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setNet1_2

25. 권영상의 밥풀

기사승인 2018.01.16  12:58:55

공유
default_news_ad1

- 함께 덮은 담요 한 장서 느끼는
아버지와 아들의 살뜰한 사랑

알려진 사실 그대로 우리나라 현대시는 ‘해(海)에게서 소년에게’라는 최남선 작, 동시로 시작되었다.

한국의 동시는 세계 1등
서양은 동시 중요성 간과
가족 간 사랑의 시 중에서
이 시 넘는 시 찾기 힘들 것


인격화된 바다가 소년에게 주는 대화법 구성의 장시(長詩)다. 이 시가 소년에게 주는 동시라는 것은 제목에서부터 인정이 된다. 주제가 모인 결구(結句)에 ‘오너라 소년배 입맞춰주마···’의 구절이 이를 증명한다. 요즘 말로 옮기면 “꼬마들아, 이리 오렴. 뽀뽀해줄께”이다.

이렇게 재미나는 말로 시작된 우리나라 동시는 훌륭한 시인들이 그 뒤를 이어 왔다. 그래, 세계에서 동시가 제일 앞선 나라라는 평을 받는다.

서양을 비롯한 많은 나라들은 동시가 시 중의 시라는 걸 모르고, 시덥잖게 여기면서 일반 시인들이 여기(餘技)로 창작하기 때문에 우리의 동시문학을 따라 올 수가 없는 것이다.

팔팔년(1988 서울올림픽)에, 쬐그맣고, 반동강이 난 우리나라가 올림픽 세계 3등이라며 박수 소리로 떠든 일이 있었다. 이때에 세계의 동시사(童詩史)를 아는 동시 시인들은, “쬐그맣고, 반동강이 우리나라에서 동시가 세계에 1등인 건 왜 덮어 두지?” 했다. 그러나 그 말을 알아듣는 사람이 적었다.  

새해부터는 이렇게 앞서가는 한국의 동시 시단에서 빛을 보이는 시인과 시작품을 소개하기로 한다.

담요 한 장 속에

담요 한 장 속에
아버지와 함께 나란히 누웠다.
한참 만에 아버지가
꿈쩍하며 뒤척이신다.
혼자 잠드는 게 미안해
나도 꼼지락 돌아눕는다.
밤이 깊어 가는데
아버지는 가만히 일어나
내 발을 덮어주시고
다시 조용히 누우신다.
그냥 누워 있는 게 뭣해
나는 다리를 오므렸다.
아버지- 하고 부르고 싶었다.
그 순간
자냐? 하는 아버지의 쉰 듯한 목소리.
- 네.
나는 속으로만 대답했다.
권영상 동시집 ‘밥풀’ 1991

이 시는, 사랑의 시다. 아들 사랑, 아버지 사랑의 시다. 가족간의 사랑의 시다. 어느 해석이나 맞다. 사랑을 노래한 시를 통틀어 이 이상의 시가 있을 것 같지 않다.

아버지, 아들이 하나의 담요를 덮었다. 아버지가 꿈쩍, 뒤척인다. “꼬마야, 아빠 아직 안 잔대이”의 뜻이다. 시의 캐릭터(주인공)인 꼬마가 꼼지락, 돌아눕는다. “아버지, 나도 안자고 있어요”의 뜻이다. 혼자 먼저 잠든다면 아버지께 미안하다는 생각에서 보낸 신호이다.

그러면서 밤이 깊었다. 아버지는 일어나서 담요 밖으로 나간 꼬마의 발을 덮어주고 다시 눕는다. 꼬마는 그냥 누워 있는 게 무엇해서 밖으로 나갔던 발을 꼼지락하고, 오므리면서 “이놈 발아, 왜 담요 밖으로 나갔니?” 한다.

참으로 고맙고도 감사한 아버지요, 은혜를 지닌 아버지다. 그래서 “아버지!” 하고 마구 마구 부르고 싶은 감정이다. “자냐?” 하며 묻는 쉰 듯한 아버지 목소리가  한 번 더 아버지 사랑을 진하게 느끼게 한다. 아버지와 아들은 아직도 잠든 것이 아니다 서로를 염려해서이다.

시의 작자, 권영상(1953~ )은 강릉 출신으로, 좋은 시와 많은 시집으로 앞서 달리는 동시 시인이다. 최근 그의 시가 중국으로 수출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기도 한다.

신현득 아동문학가·시인 shinhd7028@hanmail.net


[1424호 / 2018년 1월 1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신현득 shinhd7028@hanmail.net

<저작권자 ©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4
default_side_ad1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set_new_S1N12
set_hot_S1N12
default_setNet2
default_bottom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