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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나를 대면하는 일, 공감으로 가는 첫 걸음

기자명 최원형

역지사지는 자신 처지 이해하는 데서 출발

행동주의 심리학자인 니콜라스 험프리는 '자신의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게 되면서 우리 선조들은 자신의 배우자와 자손, 그리고 사회 집단 내에 있는 다른 구성원들의 마음을 통찰할 수 있게 되었다'고 추측한다. 추측의 옳고 그름을 떠나 역지사지라는 말과 맥이 닿아있는 것 같다. 남의 처지를 내 처지로 바꿔보기만 해도 어느 정도 헤아릴 수 있다는 역지사지의 순서는 내 처지에 대한 이해에서 시작된다. 내가 힘들었던 기억에서 출발해야 상대방이 경험하게 될 힘듦을 헤아리는 일이 가능하니까.

인간 소외는 자연 소외서 비롯
‘연기’ 인식할 때 생명가치 찾아

얼마 전 한 아이돌 가수가 푸릇하기만 한 생을 마감했다. 그가 활동하던 그룹 이름을 언뜻 들어본 적은 있으나 개인에 대해 아는 바가 전무했다.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라서 어떤 연예인이 또 자살을 했구나 하는 정도로 가벼이 넘겼다. 유명인의 자살이어서 주목을 받을 뿐이었다.  이 사실만으로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가 많이 아프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 우연히 그의 유서를 읽게 됐다. 그가 자신의 힘듦을 지속적으로 피력했고 도움을 찾으려는 노력 역시 멈추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됐다. 소외된 이들 고통받는 이들에게 공감할 줄 아는 젊은이였고 사회참여적인 발언에도 적극적이었던 따스한 청년이었다. 그런 그가 정작 자신의 고통에는 어디서도 누구에게서도 공감을 받지 못했던 걸까? 자살로 생을 마감한 많은 이들도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고통을 누군가 알아주길 그래서 도움받길 기다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의 유서를 읽으며 들었다. 웹툰 작가로 이름이 난 한 청년이 자신이 겪고 있는 공황장애에 대해 털어놓은 인터뷰를 봤다. 유명해지면서 그에 걸맞은 기대치가 주변에서뿐만 아니라 자신도 하게 된다고 했다. 돈을 벌면 더 벌고 싶고 그러다 우울증을 넘어서 공황장애를 앓게 됐다고 고백했다. 그는 멈춰야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스스로 조절을 할 수가 없다고도 했다.

유명인이 자살하고 나면 대부분 우울증이란 낱말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명성을 유지해야 하는 압박감, 그 스트레스가 자신을 갉아먹는 동안에도 별다른 처치 없이 홀로 섬처럼 지낸다는 얘기 아닌가.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이루어진 사회에 왜 우린 각자가 이토록이나 홀로인 채로 남겨져야 할까? 남과 비교하게 되고 모든 척도는 돈에 맞춰져 버린 사회에서 ‘버티기’ 위해 쉴 틈을 스스로도 주지 못하고 세상도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 건 아닌지. 그러니 내 고민을 이야기하고 너의 불안을 들어줄 여유가 실종돼 버린 세상이 된 게 아닐지. 이따금 지인들과 비슷한 주제로 얘기를 나누다 보면 ‘그럼에도 어쩔 수 없지 않느냐’는 걸로 결론이 나곤 한다. 정상이 아닌 것을 정상으로 돌리려는 노력에는 뒷짐을 지고 우리가 뭘 어찌할 수 있겠느냐는 반응들을 만날 때마다 답답하다. 체념하고 시스템에 순응하려는 무기력증 말고 달리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가 없다는 것 또한 안타깝다. 어디서부터 잘못 꿴 단추였던 걸까?

이런 세상의 또 다른 쪽에선 이미 인간의 능력을 극대화시키고자 마침내 포스트휴먼이란 개념까지 등장했다. 포스트 휴먼의 등장으로 생명에 대한 정체성이 새롭게 정립되어가야 할 시점이 이미 도래한 것 같다. 인간의 신체적인 한계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한계까지 최대로 확장시킨 인간의 등장, 이런 현상이 그런데 나는 솔직히 두렵다. 내면은 갈수록 피폐해지고 허허로워지는데 이토록 뛰어난 인간 창조가 불러올 인간 소외가 당연한 귀결일 거라는 데에 생각이 미치기 때문이다.

은둔형 외톨이로 지낸 경험이 있는 한 일본 청년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신체가 불편한 이들의 고독을 해소해줄 분신로봇을 만들었다. 고독은 비단 신체가 불편한 이들만이 아니라 마음의 병이 깊은 이들에게도 크나큰 고통이다. 이를 사람이 아닌 로봇이 대신하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 좀 깨지고 넘어지고 엎어질 용기를 내라고 쉽게 말할 수 없는 시대다. 그것을 함께 껴안아 줄 사회 시스템이 터무니없이 연약하기 때문이다. 너와 내가 얼마나 가깝게 연결된 존재인지를 깨닫는 기회를 박탈당한 채 정신없이 살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생명의 진정한 가치란 연기적 관계를 인식하는데서 출발한다. 연기적 관계의 출발은 나 자신의 내면을 살피는 일에서 시작될 것이다. 나와 대면할 용기 속에서 타인의 고통에도 눈을 뜨게 되지 않을지.

최원형 불교생태콘텐츠연구소장 eaglet777@naver.com
 


[1421호 / 2017년 12월 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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