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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왜 지금도 ‘법성게’ 인가?

기자명 해주 스님

210자에 방대한 화엄사상 압축…한국불교 수행전통 오롯이 담겨

▲ ‘법성게’ 저자이자 ‘해동화엄초조’로 일컬어지는 의상 스님 진영. 일본 고산사(高山寺) 소장.

‘법성게(法性偈)’는 신라 의상(義湘, 625~702) 스님이 ‘화엄경’의 핵심교의를 담아 668년에 지은 게송으로서, 저술된 당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1350년간 지속적으로 널리 수지 독송되면서 전승되어 왔다.

‘해동화엄 초조’ 의상 저술
‘법’ 시작해 ‘불’로 마무리
1350년간 지속적으로 독송

문자·모습 등에 매이지 말고
지금 부처로 살라는 가르침

조선시대에도 주석서 편찬
마지막까지 듣는 천도법문
전체 내용이 ‘법성’ 노래해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예불과 기도를 포함한 의례의식에서 자주 예송되는 의식문 가운데 경전의 핵심내용을 담은 것으로서는, ‘반야심경’과 ‘화엄경약찬게’ 그리고 ‘법성게’가 대표적이다. ‘반야심경’은 600부 반야계 경전의 전 내용을 260자로 담은 것이고, ‘화엄경약찬게’는 80권 ‘화엄경’의 졸가리를 770자로 간략히 엮은 것이다.

‘법성게’는 60권 ‘화엄경’의 내용을 7언 30구 210자로 읊은 시로서, 구불구불 한 줄로 이어진 ‘법계도인’과 함께 반시(槃詩)로 지어졌다. 반시는 일승법계도합시일인(一乘法界圖合詩一印)이라고도 불린다. 그리고 의상 스님이 반시에 대해 직접 간략하게 해석한 내용과 함께 ‘일승법계도’라는 이름으로 유통되었다. 스님은 서문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은 선교방편인데 언어 문자나 이름 모습 등 가르침의 자취에 잘못 매달리지 말고 ‘이름 없는 참 근원[無名眞源]’으로 되돌아가게 하려고 반시를 지은 것임을 밝히고 있다. ‘무명진원’이란 바로 일승화엄, 법성(法性)임을 알 수 있다.

이 ‘법성게’ 내지 ‘일승법계도’는 신라·고려·조선시대를 내려오면서 계속 주석되어 왔다. 일연(一然, 1206~1289) 스님은 ‘삼국유사’에서 솥의 국 맛은 한 숟가락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다는 비유로, ‘일승법계도’가 ‘화엄경’의 전 세계를 다 보이고 있음을 극찬하고 있다.

의상 스님은 ‘화엄경’과 ‘일승법계도’를 강설하여 수많은 제자들이 깨달음을 얻고 화엄법계에 노닐 수 있게 하였다. 4대 제자, 등당도오자(登堂覩奧者), 10대 제자들이 성인과 현인[亞聖]으로 불렸다. 제자 진정(眞定) 스님의 어머니를 천도하기 위한 ‘화엄경’ 강설 때는 3000의학들이 화엄법문을 들었음은 널리 회자되고 있다. ‘법성게’ 또한 지금도 여전히 영가들을 극락왕생하도록 떠나보내기 직전, 도량을 돌면서 금생의 마지막순간까지 꼭 듣고 가게 하는 천도법문이기도 하다.

의상 스님은 전국에 화엄도량[華嚴十山]을 펼쳤고, ‘해동화엄초조(海東華嚴初祖)’가 되었다. 따라서 ‘법성게’는 의상 스님의 화엄경관 뿐만 아니라, 한국화엄사상 내지 한국불교 수행전통을 알 수 있게 하는 매우 중요한 법문이라 하겠다.

‘법성게’의 골자는 단연 법성이다. 아니 법성게 전체가 법성을 밝힌 것이다. 게송이 처음 법성으로 시작하기 때문에 제목이 ‘법성게’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실은 ‘법성게’ 전 내용이 법성을 노래한 것이다. ‘법성게’ 30구를 선적으로 해석한 ‘대화엄법계도주병서’에서 설잠(雪岑, 1435~1493) 스님도 210자의 종지는 법성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여 법성을 강조하고 있다.

불교의 모든 경전과 진언 다라니의 경우처럼 ‘법성게’ 역시 독송만으로도 공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법성을 잘 알고, 법계에 증입한다면 그 무엇과도 비길 데 없는 무량공덕을 얻을 수 있음은 분명하다.

▲ 7언30구 210자로 만들어진 ‘일승법계도합시일인(一乘法界圖合詩一印)’.

‘법성게’에서는 일승화엄의 세계인 법계를 법성으로 보이고 있으니, 법계 모든 존재가 법성원융의 법성성기이다. 다시 말해서 오척 되는 ‘나’의 몸인 오척신(五尺身)이 바로 오척법성으로서 법성신(法性身)이다. 반시의 그림은 온 법계가 한 몸인 모습[全法界一身之像]이다.

이 법성신을 바로 깨달으면 ‘화엄경’의 모든 부처님인 열 부처님[十佛]으로 출현하게 된다. 이를 법성가(法性家)에 되돌아간다고 한다. 예부터 부처[舊來佛]인 본래 자기 모습대로 살게 되는 것이다. 바꾸어 말해서 누구나 갈구하는 상락(常樂)의 영원한 행복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불교의 구경처인 불세계이고 성불임을 의상 스님은 역설하고 있다.

이 법문은 지금 여기, 이 몸 바로 붓다로 살게 하는 가르침이다. 설사 곧바로 눈뜨지 못해서 부처님처럼 살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적어도 무한한 가능성을 계발할 수 있는 잠재력이 갖추어져 있어서,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는 존재인 자신을 자중(自重)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 부연한다면 오척신이 법성신임을 굳게 믿는 신심만 있어도 신구의(身口意)와 육근(六根)으로 함부로 업을 짓지 않고 모두 행복할 수 있는 보리심행을 일으킬 수 있다.

의상 스님은 또 ‘백화도량발원문’과 ‘일승발원문’ 등을 지어서, 화엄정토인 법계로 인도해 주기도 하였다. 의상 스님의 이 발원문은 우리나라 발원문의 효시이다. 그리하여 당시 삼국통일로 인한 전란에 의해 피폐하고 고통스러운 이들에게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을 제시해 주었으니, 발원문을 통하여 불보살님의 가피를 입어서 스스로 치유하고 행복을 찾게 해 준 것이다.

그리하여 의상 스님은 ‘여래의 화현[金山寶蓋之幻有]’이라 칭송되었다.(‘의상전교’) 출가자는 물론 재가불자들도 다 같이 성불하고 부처님처럼 살고자 하는 원을 갖고 수행하고 신행생활을 한다. 하지만 그 일이 결코 쉽지 않음을 누구나 느끼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의상 스님은 줄곧 여래의 화현이라 존숭되었던 것이다. 스님은 제자들에게 가르쳐준 자신의 가르침 그대로 깨달은 삶을 펼친 화엄행자임을 잘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법성게’와 발원문을 지어 ‘화엄경’의 가르침으로 오로지 제자교육과 교화행으로 일관했던 의상 스님은 출신이 진골 또는 성골인 왕족으로서 15세 전후[丱歲]에 출가하였다. 그때는 신라에도 이미 경론이 많이 전래되어 있었던 터이다. 스님은 출가한 후 나름 수행하다가 원효(元曉, 617~686) 스님과 함께 현장(玄奘, 602~664) 스님의 명성을 듣고 입당 유학을 시도하였다. 도중에 원효 스님은 깨달은 바 있어 그만 되돌아갔다.

의상 스님은 ‘죽어도 물러나지 않겠다’는 서원으로 혼자서 입당하였다. 스님은 도중에 발걸음을 종남산 지상사(至相寺)로 돌렸다. 그리하여 지엄(智儼, 602~668) 스님 문하에서 ‘화엄경’을 배우고 ‘법성게’를 짓게 되었던 것이다.

현장 스님의 유식설은 망심(妄心)이고, 원효 스님이 깨달았다는 심성설은 진망화합(眞妄和合)의 여래장심이라면, 의상 스님이 수학한 ‘화엄경’의 유심설은 진심(眞心)으로서 여래장자성청정심이고 여래성기심(如來性起心)이다. 여래의 성품이 그대로 일어나 만덕을 구족한 마음인 것이다. 이로 볼 때 스님은 처음 중생 마음에서 점차 구경의 부처님 마음으로 다가감을 알 수 있다.

지엄 스님은 의상 스님과 처음 만나기 전날 밤 꿈을 꾸고는, 신라로부터 대덕이 올 줄 알고 도량을 깨끗이 소제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 자리에서 의상 스님은 화엄의 오묘한 뜻을 분석해보이고 입실하게 되었다.

지상사에서 ‘화엄경’ 공부를 계속한 의상 스님은 총장원년(668년) 7월15일에 ‘법성게’를 지었다. 스승 지엄 스님의 입적 후, 당나라가 신라를 침공하려 한다는 소식을 접한 의상 스님은 고국 신라가 전쟁에 대비할 수 있도록 귀국을 앞당기게 된다. 스님은 귀국 전후 계속 화엄성중의 두호와 호법용[善妙]의 외호를 받은 일이 전해진다.

귀국(671)후 의상 스님은 낙산에서 관음보살을 친견하고 관음신앙을 열었으며, 부석사를 화엄본찰로 삼아 제자들 교육에 헌신하고 화엄교화를 펼쳐갔다. 스님은 부처님 도량이 평등한 법계임을 몸소 보여주었다. 그것은 문무왕이 의상 스님을 존경하여 전답과 노비[奴僕]를 하사하려고 했을 때 ‘우리 불법은 평등하여 고하(高下)가 함께 동등하고 귀천이 다르지 않다’라 하고 받지 않았으며, 왕이 성을 많이 쌓으려고 백성들을 고달프게 함을 보고는 왕에게 권하여 축성을 그만두게 한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다고 하겠다.

오늘날도 의상 스님의 법력과 가르침이 얼마나 절실히 필요한지, 여전히 전국사찰에서 ‘법성게’가 독송되고 있는 인연을 깊이 돌아보게 한다. 스님의 혜명을 이어가려는 평등정신을 잘 전승하고 여래가 계속 출현하시는 청정 법계를 유지할 수 있기 위해서는, 의상 스님의 생애와 ‘법성게’에 담긴 화엄정신과 수증방편을 좀 더 깊이 이해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필자는 처음에 마음공부하려고 출가했는데, 먼저 강원에서 ‘화엄경’을 배우다가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만든 것이다(一切唯心造)”라는 구절에서 문득 경전의 유심설을 좀 더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강원을 졸업한 후 동국대와 동 대학원으로 진학하여 석사학위논문으로 ‘화엄경’의 발보리심에 대해서, 박사학위논문으로는 의상 스님의 ‘일승법계도’와 그 주석서에 보이는 법성 성기에 대한 것을 주제로 삼았다. 그 후 불교학과에서 화엄학을 주로 가르치다가 퇴임하고 현재 명예교수로 있는 중이다. 이제 법보신문에 ‘법성게’에 대한 글을 연재하는 새 인연을 만나게 되어, 지금까지 학생들과 함께 공부하고 연구한 ‘법성게’의 내용을 총 정리하는 기회로 삼고자 한다. ‘법성’의 ‘법(法)’에서 시작하여 구래불의 ‘불(佛)’로 끝나는 ‘법성게’ 30구의 내용을, “가도가도 본래자리 도달하고 도달해도 출발한 자리(行行本處至至發處)”로 표현한 의상 스님의 뜻을 잘 담아 낼 수 있을지, 눈 밝은 분의 질정을 바란다.

해주 스님 동국대 명예교수 jeon@dongguk.edu


[1422호 / 2018년 1월 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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