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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임용 지원자의 탄식

불교 전공자 뽑는다면서
대학은 영어 강의 요구
불교 특성 외면 안타까워

최근 교수임용에 지원한 분과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일본에서 불교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때마침 불교 관련 전공자를 뽑는다는 소식을 듣고 해당 대학에 지원했다. 각종 서류와 연구실적을 제출하고, 강의 평가 및 여러 차례의 면접 과정을 모두 마치고 이제는 1월말 최종 결과를 기다린다고 했다.

그는 심사 과정에서 당혹스러웠던 일들을 조심스레 털어놓았다. 영어로 진행하는 강의도 그중의 하나였다. 그에 따르면 응시자들은 반드시 영어로 15~20분 정도 자기 전공을 강의해야 했다. 며칠 동안 준비해 겨우 강의를 마칠 수 있었으나 심한 자괴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단다. 더욱이 이날 심사를 맡은 5명의 교수들 중 1명만 미국에서 학위를 받아 영어에 익숙했을 뿐 나머지 4명은 영어에 익숙하지 않았다는 것. 그래서 강의하는 쪽도 어색하고, 강의를 듣는 쪽도 어색한 웃지 못하는 상황이 연출됐다고 했다.

그는 획일화된 평가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일본은 오래 전부터 불교학 전통이 강했고, 최근 중국에서도 불교학 연구가 엄청나게 발전하고 있다는 것. 그런데 다른 학문도 아닌 불교학 전공 교수로 채용하는데 어떻게 영어 강의만 심사 대상이 될 수 있느냐는 지적이었다.

사실 대학에서 영어와 글로벌이라는 이름으로 학문의 특성과 교육이 배제된 것은 오래 전이다. 아직도 국내 대학들이 많은 전공강의에서 영어 강의를 의무화 하고, 각종 대학평가에서도 영어 강의가 글로벌 지수의 중요한 요인으로 간주되고 있다. 많은 학교 관계자들이 영어 강의가 대학의 국제화를 촉진시켜 학문 발전에 기여하고, 동남아 등 외국 학생들이 한국에서 공부하도록 유도하려면 영어 강의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공공연히 해왔다.

하지만 영어 강의 열풍은 성과보다 부작용을 불러왔다. 영어권에서 공부하지 않은 기존 교수들의 부담이 커지고 강의 내용이 부실해지는 사례들도 많았다. 불교종립대학인 동국대도 한때 불교학을 비롯한 영어강의를 30%까지 올림으로써 교육부 등 외부 평가는 올랐으나 강의 수준은 급격히 하락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학문의 국제교류는 우리의 학문성과를 외국에 소개하고, 외국의 성과를 국내에 받아들여 반영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 학자들이 영어로 능숙하게 강의하고, 영어 논문을 작성해 국제적인 저널에 발표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더라도 형식에 과도하게 치우지면 내용이 빈약해지기 십상이다. 가장 중시돼야 할 것은 논문 자체의 질적 향상이기 때문이다. 학문의 특수성을 배려하지 않은 획일화로는 세계적인 수준의 논문이 나오기 어렵다. 가까운 일본도 영어강의가 의무화되지 않았으나 좋은 논문이 많이 나오고, 동남아를 비롯한 서구에서 온 외국인들이 일본어를 배우며 공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 이재형 국장
“대학은 학생들의 유학생활을 미리 돕기 위한 유학원도 아니고 맹목적인 영어화를 국제화로 착각하는 곳이 되어서도 곤란하다. 대학이 어떤 철학과 목적을 가지고 기능해야 하는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한 것이다.” 한국 대학 풍경을 지켜본 외국 학자들의 지적이다.

대학이 불교 교수를 뽑는데 있어서까지 영어를 절대시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학문의 다양성과 독자성을 중시하고 학문의 성취 자체에 보다 큰 비중을 두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재형 mitra@beopbo.com
 


[1424호 / 2018년 1월 1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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