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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소재도량과 치성광여래

기사승인 2017.12.13  10:3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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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처님과 성신 가호로 온갖 재앙이 소멸

   
▲ ‘소재회’ 경천사지 10층 석탑 3층 남면, 67.7×58.6 cm, 1348년, 국립중앙박물관(출처: 문화재청, ‘경천사 10층석탑 부재별 상세자료’).

불교에서 법석을 마련하여 기도드리는 도량 가운데 소재도량이라는 법회가 있다. 고려 문종 즉위년(1046) 10월 처음 봉행한 밀교의식인 소재도량(消災道場)은 불교도량 가운데 재난에서의 구원은 물론이고 이를 예방하기 위한 예방법회의 성격을 갖는 유일한 도량이다. 세종 당시 불교개혁에 관한 양봉래의 상소문을 보면 “어떠한 변괴든지 있게 되면 열었던 불사가 바로 소재도량”이라고 하였을 정도로 고려의 비정기적 불교의례 가운데 가장 많이 개설된 법회이다. 인간의 능력으로 피할 수 없는 하늘과 땅의 불길한 징후를 소멸시켜 앞으로 다가올지도 모르는 어려움을 미리 예방하려는 소재도량에서 모셨던 부처님은 ‘금륜불정치성광여래’이다. 고려시대 팔만대장경에 실린 ‘불설대위덕금륜불정치성광여래소제일체재난다라니경(佛說大威德金輪佛頂熾盛光如來消除一切災難陀羅尼經)’을 보면 온갖 재앙과 환란이 있을 때 도량을 세워 다라니를 외우며 치성광여래에게 기도를 드리면 재난이 사라지고 8만 가지 상서로운 일을 성취할 뿐만 아니라 8만 가지 나쁜 일을 없앨 수 있다고 한다. 소재도량에서 기도드리며 암송했던 치성광다라니는 불자님들이 사찰에서 한 번은 들어 보았을 소재길상다라니이다.

서역의 점성 신앙에서 유래
닥쳐올 재앙 소멸시키기 위해
북극성인 치성광여래에 기도

천재지변 피하기 위한 소재신앙서
장수와 구복 위한 기복 신앙으로
북두칠성 숭배하는 민족정서 반영
신앙의 전면에 북두칠성 대두돼


치성광여래는 밤하늘에 빛나는 수많은 별들의 황제인 북극성을 의미하는 부처님으로 손에 세상을 평정하는 금륜을 가지고 있어 금륜불정치성광여래라고도 한다. 치성광여래 신앙은 점성을 통해 얻은 점괘에 의거하여 닥쳐올 재앙을 미리 소멸하기 위해 기도하는 신앙이기 때문에 소재도량 개설의 본래 목적은 하늘의 별이 궤도를 벗어남에 따라 발생하는 천변(天變)을 물리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점차 ‘천인감응’이라는 의미로 확대되어 땅에서 발생하는 자연재해도 기양(祈禳)하는 대상이 되어 고려시대 원종은 개경에 지진이 발생하자 궁궐에서 소재도량을 열어 재앙소멸을 기원하였고 공민왕 역시 소재도량을 열어 지진이 일어나지 않게 해달라고 빌었다.

   
▲ ‘북두칠성’ 태안사 칠성각부도 세부, 마본채색, 1739년, 호암 미술관.

독자들에게는 생소한 소재도량은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경천사지 10층 석탑의 탑신부에 새겨진 ‘소재회’라는 미술작품을 통해 살 필 수 있다. 문헌 사료만으로 확인되던 고려의 소재도량은 이 탑의 ‘소재회’ 도상을 통해 치성광여래를 법회의 주존불로 모시고 별들에게 기원을 드렸던 성수신앙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소재회 중앙 소가 끄는 수레의 연화대좌에 앉아 왼손에 커다란 금륜을 가진 부처님이 바로 치성광여래이다. 치성광여래 그 좌우에 보살님 두 분은 소재와 식재보살님으로 조선시대가 되면 일광과 월광보살이 더해져서 이 보살님들의 명호는 일광편조 소재보살, 월광편조 식재보살로 바뀐다.

치성광여래 신앙은 본디 하늘의 별에게 소원을 비는 점성신앙에 그 기원을 두고 있어 별점에 이용되는 움직이는 행성들이 주요한 도상의 구성요소가 된다. 그래서 치성광여래 신앙을 표현한 미술품에 등장하는 인물 대부분은 밤하늘의 별을 의인화하여 나타낸 것이다. 고려시대까지만 해도 지구를 도는 행성이 신앙의 주요대상이었기 때문에 치성광여래 좌우와 대좌 아래에는 지구 주위를 도는 아홉 개의 행성을 나타낸 구요(九曜, 일월화수목금토성 일곱별, 라후와 계도라는 보이지 않는 두 개의 별)가 두 손을 모아 홀을 가진 형태로 서 있다.  그리고 치성광여래 삼존의 위에 있는 일곱명의 인물은 우리나라 치성광여래 도상에서만 보이는 북두칠성이다. 칠성의 옛 모습은 머리를 풀어 헤친 형상이라서 성현은 ‘용재총화’에서 소격서 태일전에 모셔진 칠성들이 모두 여자의 모습이라 하였다. 1739년 당시 최고의 화승이었던 의겸 스님이 그린 태안사의 치성광여래도에 그려진 칠성 역시 머리를 곱게 빗어 넘긴 모습들이다.

   
▲ ‘치성광여래강림도’, 마본황선묘, 84.8×66.1㎝, 1569년, 일본 교토 고려미술관.

조선이 건국되고 유교가 통치이념이 되면서 불교의 의례, 특히 밤하늘의 별과 관련을 갖는 치성광여래 신앙은 미신으로 터부시 되어 국가적 차원의 소재도량 개설은 조선 초기 몇 번을 제외하고는 열리지 않았다. 하지만 병들어 늙고 죽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초자연적인 현상에 대한 공포는 유교적 교리로는 해소될 수 없는 신앙적 차원의 문제였기에 뿌리 깊은 성수신앙에 기반을 두고 있는 치성광여래 신앙은 백성들의 호응이 높아 그 명맥을 유지하게 되었다. 조선시대 제작 연대가 명확한 치성광여래도 가운데 시대가 가장 앞서는 작품은 현재 일본 교토 고려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치성광여래 강림도이다. 이 그림은 보스턴 미술관에 소장된 고려 치성광여래 강림도의 구성을 그대로 따른 것으로 화면에 그려진 작은 인물들은 모두 밤하늘에 빛나는 별들을 나타낸 것이다.

치성광여래가 그려진 불화는 현재 흔히들 칠성도라 알고 있지만 불화의 명칭은 주존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기 때문에 따지자면 치성광여래도라 부르는 것이 맞다. 현재 치성광여래도는 북두칠성이 칠원성군과 칠성여래로 혹은 동자형 칠원성군 등 칠성의 모티프가 중첩된 구성으로옛 그림에 비해 화면에서 칠성의 비중이 높다. 이는 시대가 변하면서 신앙의 목적이 천재지변의 소재보다는 개인의 구복에 맞추어지면서 인간의 생사를 주관하는 북두칠성에 신앙의 초점이 모아졌기 때문이다. 소를 타고 하늘에서 강림하는 치성광여래를 그린 19세기 치성광여래도는 특이하게 서울과 경기지역에서 주로 제작되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보기만 해도 수명장수하고 만사형통한다는 남극노인성을 의미하는 수성노인이 처음 그려진 가평 현등사 치성광여래 강림도는 서울 화계사에서 그려 현등사로 옮겨서 모신 작품이다. 불화가 제작된 곳과 봉안되는 장소는 대게 같은 사찰일 경우가 많지만 이처럼 제작과 봉안처가 다른 작품도 드물지 않다.

   
▲ 화계사 ‘치성광여래 강림도’, 견본채색, 168.5×188.5㎝, 1861년, 가평 현등사.

온 나라가 숨죽이며 주시하는 수학능력시험을 일주일 연기시키는 사상초유의 현상을 만들었던 포항의 지진 피해가 예상보다 더 크다는 기사를 보았다. 연이은 초겨울 한파가 기승을 부리는 요즈음, 지진 이재민들에게 평생을 살면서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을 땅이 흔들리고 살던 집이 무너지는 재난의 공포는 쉽게 잊히지 않을 고통스러운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매서운 바람과 함께 몰아닥친 때 이른 동장군의 기세가 그분들에게는 더 춥게 느껴질 것 같아 미신이든, 비과학적이든 밤하늘의 별들에게 마음만이라도 편안케 해 달라고 기도라도 드려야겠다.

정진희 문화재청 감정위원 jini5448@hanmail.net
 


[1419호 / 2017년 12월 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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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희 jini544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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