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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리쿠르고스의 입법

기사승인 2017.12.13  11: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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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라의 행복은 국민의 덕으로 완성된다”

   
▲ 그림=근호

고대 그리스는 폴리스라 불리는 수백 개의 도시국가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그중 가장 널리 알려진 폴리스는 아테네와 스파르타이다. 정치체제 면에서 아테네는 민주정을 채택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모든 면에서 아테네와는 대비되는 스파르타는 어땠을까. 왕이 있었다는 점에서만 보면 스파르타는 군주정체를 갖고 있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스파르타의 정치체제를 단순히 군주정이라고만 말할 수는 없는데, 스파르타만의 독특한 정치체제와 관습을 제정한 인물이 리쿠르고스이다.

스파르타 개혁단행 리쿠르고스
그리스폴리스 중 가장 강한군대
토지 공정분배…사치행위 금지
스스로 절제·만족하는 삶 지향


리쿠르고스는 에우노모스 왕의 둘째아들로 태어났는데, 스파르타의 민중들이 왕에게 자유를 요구하는 과정에서 혼란이 일어나 왕이 살해되었다. 그럼으로써 왕위를 이어받은 에우노모스왕의 첫째아들이자 리쿠르고스의 이복형인 폴리덱테스 또한 왕위에 오른 지 얼마 안 있어 죽고 말았다.

이렇게 하여 왕권은 리쿠르고스에게 넘어왔는데, 형수가 임신 중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그는 만약 형수가 남자아이를 낳으면 왕위를 그에게 물려주고 자신은 단지 섭정만을 하겠노라고 선언했다. 그때 형수가 그에게 비밀리에 사람을 보내어 아이를 유산시킬 테니 자신과 결혼하여 왕과 왕비가 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리쿠르고스는 왕이 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는 매우 공정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리쿠르고스는 왕비에게 독한 약을 먹어 아이를 유산시키면 몸을 상할 테니 일단 아기를 낳으라고, 그다음 일은 자신이 처리하겠노라고 말했다. 얼마 뒤에 왕비가 아들을 낳자 리쿠르고스는 왕자를 왕위에 올린 다음 여덟 달 동안 왕의 섭정으로 일했다. 그러다가 그에게 불만을 품은 태후의 오빠 레오니다스 등의 음해가 시작되자 그는 고국을 떠나 해외로 망명했다.

이때부터 그는 크레타, 이오니아, 이집트, 스페인, 아프리카, 인도 등을 돌며 여러 나라의 문화와 제도를 접했다. 그러는 사이 본국의 정치 상황이 변하여 스파르타 사람들이 그를 고국으로 불러들였다. 당시 스파르타에는 두 명의 왕이 있었는데, 그들의 통치력으로써는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없었던 것이다.

고국으로 돌아온 리쿠르고스는 개혁을 단행했다. 그는 28명으로 구성된 원로원을 창설한 다음 국가의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데 있어 왕과 원로원은 동등한 권한을 갖도록 했는데, 원로원이 할 일은 왕을 돕고 민중의 힘을 강화하는 것이었다. 그는 왕정과 민주정을 결합한 정치체제를 구축했던 것이다.

리쿠르고스의 개혁은 철저하게 법에 의해 시행되었다. 그는 스파르타의 입법자였고, 스파르타는 법에 의해 통치되는 국가였다. 그가 제정한 법은 조금의 빈틈도 없이 집행되었으며, 민중은 물론 왕까지도 그 법에 의해 행동의 제한을 받았다. 리쿠르고스 자신이 가장 먼저 솔선하여 법을 지켰음은 물론이다.

그렇다면 스파르타인들은 리쿠르고스의 법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얼핏 생각하면 그들이 법의 엄격함을 구속으로 느꼈을 것 같지만 실제는 그 반대였다. 그들은 리쿠르고스의 법이 자신들의 이익을 지켜준다는 것, 스파르타를 공정하고 강하게 만든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리쿠르고스의 법은 매우 엄격했지만 스파르타인들은 그 법을 굳센 의지와 인내심으로 지켜냈다.

리쿠르고스는 가장 먼저 토지를 공정하게 분배한 다음 사치스러운 행위를 금지했다. 장사꾼, 점장이, 조각가, 금은보석 세공사를 없앴으며, 식사는 공동 식사장에서 모여 함께 하도록 했다. 모든 사람들이 같은 수준의 빵을 먹도록 했고, 식사장에 늦게 도착하는 것을 허용되지 않았다.

결혼과 아기를 낳는 일까지도 법으로 규정했다. 청년들과 여자들에게 체력을 단련하도록 했고, 국가에서 유소년들을 한 곳에 모아 교육했다. 아이들은 머리를 깎고 맨발로 다니며 나체로 운동 경기를 했으며, 갈대를 손으로 잘라 손수 만든 잠자리에서 잠을 자야만 했다.

이렇게 단련된 스파르타인들이 그리스의 모든 폴리스 중 가장 강력한 군대를 가졌음은 물론이다. 스파르타인들은 전투에서 결코 물러서지 않았다. 그들은 두려움 없이 적과 싸웠다. 전쟁이 끝난 뒤 돌아온 병사에게 아들을 전장에 보낸 한 어머니가 자신의 아들이 스파르타인답게 용감하게 싸웠는지를 물었다. 이에 병사가 그녀의 아들을 칭찬하며 그런 용사는 다시없을 것이라고 말하자 어머니는 화를 내며 “그런 말 하지 마시오. 내 아들이 훌륭한 병사인 것은 맞지만 스파르타에는 그보다 더 훌륭한 군인이 많으니까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리쿠르고스는 스파르타의 왕, 원로원, 시민들에게 자신이 세운 법을 잘 지키겠노라는 맹세를 받은 다음 음식을 끊고 조용히 죽음을 맞았다. 그는 스파르타가 다른 여러 도시를 지배하기를 바라지 않았다. 리쿠르고스는 나라의 행복이란 모든 구성원들이 높은 덕을 가져야만 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국민이 자유인으로서 스스로를 절제함으로써 만족하며 살아가기를 바랐다. 플루타르크는 말한다. “그런 내용을 철학자는 단지 말로써 적었을 뿐이지만 리쿠르고스는 나라 전체에 실제 모습으로 견고하게 세웠다.”

세계는 초월적인 부분과 세속적인 부분이 있다. 전자를 진계, 후자를 속계라 하거니와 진계와 속계를 통어하는 것은 법, 즉 다르마이다. 부처님께서 장엄한 설법을 하실 때는 진계의 다르마를 선포하시는 것이고, 승단의 운영에 대해 말씀하실 때는 속계의 다르마에 관여하시는 것이다. 바꿔 말해서 경율론 삼장 가운데 경장과 논장은 진계의 다르마를 다루고, 율장은 속계의 다르마를 다룬다.

부처님께서는 경장에서 징벌보다는 포용을, 책망보다는 용서를 권장하시지만 율장에서는 다르다. 율장은 승려가 되는 법과 함께 잘못을 저지른 승려를 어떻게 처벌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자세히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종교는 순수히 진리만으로 되어 있는 체계는 아니다. 거기에는 인간의 실제적 삶이 있고, 그 삶에서 인간은 탐욕적이고, 무절제할 수 있다.

그 부분을 부처님께서는 계율로써 제어하셨다. 계율은 세속을 초월한 불법의 본류인 진계의 다르마에 기초하기는 했을지언정 기본적으로는 세속원리에 기초해 있다. 부처님께서 입멸을 앞두고 소소한 계율의 경우 변개할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리쿠르고스는 세속법을 제정한 사람이었다. 그의 법이 옳았는지 그렇지 않았는지는 차치하고 그 법이 목표삼은 바가 세속 그 이상의 것이었다는 점만은 분명하며, 그럼으로써 그 법에서도 부처님의 율장과 마찬가지로 절제와 만족이 중심 가치로 자리잡고 있었다. 리쿠르고스의 사례를 보며 우리는 불교에서의 세속 가치가 어느 자리에, 어떤 형식으로 자리잡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김정빈 소설가·목포과학대교수
jeongbin22@hanmail.net
 


[1419호 / 2017년 12월 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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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빈 교수 jeongbin2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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