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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에 패한 종교

기사승인 2017.12.26  15:5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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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모든 종교의 지표가 차가운 겨울을 향하고 있다. 이제 사찰, 교회, 성당, 교당들이 유럽처럼 연세 지긋한 몇몇 분들이 앉아 담소 나누는 그러한 공간으로 변해갈 날이 머지않았다. 왜 그럴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종교가 자본주의에 패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아니 거의 종속되어 가는 중이다. 오히려 자본주의는 종교라는 새로운 우군을 얻어 자신의 뜻대로 더욱 자신만만하게 전진하고 있는 중이다.

종교도 돈이 있어야만 포교가 된다고 한다. 돈으로 법당을 건설하거나 증축하고, 돈으로 뭐라도 선물을 주어야만 신도가 온다고 한다. 그러나 생각해보라. 부처님이나 조사들께서 삼시세끼 보장되는 따뜻하고 안락한 곳에서 도를 이루었으며, 돈을 물 쓰듯이 써가면서 신도들을 모아 법설의 장을 마련했는가. 돈이나 물질은 신심의 자발적 표현이다. 초기불교에서도 돈은 도를 닦는 데에 있어 핵심 사항도 아니었으며, 승가를 구성하는 데에도 돈을 중심으로 삼지는 않았다. 석가모니불은 오늘날 경제학자들의 말처럼 돈은 몸에 피가 흐르는 것과 같이 사회의 윤활유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돈을 모아 화려한 법당과 거대한 불상을 마련해야만 법이 세상에 전해질 것이라는 법문은 대장경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다.

종교는 종교의 역할, 정치는 정치의 역할, 경제는 경제의 역할이 있다. 기업은 참여자의 의식주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데에 있다. 이윤은 미래를 위한 재투자와 일정정도의 사회 환원으로 돌릴 수 있다. 종교는 신앙과 수행으로 이 세상을 평화의 세계로 만들어가는 것에 있다. 돈은 이를 위한 여러 수단 중의 하나일 뿐이다. 종교가 기업의 역할을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기업처럼 돈을 벌어야만 종교가 발전할 수 있다는 환상에 젖어 있다. 그래서 빚을 내어 건축을 하고, 이 빚을 갚기 위해 신도들을 모으기도 한다.

몇 년 전 우리 동네에 한 종교를 믿는 할머니가 이제는 더 이상 그 종교에 나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왜 오랫동안 다니던 종교를 그만 두고자 하느냐고 물었더니, 건축비용을 신도들에게 분할했는데 자신에게는 500만원이 떨어졌다고 한다. 돈이 믿음을 재는 척도가 되고, 수행을 검증하는 기준이 된 것이다.

자본주의는 종교를 점령했다. 그래도 아직은 많은 성직자들이 이 자본주의에 항복하지 않으려고 몸부림치고 있다. 그러나 메스미디어를 통해 종교인들이 과세에 저항하고, 부정한 세금정산을 하는 것을 보면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종교가 자신의 역할을 묵묵히 하고 있다면, 사회는 오히려 종교를 위해 무엇을 도와줄 것인가 고민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모습을 보면서 이제는 종교도 특권을 버려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탈성역, 탈권위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이지만, 이제 종교도 더 이상 보호해줄 가치를 가진 세계가 아닌 것이다.

자본주의는 냉혹하다. 케인즈는 비종교적인 자본주의야말로 통일성이나 공공심도 없으며 때로 가진 자와 추구하는 자의 단순한 집적에 지나지 않는다고 본다. 그리고 이러한 자본주의에 대해 “만일 경제적 진보에 도덕적 목적이 없다고 한다면, 우리는 비록 하루라 할지라도 물질적 이익을 위해 도덕적 이익을 희생해서는 안 된다는 결론에 이른다. 바꾸어 말하면 우리는 이미 사업과 종교를 혼이 다른 각각의 방에 넣어두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케인즈야말로 오히려 자본주의는 종교나 도덕이 계도해야할 세계라고 본 것이다.

하물며 종교가 어떻게 돈의 지배를 받을 수 있는가. 대중은 폭주하는 자본주의로부터 자신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 종교로부터 가르침마저 받지 못하고 있다. 자본주의의 희생자들을 돌보고 치유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 자본주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그것을 길들이지 않는다면 종교는 더 이상 설자리가 없을 것이다.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을 주장하는 불교야말로 이 세계를 혼란으로 몰아가는 그 주원인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대응해야 할 의무가 있다.

원영상 원광대 정역원 연구교수 wonyosa@naver.com


[1421호 / 2017년 12월 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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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영상 교수 wonyos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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