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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절의 ‘반야’ ‘바라’ ‘밀다’

기자명 일선 스님
  • 세심청심
  • 입력 2018.01.16 13:06
  • 수정 2018.01.16 13:07
  • 댓글 0

새해 들어 연일 계속되는 강추위에 처마 끝 풍경이 떠는 소리가 더욱 요란합니다. 무술년 새해는 황금 개띠해라고 하여 국운이 모여 상승하는 좋은 해라고 합니다. 개는 먼 옛날부터 사람과 동고동락하였고, 요즈음은 견공이 죽으면 49재까지 모셔주는 반려견 천만의 시대입니다. 이제 모든 생명의 무게는 본래 평등하다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무술년 새해에는 더욱 확산되기를 기원해 봅니다.

절 찾아온 유기견에는 ‘반야’
동네 할머니 맡긴 개들에게는
‘바라’와 ‘밀다’ 이름 지어줘
반야바라밀다로 절은 웃음꽃

보림사에는 2년 전 어느 늦은 봄날에 털이 빠지고 형색이 남루한 유기견이 찾아왔습니다. 마침 적적하고 문화재가 많아서 걱정이 되던 차에 인연이지 싶어서 거두어 키웠습니다. 견공이 불안과 공포에서 벗어나도록 된장국에 밥을 말아주고 축생의 어리석음에서 벗어나라고 반야라 불명을 지어 주었습니다. 정성껏 돌보았더니 반야는 병으로 인하여 빠진 털이 점점 자라고 복스러운 모습으로 변해서 신도들의 귀염둥이가 되었습니다. 이제 반야는 더 이상 병들고 굶주린 외로운 나그네가 아니라 당당하게 불성을 회복하여 도량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반야의 집 앞에는 요즈음 추위 속에 아찔하게 매달린 홍시가 농익어서 달콤하기 그지없습니다. 감을 나눠주면 반야는 좋아서 이리 뛰고 저리 달리며 자유자재로 반야를 연출해내고 있습니다.

반야는 인도말이고 우리말로는 지혜이며 아는 성질입니다. 어느덧 제방에서는 화두삼매가 점점 깊어가고 마을에는 김장김치가 익어갑니다. 그런데 뒷마을에 혼자 사는 노보살님이 지병으로 입원하여 시내 자식 집에서 치료받는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그러면서 키우던 어미 개와 새끼를 함께 맡아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그래서 새끼는 바라라는 불명을 지어주고 어미 개는 이상하게 마을에 살면서도 여태껏 짖지를 않는다고 하여 꿀 먹은 벙어리처럼 묵묵히 수행하라고 밀다라는 불명을 지어주었습니다. 그리고 박물관 옆에서 키우기로 하고 견공들의 불명을 모두 합치니까 반야바라밀다가 되었습니다. 대중들은 반야바라밀다라고 함께 합창하면서 도량에는 한바탕 웃음으로 가득합니다.

그런데 속으로는 키울 걱정이 앞서고 한꺼번에 개 짖는 소리가 요란하니 조용한 천년고찰이 시끄럽습니다. 남전보원선사의 제자 자호선사는 사나운 개를 키우면서 ‘개 조심’이라고 써 붙이고 수행자들을 경책하였습니다. 자호의 개는 위로는 머리통을 물어 깨버리고 중간으로는 심장을 꺼내 먹어버리고 아래로는 발목을 물어 거래를 끊어버린다고 했습니다. 수행자들의 사량분별과 애증과 간탄심과 양변의 거래를 끊어버리고 비로소 참 성품을 깨달아 대자유를 누리라는 가르침이었습니다.

▲ 일선 스님

 

일체 중생이 본래 부처라는 반야지혜를 깊이 믿으면 온 우주와 생명들이 하나의 그물망처럼 연결되어있음을 자각하게 되고 각기 망마다 구슬이 빛나는 것을 보게 되는데 이것이 바라입니다. 밀다는 반야에서 일어나는 일체 번뇌와 대상을 바로 알아차리면 용광로에 떨어지는 한 송이 눈처럼 반야로 화합하게 되는데 마치 벌이 일체 꽃에서 꿀을 따지만 꽃을 다치지 않고 한맛의 단맛을 이루는 것과 같습니다.

도량에는 관광객들이 연휴를 맞이하여 모처럼 가득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마을에서 짖지 않았다는 밀다의 입이 터져서 우렁우렁합니다. 자호선사의 개가 다시 와서 일체 사량분별과 간탐과 애증, 유무양변의 거래를 끊어버리려는 듯 사납게 짖고 있습니다. 일주문에 개 조심하라는 경문을 써 붙여야겠습니다.

일선 스님 장흥 보림사 주지 sunmongdoll@naver.com


[1424호 / 2018년 1월 1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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