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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연재를 시작하며

기자명 임석규

사지는 문화재와 구비문학이 포함된 문화 부존자원의 보고

▲ 강릉 신복사지.

나는 탑과 부도를 돌아 먼 데 마을을 바라본다
길을 끌어당기고 있는
오래 묵은 풍경들과
마음이 끝내 허물지 못한 낡은 집 한 채
돌아가고 싶었다
이 폐사지를 건너
뜨거운 해와 바람과 물소리마저 사라진 뒤
밝아올 어둠의 자리
- 박영근, 폐사지에서 1

사지란 법등이 끊긴 사찰터
전쟁이나 왕조 바뀌며 폐사

석탑과 석등 등 문화재 산재
지하에도 많은 문화재 매장

사지 조사, 조선 때부터 시작
2010년 조계종 주도 본격 조사

기록 등장 사지 5393곳 파악
현재까지 총 3550개소 조사

사지 문화재 1만2000점 추정
개발과 도난으로 훼손 진행 중

살아온 이력 때문인지 가끔 외국인들에게 우리 문화유적을 소개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나의 첫 번째 추천지는 항상 해뜨기 직전 황룡사지이다. 태양이 토함산 동쪽 사면을 힘겹게 등반하고 있을 때 경주 들판에는 여명이 밝아 온다. 그 시간 안개 자욱한 황룡사지 복판에 서면 마치 간유리를 통해 세월 너머를 보는 듯 몽환적 분위기에 빠져들게 든다.

사지란 법등이 끊긴 사찰의 터를 뜻한다. 부처님에 대한 신행활동이 지속되다가 타의 혹은 자의에 의해 중지되면서 그와 관련된 건조물들이 없어지고, 이후 흔적만 남게 된 공간이다. 그러므로 사지는 ‘절이 있었던 터’라는 유형문화재적인 의미와 함께 우리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사상과 신앙이 함께 담겨 있는 물질적·정신적 산물이다.

사찰이 폐사되는 원인은 다양하다. 우선 전쟁이 원인이 된 경우이다. 잘 알려진대로 고려시대 몽고의 침입으로 황룡사가 폐사되었으며,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 남원 만복사가 폐사되었다. 그리고 한국전쟁을 겪으며 금강산 유점사와 장안사, 신계사가 소실되었다. 둘째는 국가이념의 변화 등 내부적인 요인을 들 수 있다. 조선이 건국되며 실시된 선교통합이나 도성 내 사찰 해체 등은 기존 왕조의 사상적 이념을 부정했던 내부적 요인의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밖에 조선 후기 자행된 관원과 유생들에 의한 정신적·경제적 수탈도 원인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불교는 약 1700년 동안 단순히 종교적 신앙체계로서의 기능을 뛰어넘어 한국 문화의 큰 축을 담당해왔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 사찰이 운영되었던 사지에는 다양한 가치가 내재되어 있다. 우선 사지에는 석탑이나 석등, 사적비나 고승비, 승탑 등 개별 유형문화재가 공존하고 있으며, 지표면 아래에는 사찰이 운영되던 당시 사용하였던 수많은 문화재가 매장되어 있다. 우리나라는 부존자원이 부족한 나라라고 하지만 사지는 그 지하에 수많은 문화재가 매장되어 있기 때문에 역사·문화 부존자원의 보고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각종 역사적 사건이 직접 발생했던 장소였다는 점이나 설화 등 구비문학을 포함하여 국민생활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민속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복합역사문화유적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음악, 무용, 의식, 기술 등 무형문화재가 집약되어 있다는 점, 명승지에 해당될 정도로 유적의 범위 및 입지환경이 다양하다는 점 등도 문화재적 가치를 높이 볼 수 있는 요소이다.

▲ 경주 황룡사지 전경.

전국에는 많은 사지와 그곳에 남아 있는 불교문화재가 분포하고 있지만, 전체 현황이나 문화재로서의 가치에 대한 검토가 되지 않은 채 개발과 경작 등으로 훼손되거나 도난당하고 있다. 이에 대한불교조계종 (재)불교문화재연구소는 문화재청과 함께 대책 마련과 종합적인 보존, 관리방안을 모색할 수 있는 학술 및 행정자료 구축을 위해 사지조사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사지에 대한 조사는 조선시대부터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1481년에 편찬되어 1530년에 증보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과 1760년대에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에는 ‘불우(佛宇)’와 ‘사찰(寺刹)’ 항목을 두어 각 지방에서 운영되고 있던 사찰과 사찰의 터를 기록했다. 18세기 후반에는 ‘범우고(梵宇攷)’ ‘가람고(伽藍考)’와 같이 불교사원을 중점적으로 다룬 문헌들도 편찬되었다. 이러한 고문헌들은 이 땅에서 존폐를 거듭했던 수많은 사찰들의 전모를 파악할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자료들이다.

20세기 이후,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일본인들에 의하여 근대적 방법으로 고적 조사가 행해졌으며, 이를 통하여 옛 문헌에 기록된 사찰 중 많은 수가 폐사되어 그 터만 남아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게 되었다.

1977년에는 문화재관리국에서 전국에 있는 문화재와 유적지를 조사하여 집대성한 ‘문화유적총람(文化遺蹟總覽)’을 발간하였다. 이를 토대로 1980년대부터는 문화유적을 각 분야별로 활발하게 조사하면서 개별 사찰과 사지에 대한 보고서가 간행되었고, 각 시‧도에서는 자체적으로 지역 내 불교문화재 조사를 진행하였다. 또한 1996년부터 전국 각 시‧군에서는 ‘문화유적분포지도’를 발행하기 시작하였다.

한편, 사지만을 대상으로 한 전국 단위의 조사는 대한불교조계종의 노력과 관심으로 시작하게 되었는데, 이는 1997~1998년에 걸쳐 발간된 ‘불교사원지(佛敎寺院址)’를 보면 알 수 있다. 이 책은 ‘신증동국여지승람’과 같은 조선시대 지리서와 ‘문화유적총람’ 등을 바탕으로 작성되었고, 현장조사를 시행하지 않고 기존 자료를 정리한 것으로서 향후 정밀지표조사를 대비한 기초자료로 볼 수 있다.

▲ 전남 함평 동여정(해보리사지 석탑재 사용).

이러한 조계종의 사지 보존·관리에 대한 관심과 요구로 2005년에 사지 보존에 목적을 둔 문화재보호기금법안이 발의되었고, 2009년에는 문화재보호기금법이 신설되었다.

이 기금법을 근거로 대한불교조계종과 문화재청이 힘을 모아 전국 사지에 대한 전수조사를 계획하였고, 2010년부터 문화재보호기금법 최초사업으로 사지조사사업이 시작되었다.

본격적인 사지조사에 앞서 전국의 사지와 소재문화재에 대한 기본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한국사지총람’을 사업 첫해인 2010년에 발간하였다. 이 보고서는 사지 관련 문헌과 기존 자료를 검토하고 집대성한 것이다. ‘한국사지총람’은 전국의 사지와 사지 소재문화재에 대한 기존 정보를 모아 각 시, 군 단위로 정리한 보고서이다.

사지의 위치와 현황파악은 해당하는 사지와 관련된 조사보고서를 포함하여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간행한 ‘문화유적분포지도’의 내용을 기반으로 하였다. 현장조사는 사지 특성에 따라 ‘매장문화재 보호 및 조사에 관한 법률’과 동 법률 시행령의 지표조사 내용에 준하여 시행하였고, 조사결과는 불교학적 배경 하에 미술사, 고고학, 역사학, 건축사 등 다양한 학문적 판단에 근거하여 진행하였다.

각종 사료와 보고서 등을 통해 한국의 사지는 총 5393곳으로 파악되었고, 2010년부터 2017년 현재 사지조사사업을 통해 조사된 사지는 총 3550개소이다. 이중 231개소는 탐문 등을 통해 새롭게 확인된 사지이다.

사지뿐만 아니라 소재문화재에 대한 현황 파악도 함께 이루어졌다. 현재 사지에는 석탑과 불상 등 석조문화재들이 상당 수 남아 있기 때문에 노천박물관 기능을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현재 사지에 남아있는 소재문화재는 학술적 가치평가나 문화재 지정을 받지 못한 채 멸실 위기에 처해 있다.

현재까지 소재문화재는 2543곳의 사지에 1만2000여점이 남아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그리고 공공시설, 박물관, 미술관, 학교 등 사역이 아닌 다른 곳으로 이동된 문화재는 3600여점이나 되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사라져 버린 망실문화재는 2387점인데 그 중 비지정문화재가 2382점이어서 도난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정밀조사에 이은 문화재지정이 가장 확실한 방법임을 알 수 있다.

매해 사지에 대한 현황조사를 통해 자료를 구축하고, 정리할수록 대다수의 사지는 이제 ‘터’조차 찾기 힘들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게 된다. 2000년대 이래로 건축을 위한 대지정비를 할 때 중장비를 사용하는 것이 보편화되면서 이러한 상황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 그럼 우리가 잊고 지낸 그 많은 절터는 이제 포기해야 하는 걸까? 이에 대한 대답은 ‘가장 늦었을 때가 가장 빠를 때다!’라고 생각된다. 아직 문화재로 지정받지 못한 채 방치되어 있는 절터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합리적 처우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지금부터 모두가 고민하고 논의해야 한다. 그동안 잊고 살았다고 하여 계속 잊고 있다간 나중에 우리 후손에게 할 말이 없다. 우리 모두의 관심과 고민이 지금부터라도 필요하다.

임석규 불교문화재연구소 유적연구실장 noalin@daum.net
 

[1423호 / 2018년 1월 1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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