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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고은의 ‘화살’

기자명 김형중

화살과 과녁의 상징 명료히 제시
독재에 맞설 것 권한 대표 저항시

우리 모두 화살이 되어
온몸으로 가자
허공 뚫고
온몸으로 가자
가서는 돌아오지 말자
박혀서
박힌 아픔과 함께 썩어서 돌아오지 말자

우리 모두 숨 끊고 활시위를 떠나자
몇 십 년 동안 가진 것
몇 십 년 동안 누린 것
몇 십 년 동안 쌓은 것
그런 것 다 넝마로 버리고
화살이 되어 온몸으로 가자

허공이 소리친다
허공 뚫고
온몸으로 가자
저 캄캄한 대낮 과녁이 달려온다
이윽고 과녁이 피 뿜으며 쓰러질 때
단 한 번
우리 모두 화살로 피를 흘리자
돌아오지 말자
돌아오지 말자

오 화살

과녁은 독재 화살은 민중 투쟁
민주주의 위해 싸우자는 선언
내게 날아오는 세월이란 화살
투철히 살아가란 강렬한 외침

고은(1933~현재)의 ‘화살’은 1970년대 박정희 독재정권에 대하여 투쟁을 권면하는 대표적 저항시다. 화살과 과녁의 상징이 직설적이고 명료하다. ‘과녁’은 독재정권이고, ‘화살’은 과녁을 뚫어야 할 민중의 희생적 투쟁이다. 시위를 떠난 화살이 앞만 향해 나아가듯이 오직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해 독재정권과 싸워서 피를 흘리며 죽자고 선언한다. 천하의 고은이다. 시가 세상과 민중을 향해 울부짖는다.

“우리 모두 화살이 되어/ 온몸으로 가자/ 허공을 뚫고/ 온몸으로 가자/ 가서는 돌아오지 말자/ 박혀서 박힌 아픔과 함께 썩어서 돌아오지 말자”라고 호소하고 있다.

필자가 작년 촛불집회 때 ‘화살’을 읽으며 피의 화살, 죽음의 화살이 내 심장을 향하여 날아와서 전율을 느꼈다. 그러나 평화적이고 지속적인 시민혁명이 되려면 피를 흘려서는 절대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렇던 이 시를 다시 꺼내 새해 벽두에 소개한 이유는 나이 육십이 지난 내 자신에게 경구(警句)로 삼기 위함이다.

나의 나태, 무기력, 망설임, 비굴, 미련, 집착 등을 경책하는 화살로 삼기 위함이다. 장기 경기불황으로 국민들도 젊은이도 지치고 피곤한 모습이 역력하다. 내 심장을 향해 날아오는 세월이란 화살이 좌고우면하지 말고 투철하게 살아가라고 강렬한 외침으로 들려왔다.

“돌아오지 말자/ 돌아오지 말자/ 오 화살” 이 결구는 구도자가 깨달음을 완성하고 다시는 고통과 번뇌가 윤회하는 이 세상에 돌아오지 말라는 불래(不來)의 경지인 ‘아나함(阿那含)’과 불생(不生)의 경지인 아라한(阿羅漢)를 읊고 있다. 내 삶의 의미가 이것으로 완성되었다는 뜻이다. 더 이상 미련이나 집착이 없다.

그 동안 어리석음을 되풀이하며 후회하고 살았지만 회갑이 지난 나이에 이제는 되돌아 갈 시간과 여유가 남아 있지 않다. 오직 앞을 향해 살아갈 뿐이다. 가다가 지쳐서 넘어지면 그 자리가 마지막 죽음자리이다. 한 번 사는 일기(一期)인생, 이제라도 후회함이 없도록 투철하게 살아야 한다.

2연 “우리 모두 숨 끊고 활시위를 떠나자/ 몇 십 년 동안 가진 것/ 몇 십 년 동안 누린 것/ 몇 십 년 동안 쌓은 것/ 그런 것 다 넝마로 버리고/ 화살이 되어 온몸으로 가자”는 고정관념과 구태를 벗어던지고 집착하는 마음이 없이 일념으로 살아갈 것을 일갈하고 있다.

‘임제록’에 “우물쭈물 세월을 헛되이 보내지 말라. 구도자는 무엇보다도 진정한 견해에 대한 깨달음을 소중히 생각해야 한다. 스스로 각고 분투하여 몸으로 부딪쳐 체구연마(體究硏磨)하여 투철한 깨달음을 얻으라”고 갈파하였다.

무술년 새해가 고통 받고 있는 중생이 행복하고, 진실과 진리를 향한 일념으로 용맹정진 하는 해가 되기를 기원한다.

김형중 동대부여중 교장·문학박사 ililsihoil1026@hanmail.net
 

[1423호 / 2018년 1월 1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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