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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수행 조규승-상

기자명 법보신문

▲ 59, 원각
‘무소유(無所有).’ 고1 때 들은 말이었다. 내가 다니던 학교는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학교였는데 한 방에 있던 3학년 선배가 어느 날 법정 스님의 ‘무소유’라는 말을 했던 것이었다. 지금 기억으로는 그것이 법정 스님의 수필집을 말한 것인지 대화 속에서 나온 말인지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그 이후로 ‘무소유’라는 말은 나의 머릿속에서 하나의 화두처럼 계속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것이 불교와의 첫 인연이 아니었던가 생각한다.

운전면허 취소로 삶 반추
하고 싶은 일로 불교 선택
여래사불교대학에서 공부
아침마다 108배하며 정진

대학을 졸업하고 고등학교 윤리 선생님이 되어 학생들에게 서양윤리, 동양윤리, 한국윤리 등을 가르치면서 불교에 대한 관심은 늘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직접 뛰어들지는 못하고 언저리를 빙빙 돌기만 하였다. 나이 50세가 넘어 인생을 돌아보는 계기가 찾아왔다. 음주로 운전면허가 취소된 것이다. 그동안 학교에서 앞만 보고 달려오던 생활에서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사회적 지위 획득과 외적 평가에 연연한 생활, 내면적 만족의 저하 등….

언젠가 신문에서 본 ‘뽀로로’를 만든 최종일씨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안정적인 직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을 거부하고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어 직장을 뛰쳐나와 ‘뽀로로’를 만들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나도 그동안 ‘할 수 있는 일’ 만을 해왔고 내면적 만족보다는 의무감,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 따라 일을 해온 것은 아닌지 자문했다. ‘그래, 하고 싶은 일을 한번 해보자.’ 2012년 3월, 그동안 늘 생각만 하던 불교 공부를 시작했다. 여래사불교대학에 입학하여 불교 공부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부처님께서 귀족 자제들에게 말씀하신 “잃어버린 귀금속을 찾는 대신 나 자신을 찾는 일”의 소중함을 뒤늦게 발견하게 된 것이다.

여래사불교대학에서 공부를 하며 새롭게 변화된 사실은 이전에는 머리로, 이론적으로 알던 불교적 지식이나 내용들이 실제 생활에서 몸으로 새롭게 다가온다는 사실이었다. 원장이 수업 중에 말씀하신 ‘남편부처, 아내부처, 아들부처, 딸부처’ 모두가 부처라고 한 말이 실제로 와 닿았다. 특히 ‘아내를 부처님 대하듯이’ 공경하면 공경을 받는다는 사실, 기분 상하는 일이 있어도 다시 한 번 ‘아내부처’ 이런 생각을 하면 곧바로 말과 행동이 달라졌다.

“여보 절에 갈까?” 일요일 아침 아내와 하는 말이다. 그동안 공통의 관심사가 없던 우리부부사이에 이제는 일요일 아침에 함께 할 수 있는 일이 생겼다. 범어사, 통도사가 주로 가는 곳이다. 대웅전에 가서 108배 기도도 하고 시간이 맞으면 절에서 점심공양도 같이한다. 불교 공부를 하면서 얻은 우리 부부만의 데이트 방식이고 즐거움이다.

무엇보다 달라진 것은 아침의 일상이다. 새벽 5시, 안방 TV가 자동으로 켜지면서 불교방송이 나온다. 자다가 눈을 부스스 뜨고 아침예불 방송 소리를 들으면서 간단한 스트레칭을 하고는 108배를 할 준비를 한다. 6시쯤 108배가 나오면 따라서 절을 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그냥 운동 삼아 며칠 동안만 해야지 하면서 시작한 것이 벌써 몇 년이 흘렀다. 이제는 아침에 절을 하지 않으면 뭔가 허전한 느낌에 저녁에 와서, 상황이 도저히 안 되면 다음 날이라도 못한 절을 해야만 마음이 편안하다.

절을 하면서 마음속으로 여러 가지를 발원한다. 그 중 하나, 아내가 불교 공부에 동참하게 해달라고 빌었는데 진짜 어느 날 아내는 집 근처에 있는 청량사에 등록하여 불교 공부를 시작했다. 또 우리 반 아이들 한명 한명의 이름을 되뇌며 모두 원하는 대학에 가게 해 달라고 마음속으로 기원하면서 아예 학생들의 이름으로 108배 기도문을 만들었다. 해마다 40여명에 이르는 학생 이름을 두 번 반복하고 주변에 병고를 겪는 분들의 이름까지 포함해 108배 기도문을 만들었다. 예전에는 담임을 맡게 되더라도 1년 내내 학생 이름을 다 외우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렇게 기도문을 만들어서 절을 하니 2주 만에 거뜬히 외우게 되었다. 최근에는 여래사불교대학 동문회에서 추진해 온 108산사순례회의 순례 회향에 맞춰 108사찰의 명칭으로 기도문을 만들어 외우고 있다. 이 기도문은 주위에 108배 수행을 권하는 방편으로도 활용할 수 있어서 좋다. 어느덧 나는 나의 학교에서, 주변 친구들이나 지인들에게도 떳떳하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불자(佛子)입니다. 불교를 공부하고 있습니다”라고 말이다.

[1423호 / 2018년 1월 1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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