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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피에타와 아미타

기자명 주수완

‘열렬하게 없음’으로 죽음과 해탈 넘어선 온전한 공 세계 드러내

▲ 피에타. 바티칸 성 베드로 성당. 1499년 완성. 높이 175㎝.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를 보기 위해 베드로 성당으로 들어가려는 엄청난 인파 속에 줄을 서 차례를 기다리다보면 천국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지옥임을 깨닫게 된다. 따가운 햇살 아래 두 시간을 기다린 끝에 드디어 천국으로 가는 문이 열렸다.

예수의 죽음 표현한 피에타
슬픔보다 평화로움 감돌아

예수 죽음은 슬픈 일이지만
부활 통해 그리스도 거듭나

슬픔과 완성의 상반된 죽음
미묘한 그 감정을 함께 표현

열반 든 부처님도 같은 표현
죽음이지만 결국 해탈 역설

아미타불의 표정도 마찬가지
극락도 죽어야 갈 수 있는 곳

슬픔과 기쁨의 감정 넘어선
죽음이 결코 끝 아님 읽어야

미켈란젤로는 4점의 피에타를 만들었지만, 이 바티칸의 피에타가 가장 유명하다. ‘피에타’란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뜻의 이탈리아어라고 하는데,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의 주검을 어머니 성모 마리아가 받아들고 슬퍼하는 장면을 묘사한 도상이다. 인간적인 개념으로 말하자면 자식을 먼저 보낸 어머니의 마음이니 그 슬픔을 어찌 다 표현할 수 있을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슬픔이 주제인 이 작품에서 성모는 그다지 슬퍼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슬픔보다는 평화로움마저 감도니, 이것이 진정 피에타인가 싶다. 어쩌면 완전히 힘을 풀고 누워있는 죽은 예수의 멋진 인체 표현, 그리고 이를 감싸고 있는 성모 마리아의 풍성한 옷자락의 사실적 표현, 더불어 성모 마리아의 인간적 아름다움 따위가 이 작품의 예술적 가치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런 부분들은 더 큰 목적을 위한 부분적인 요소들에 불과하다.

▲ 1400년경 무명작가가 만든 피에타. 독일, 뮌헨 바이에른 국립박물관.

피에타라는 도상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불교의 열반상과 서로 통한다. 열반은 죽음이고 슬픔이지만, 열반을 통해 부처님은 비로소 완전한 해탈에 드셨다. 부처님은 원래 보드가야에서 깨달음을 얻으시자마자 열반에 드시려고 했지만, 브라만과 인드라의 간곡한 청으로 세상에 남아 중생제도를 결행하게 되셨던 것이다. 따라서 부처님께 열반이란 다만 중생제도를 위해 잠시 미뤄둔 궁극의 목적이었을 뿐이다. 예수의 죽음 역시 다르지 않다. 인간의 원죄를 속죄하기 위해 지상에 내려진 희생양으로서의 임무를 다함으로써 예수는 비로소 진정한 그리스도가 될 수 있었다.

때문에 석가모니의 열반이나 예수의 죽음은 숫도다나왕의 아들과 목수 요셉의 아들에게는 죽음이었지만, 이를 통해 진정한 불교와 기독교가 시작되는 장면이기도 한 셈이다. 한편은 슬픔이고 한편은 완성을 의미한다. 이 장면이 마냥 슬프게만 묘사될 수 없는 이유이다. 그렇다고 그것이 마냥 환영하고 축하해야할 일만은 아니다. 중생들에게는 결국 성인과의 작별이다. 이 세상에서 더 이상 부처도 예수도 뵐 수 없다는 것은 무척 슬픈 일이다. 때문에 슬픔도 기쁨도 아닌, 무어라 설명하기 어려운 복합적인 감정이 바로 열반과 피에타의 도상적 개념인 것이다. 이 두 극단적 감정이 만나 서로를 상쇄하며 완전한 ‘공(空)’이 되었다.

▲ 라파엘, ‘성 모자와 성 요한’, 1506년, 우피치 미술관, 피렌체.

미켈란젤로는 아들을 잃은 그 이루 형용할 수 없는 무한한 슬픔을 성모의 비워 놓은 표정으로 대신한 듯하다. 그러나 그것은 고작 무표정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무표정은 그야말로 표정이 없다는 것이고, 또한 감정이 없다는 것이지만, 미켈란젤로가 나타낸 것은 시각적으로는 도저히 담아낼 수 없어 비워 놓은 표정인 것이다. ‘무’는 여하간 없는 것이지만, ‘공’은 표현할 수 없을 뿐 여하간 있는 것이다. 어쩌면 공을 중시하는 불교가 미술로 시각화될 수 있는 것도 바로 이 공을 표현하는 예술이기에 불교 안에서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공’하기에 ‘영원’한 것이다.

“지금도 아무 것도 안 하고 있지만, 더 열렬히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다”라는 모 카드회사의 광고 카피가 있었다. “열렬히”와 “아무 것도 하지 않다”는 언뜻 어울릴 수 없는 개념이다. 열렬히 무엇인가를 할 수는 있지만, 아무 것도 안 하면서 “열렬히”라는 것은 이미 “열렬히 아무 것도 하지 않음”이라는 행위를 하게 되는 셈이다. 그래서 모순이다. 그런데 이런 표현은 불교에서 많이 볼 수 있으며, 불교미술이 추구하는 바 역시 바로 이 “열렬하게 없음”이 아닐까? 그러나 모순이 아닐 수 없다. 무엇인가를 표현하는 작업인 예술이 아무 것도 없음을 표현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다. 그 역설이 바로 종교와 예술이 만나는 지점이고 피에타의 마리아는 열렬히 아무런 표정도 담아내지 않았다.

이 피에타에서 또 한가지 주목되는 것은 예수에 비해 마리아가 너무 크다는 점이다. 피에타 도상 자체는 미켈란젤로 이전부터 북유럽을 중심으로 유행했던 도상이었다. 그런데 미켈란젤로 이전의 피에타에서는 큰 키의 예수를 마리아가 안고 있는 모습을 표현한다는 것이 영 어색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어색함, 어쩌면 아들의 주검을 제대로 지탱하지 못하는 난처함 그 자체가 마리아의 슬픔과 곤혹스러움을 드러내는데 효과적인 장치일 수도 있다.

▲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세부, 성 베드로 성당.

반면 바티칸의 피에타에서는 그런 곤혹스러움이 없다. 마치 잠자는 아기를 무릎 위에 편안히 올려놓은 듯하다. 이것은 큰 키의 예수를 안정적으로 받치기 위해 두 발을 벌리고 앉은 마리아의 체구 자체를 더 크고 당당하게 만들었기에 가능했다. 물론 엄마가 아들보다 작아야만 한다는 법은 없지만, 기존의 피에타 도상의 표현과 비교하면 파격이고 왜곡이다. 이것은 여성과 남성의 신체 차이가 아닌, ‘모성’의 존재감을 크기로 표현한 것이리라.

그런 의미에서 피에타는 아기 예수를 마리아가 안고 계시는 ‘성모자상’ 도상과 대칭을 이루고 있다. 예를 들어 라파엘이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성모자와 성 요한’ 속 젊은 마리아의 모습과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속 마리아의 자세가 유사하다. 아기인 예수와 최후의 예수가 동일한 배경으로 묘사된 셈이다.

그래서일까. 르네상스 시대 거장들에 대한 상세한 기록을 담은 조르지오 바자리의 ‘르네상스 미술가 열전’에 보면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속 마리아가 예수보다도 젊어 보인다는 비판이 이미 당시부터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바자리는 ‘성인은 항상 최고의 아름다움으로 묘사되어야 하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그런 비판을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성모자 도상 속의 마리아를 그대로 유지함으로써 그 시작과 끝을 하나로 연결시키는, 그리고 이를 통해 예수의 죽음이 실은 또 다른 시작임을 암시하려는 그의 의도가 아니었을까?

실제로 그의 피에타 속 마리아는 마치 자고 있는 아이를 깨우려는 듯이 보인다. 소리는 조각에 표현될 수 없는 것이지만, 마리아의 왼손을 보자. 어떤 피에타는 이 손으로 예수의 손을 잡거나, 혹은 예수의 다리를 받치거나 혹은 몸을 쓰다듬고 있다. 그러나 바티칸의 피에타는 손을 들어 마치 죽은 예수에게 손짓으로 “이제 일어나야지”하고 권유하는 듯하다. 한편으로는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어머니의 마지막 외침일 수도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다른 사람들 모두 예수가 죽은 것으로 생각하지만 어머니 마리아만큼은 누구보다도 그가 부활할 것임을 강하게 믿었음을 보여주는 것 같다.

▲ 경북 군위 삼존석굴 아미타 삼존불, 7세기 중후반.

그래서 이 피에타 속 예수는 죽지 않았다. 예수의 두 다리를 보면 결코 힘없이 쳐져있지 않다. 마치 꼬고 있던 다리를 지금 푸는 것처럼 왼발이 떠있다. 물론 실제로는 그 아래에 나무둥치가 있어서 떠있는 것처럼 보일 뿐이라는 점을 애써 강조하고 있지만, 다른 피에타에서 두 다리가 힘없이 늘어져 있는 것에 비하면 이는 전혀 다른 인상을 준다. 원죄를 지닌 인간을 대신해 고통스럽게 희생되어야 했던 예정된 일을 마친 예수는 마치 힘들게 준비했던 학예회 연주를 마치고 비로소 어머니 품에서 잠이 들어 뒤척이는 아이마냥 안겨있다. 다른 사람은 죽음을 이야기할 때 미켈란젤로는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보통 드라마틱한 감정 묘사는 금방 눈과 마음에 와 닿는다. 그러나 이처럼 ‘공’을 담아낸 작품은 읽히기 어렵다. 그 유명한 ‘모나리자’도 막상 보고나서는 “저게 왜 유명하지?”라고 비로소 반문하게 된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는 보는 즉시 인간의 몸이 지니는 아름다움과 사실성에 감탄하게 되지만, 그것은 ‘공’을 표현하기 위한 ‘색’이라고 할까, 그래서 부차적인 것이다. 불교미술과 미켈란젤로의 표현에서 차이점이 있다면 사실성에 기반 한 ‘공’인가 사실성이 배제된 ‘공’인가일 뿐, 모두 궁극적으로는 ‘공’을 지향하고 있다.

이쯤에서 시선을 돌려 경북 군위의 삼존석굴을 들여다보자. 아미타불과 관음, 세지보살을 표현한 작품이다. 이 분들은 극락세계를 관장하는 성인들이다. 극락, 즉 ‘지극한 즐거움’을 말하지만 실상 죽어야 가는 곳이다. 즐거움과 죽음이 맞닿아 있다. 죽음 앞에 엄숙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극락왕생 앞에 축하의 뜻을 드러내는 것이 아미타삼존불의 이중성이다. 그러나 유독 이 단단한 화강암에 새겨진 부처님과 보살은 말도 표정도 전혀 없이 굳어 있다. 그런데 본존 아미타불의 자세를 보면 마치 피에타의 성모 마리아를 닮았다. 다만 무릎 위에 예수가 없다. 대신 아미타불은 이제 모든 죽은 이의 어머니가 되어 그들의 영혼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그의 해탈을 염원할 준비가 되었다. 우리 모두의 마리아이시다. 어쩌면 그 위에 누워있던 예수를 그 옆으로 자리를 옮긴 관음과 세지보살로서 대신한 것인지도 모른다. 미켈란젤로는 잠이 든 예수를 묘사함으로써 부활을 암시했다면, 군위 삼존석굴의 관음과 세지보살은 이미 부활하여 어머니 옆에 선, 그래서 ‘성모자와 세례자 요한’에 등장하는 아기 예수와 아기 요한처럼 양 옆에 섰으니 마치 천국에 앞서가서 우리를 초정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작품을 향해 굳이 “왜 부처님 가슴을 조금 더 풍만하게 표현하지 않았나” “왜 부처님 머리가 저렇게 큰 것인가” 물어야할까? 미켈란젤로는 성모의 크기를 눈에 띠지 않게 예수보다 크게 만들었고, 신라의 석공은 대놓고 아미타불의 머리를 크게 만들었다는 차이는 있지만, 변형은 어디에나 있다. 우리는 그저 그 안에서 수동적 죽음이 아닌 ‘열렬하게 없음’을 택했던 성인들의 가르침을 통해 ‘공’이 결코 ‘없음’이 아니며, ‘죽음’이 결코 ‘끝’이 아님을 읽으면 그만이다.

주수완 문화재전문위원 indijoo@hanmail.net
 


[1424호 / 2018년 1월 1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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