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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유방과 항우의 눈물

승자도 패자도 눈물 흘리니 모두 덧없음 아닌가

▲ 그림=육순호

한고조 유방(劉邦)은 젊었을 때 한량으로 지냈다. 아직 거병하기 전, 유방은 품행이 단정하지 않았고 일하기를 즐기지 않았으며 돌아다니며 놀기만을 좋아할 뿐이었다. 그래서 아버지로부터 쫓겨난 그는 분가한 형에게 얹혀살았다. 그런 형편이면 조신하게 굴었을 법도 하건만 그는 건달 친구들을 형 집으로 불러들여 형수에게 밥을 지어줄 것을 요구했다. 그의 형수가 여러 방편으로 시동생을 구박했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유방은 젊었을 때 한량 생활
성품도 난폭하면서 방약무인
항우는 자애로운 인덕베풀어
병사상처 입으로 빨아주기도

두 사람의 승패 전쟁서 갈려
항우는 좁은 것 보고 있을뿐
크고 넓은 것 전혀 보지못해

유방은 좁은 것에 흠 많지만
넓은 것은 볼 줄 아는 안목

유방은 인정머리 없는 사람이었다. 천하를 놓고 항우(項羽)와 다투던 때 그가 팽성에서 초나라 군대에게 대패한 적이 있다. 부장인 하후영과 함께 다급히 도망치던 그는 도망자 무리에서 아들과 딸을 발견하여 수레에 태웠는데, 초나라 기병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어 거의 사로잡힐 지경이 되자 그는 아들과 딸을 수레에서 밀어 떨어뜨리려고 했다.

하후영이 황급히 아이들을 수레로 끌어올렸지만 유방은 세 번이나 아들과 딸을 수레 밖으로 밀치며 “상황이 위급하다. 아이들까지 태우고 있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라고 말했다. 하후영이 한사코 아이들을 수레 안에 두려하자 유방은 하후영에게 검을 휘둘렀다. 하후영은 아이들을 껴안고 수레에서 내려 도망쳤다.  어느 때 항우가 유방의 부친을 사로잡아 진영 앞에 세운 다음 유방에게 말했다.

“그대가 철군하지 않으면 네 아버지를 삶아 먹겠다.”

유방은 조금도 위축되지 않았다. 그는 웃으며 이렇게 응수했다.

“우리는 과거에서 의형제를 맺은 적이 있다. 그러니 나의 아버지는 곧 너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네가 나의 아버지를 삶아 먹겠다면 나에게도 한 그릇 보내주기 바란다.”

그는 대범한 데가 있었다. 그는 인부 오백 명을 지휘하여 진시황을 위해 일하러 간 일이 있다. 도중에 많은 인부들이 도망을 쳐서 목적지에 이르렀을 때 인부가 한 사람도 남지 않을 지경이었다. 그는 인부들에게 술을 사 먹인 다음 “너희는 도망쳐라. 나도 그렇게 하겠다”라고 말한 다음 그들을 해방시켜 주었다. 그의 대범함은 때로 방약무인함으로 표현되곤 했다. 유생(儒生)들이 자신을 만나러 오면 그는 유생의 갓을 벗겨 갓 속에 오줌을 누기도 하고 대화 도중에 고래고래 욕을 하기도 했다. 그는 주색을 좋아했다. 외상술을 마시고 갚지 않았으며 거짓말도 잘했다.

그의 경쟁자였던 항우의 성격은 그와는 정반대였다. 항우는 주변 사람들에게 자애로운 인덕을 많이 베풀었다. 병사의 몸에 상처가 나면 입으로 빨아준 적도 있었다. 이는 그가 감정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사람이었음을 의미한다. ‘사기’에는 그가 성을 냈다는 기록이 많이 보인다. 그는 사람에게 사랑의 감정과 함께 분노의 감정 또한 자주 보이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에 비해 유방은 감정을 다스릴 줄을 알았다. 그는 사사롭고 작은 범주의 일에서는 막무가내 한량이었고 화도 잘 냈지만 공적이고 큰 범주의 일을 처리할 때는 감정을 제어하며 이성적으로 행동할 줄 알았다. 한양으로 들어가 진시황의 궁궐 내부를 처음 보았을 때 그는 잠시 사치스런 생활을 즐기고 싶어 했다. 하지만 그는 번쾌와 장량의 충고를 받아들여 궁궐에서 나왔다.

그는 유생을 싫어했지만 천하를 통일한 다음에는 유생을 중용했는데, 그것은 그럴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의 휘하 장수인 한신이 전략상의 이유를 들어 자신을 제나라 가왕(假王)으로 봉해 달라는 말을 듣고 대노했다. 하지만 한신을 잘못 다루면 그가 군대를 이끌고 자신과 대적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어찌 가왕으로 충분하겠소? 실제 왕으로 등극함이 마땅하오”라며 그의 청을 바라는 바 이상의 수준에서 들어주었다.

그에 비해 항우는 큰일을 처리함에 있어서 소심했다. 그는 개개 병사들에게는 친절했지만 공로 있는 자에게 상을 주는 데 있어서는 인색했다. 어떤 자를 직위에 임명하고는 관인을 오랫동안 주지 않아 관인이 그의 주머니 안에서 모서리가 닳아버린 일도 있었다.

항우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문제점을 깨닫지 못했다. 그는 자신이 패망한 것이 “하늘이 나를 망친 때문”이며 “때가 이롭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일이 그르쳐진 원인을 자신이 아닌 타물에게로 돌렸던 것이다. 그는 자신의 그 말이 진실임이 자신이 홀몸으로 적진에 들어가 수백 명을 죽인 것으로써 증명되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와 유방 간의 승패는 전투에서가 아니라 전쟁에서 갈렸다. 한 전투에서 수백 명을 죽이고 살리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전체 판도에서 사세가 어느 편으로 기우느냐가 요점인 것이다. 그 점에서 항우는 좁은 것만을 볼 뿐 넓은 것은 보지 못하였고, 유방은 좁은 것에는 많은 흠이 있었지만 넓은 것을 볼 줄 알았다.

‘사기’는 항우가 자신에게 최후의 순간이 다가오자 그의 눈에서 “몇 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泣數行下)”라고 표현한 다음 같은 표현을 유방이 천하를 차지하고 나서 고향에 돌아가 잔치를 베풀며 노래를 부르는 장면에서도 사용하고 있다. 물리적 구성 요소로서는 같은 두 눈물. 그러나 정신적 함의에 있어서는 전혀 다른 두 눈물!

항우의 눈물은 패자의 눈물이었고 유방의 눈물은 승자의 눈물이었다. 항우의 패배는 시야가 좁은 ‘아녀자의 눈물’이었고 유방의 눈물은 시야가 넓은 ‘대장부’의 눈물이었다(남자도 ‘아녀자’일 수 있고 여자도 ‘대장부’일 수 있다). 하지만 두 눈물이 그렇듯 다르기만 했던 것일까. 나는 두 눈물 사이에서 다른 점과 함께 공통점을 본다.

우리는 슬프고 고통스러워서도 울지만 기쁘고 행복해서도 운다. 두 감정이 밤과 낮처럼 다른데  왜 똑같이 눈물을 흘리는 것일까. 가장 아름다운 풍경, 예를 들어 고운 저녁놀을 볼 때 왜 우리의 마음은 기쁘지 않고 도리어 슬퍼지는 것일까.

덧없음(무상)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모든 것은 흘러간다는 것, 그 흘러감과 변화가 마침내 내 삶을 덮치게 된다는 것, 그때 나는 한 줌 재로 돌아가게 되고, 그리하여 내가 지금껏 미워하고 고통스러웠던 것은 물론 사랑하며 기뻐했던 모든 것들까지도 무의미해진다는 것! 감정이 지극해졌을 때 우리는 그것을 직감(직관)으로 느끼고 알며, 그리하여 마음에 감동, 또는 슬픔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때로 그 슬픔에 잠겨보자. 좁은 시야에서 미워하며 다투던 마음을 그 슬픔의 강물에 적셔보자. 그리고 잠시 후에 조용히 일어서자. 일어서서 개운한 마음으로 지금 내 앞에 닥쳐 있는 문제를 보다 넓은 시야로 다루어보자.

김정빈 소설가·목포과학대교수 jeongbin22@hanmail.net
 


[1424호 / 2018년 1월 1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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