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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절대악인가

‘서유기(西遊記)’에는 수많은 요괴들이 등장한다. 그 가운데는 보살님께서 손오공이 요괴를 죽이는 것을 말리고 가람을 지키는 이로 받아들이거나, 제자로 삼는 경우도 있다. 그런 가운데 나오는 관세음보살님의 한마디가 있다. “오공아, 보살이나 요괴나 결국 한 생각일 뿐이지. 근본을 말한다면 모두 본래 없음이니라!”

어떤 존재가 선이라든가 악으로 본디부터 고정되어 있다는 생각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이 말, 우리가 부처님의 지혜로부터 배워 이 세상을 새롭게 건설해나가는데 가장 중요한 방향타가 될 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와는 다른 존재를 악으로 규정하고 말살하려는 방향으로 움직이지 말고, 나와의 올바른 관계맺음을 통하여 함께 큰 목적을 향해 나가는 벗으로 만들어 나가는 길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큰 원칙을 적용하려 하면 근본적으로 수많은 압력이 밀려들고, 나 자신도 어찌 하면 좋을지 모르게 되는 대상이 있다. 바로 북한이다. “북한도 단지 잠시 잘못되어 있을 뿐이지 근본적으로 악은 아니지 않은가?” 하고 말하는 순간 수많은 돌팔매를 맞을 각오를 해야 한다. 필자 자신도 그들의 행태를 어떤 식으로 이해하고 용인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 막막해지기도 한다. 적어도 어떤 접점을 발견할 수 있어야 서로를 이해하고, 그렇게 하여 가까워질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시작이 너무나 어렵다.

그러나 거꾸로 이러한 막막한 어려움을 느끼는 것 자체가 근본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와 가장 가까울 수 있는 존재, 실제로 같은 민족이며 또 공간적으로 가장 가깝게 놓여 있는 두 존재가 이렇게까지 멀리 떨어지게 된 원인을 잘 살펴야 되지 않을까 싶다. 이 지면을 통해 몇 번이나 강조하였듯이, 우리가 지향하기로 합의한 민주에 역행하는 세력들은 북한의 위협을 반민주를 합리화하는 전가의 보도로 사용하여 왔다. 남북갈등의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부추긴 주범은 반민주세력이었다는 말이다. 그 과정에서 북한은 어떤 악마보다도 더 흉측하고, 어떤 요괴보다도 더 사악한 존재로 각인될 수밖에 없었다. 함께한다는 것이 불가능한 존재로 낙인찍음이 남북양극화를 부추기는 근본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우리의 의식에 찍힌 각인이 북한과의 문제를 논의할 때는 늘 절벽과 같은 저항을 일으키는 것이다.

물론 필자가 북한이 보이는 행태를 좋게 보자고 하는 것은 아니다. 핵 문제를 용인하자는 것도 아니다. 현실적인 것은 철저히 현실적인 논리로 대응해야 한다. 올바로 대응하고 응징할 것은 올바로 응징해야 한다. 그렇지만 근본적으로 말살해야 하는 것은 악으로 대할 수는 없다는 것을 전제해야 한다는 말이다.

6자회담이니 몇 자 회담이니 하지만 결국 평화통일의 주체는 남과 북이어야 하고, 또 남과 북일 수밖에 없다. 한반도의 진정한 통일을 원하는 나라가 어떤 나라일까? 미국일까, 일본일까, 중국일까, 러시아일까? 내가 그 나라의 입장이라 할지라도 진심으로 그것을 바라지 않을 것 같다. 그저 남북한은 시끄럽지만 않으면 그렇게 분단된 채로 여러 국가들 또는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의 완충지대로 남는 것이 좋을 것도 같다. 그 가운데 우리 민족이 겪는 아픔이야 적당히 동정하고 적당히 무마하면서 가는 게 그들의 이익에 부합하리라 생각한다.

결국 모든 괴로움을 겪어야 하는 것은 우리들이다. 국제관계와 세계사의 질곡을 떨치고 일어나야 할 것도 우리들의 역사적 사명이다. 남들에 기대할 수 없다. 평화통일에 대한 우리 모두의 강한 의지와 적극적 움직임에 나머지 강대국들이 반대할 명분을 가지지 못하게 하는 것만이 통일의 길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니 어렵고 어렵더라도 북한을 절대악으로 몰아붙이는 것에 쉽게 부화뇌동하지는 말자. 북한의 모든 움직임을 악의적으로 해석하거나 폄하하지는 말자. 그들이 하나의 호의를 보인다면 열로 호응하는 큰 모습을 보이자. 그 때문에 북한의 행태가 더 잘못된다는 격렬한 비판도 있지만, 참으로 속 좁은 근심이 아닐까? 그런 날선 반응의 바탕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렇게 반등하면 또 무엇이 더 나아질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성태용 건국대 명예교수 tysung@hanmail.net


[1424호 / 2018년 1월 1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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