어깨가 시린 것도 마찬가지다. 차이가 있다면 그때는 가난 때문에 시렸고 지금은 나이가 들어서 시리다. 아니 정확히 얘기하자면 나이 때문이 아니라 함께 견뎌줄 언니들이 곁에 없어서 시릴 것이다. 혹독하게 가난하고 추웠던 어린 시절을 지금 이렇게 아련한 추억으로 기억할 수 있는 것은 나의 곁에 언니들이 있어서였다. 만약 그 밤에 언니들이 없이 나 홀로 남겨졌더라면 그 추위와 무서움을 견뎌낼 수 있었을까. 언니들이 있어줘서 잘 버텼다. 창호지 너머로 들려오는 흉흉한 겨울바람소리를 견딜 수 있었던 것은 함께 견뎌준 언니들 덕분이었다.

그러고 보면 누군가의 곁에서 희로애락을 함께 한다는 것이 참으로 귀하고도 귀한 인연인 듯하다. 인생의 굽이굽이에서 항상 내 곁에 있어준 사람들이야말로 나를 위해 이 지상에 내려 온 불보살님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때로는 성격 때문에, 때로는 돈 때문에, 때로는 종교 때문에 다투고 마음 상할 때도 있지만 그런 역할로라도 나와 인연을 맺으면서 곁을 지켜 준 사람들이야말로 진심으로 내가 공경해야 할 불보살님이었을 것이다. 그 인연들은 인연이 다하면 떠난다. 정말 신기하게도 그 인연과는 다시 할 수 없다. 그러니 지금이 아니면 결코 함께 할 수 없는 인연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으로 대해야겠다. 얼마 전에는 10년 동안 아파트 단지를 청소하던 할아버지가 보이지 않았다. 그냥 왔다 갔다 하면서 인사만 하는 사이였는데 갑자기 보이지 않게 되자 그렇게 허전할 수가 없었다. 무슨 사정이 있어서 그만두었다고 하는데 역시 나하고의 인연도 여기까지였다는 것을 알았다. 청소할아버지뿐만이 아니다. 경비아저씨, 세탁소, 수선집, 방앗간 등등 우리 동네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나와 인연이 있어 함께 살아갈 것이다.

‘법화경’에 나오는 상불경(常不輕)보살님은 만나는 사람마다 공경스럽게 예배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당신을 존경합니다. 여러분은 부처님이 될 분이기 때문입니다.”

잠깐 스쳐지나가는 사람도 인연인데 한 이불을 덮고 자고 한 동네에 사는 인연은 얼마나 깊은 인연이겠는가. 머나먼 우주에서 나를 위해 그 시간 그 장소에까지 달려와 준 인연들을 귀하고 귀하게 대하며 살아야겠다.

조정육 미술평론가 sixgardn@hanmail.net
 

[1418호 / 2017년 12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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