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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여는 단서

기사승인 2018.01.23  11: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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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올림픽의 창시자 쿠베르탱은 스포츠를 통해 세계평화를 이룰 수 있다고 믿었다고 한다. 그래서 ‘올림픽 정신(Olympism)’이라는 것이 나왔다. 승리를 향해 무작정 내달리는 것이 아니라 상호 협력과 이해를 바탕으로 연대하는 데 올림픽의 의의를 두자는 것이다. 현존하는 지상 최대의 스포츠 축제를 창안한 조직가이니 현실 감각도 뛰어난 사람이었겠지만, 쿠베르탱은 다른 한편 세계평화를 꿈꾼 이상주의자였던 모양이다. 반면 지난해 6월 무주에서 열린 세계태권도대회 참석차 한국을 찾은 북한 IOC 장웅 위원은 사뭇 냉엄한 현실 인식을 내비친 적 있다. 평창 올림픽에 남북 단일팀 참가 전망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부정적인 전망을 내놓으며 그는 “스포츠 위에 정치가 있다”고 했다. 스포츠가 남북관계 발전의 촉매는 될 수 있어도 기초나 저변은 되지 못하며, 정치가 다른 여지없이 대치하는 국면에서는 스포츠만으로 대세를 바꾸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새해 첫날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평창 올림픽이 성공적으로 개최되기를 바란다는 덕담을 내놓으며 “대표단 파견을 포함하여 필요한 조치를 취할 용의가 있으며 이를 위해 북남당국이 시급히 만날 수도 있다”고 밝힌 이래 하루가 다르게 진전되는 남북 대화 국면에서 돌아보니, 스포츠와 정치에 관한 견해는 매우 달라 보였지만 쿠베르탱이나 장웅은 어쩌면 비슷한 얘기를 했던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평화를 바라는 의지가 결집될 때, 스포츠는 평화를 여는 단서가 될 수 있다.

이 회담을 계기로 우리 정부는 여태까지 줄곧 외쳐온 ‘한반도 운전자론’을 시험해 볼 기회를 비로소 얻게 되었다. 남북이 앞 좌석에 앉은 현재의 국면에 대해 주변 4대 강국은 일단 입을 모아 환영의 뜻을 표했다. 조계종 종정스님도 신년 하례식에서 남북통일을 기원했고, 멀리 가톨릭 교황도 전세계가 남북대화를 위해 노력해 줄 것을 당부했다고 하니, 한반도 위기의 평화적인 해결이라는 대원칙은 국제사회에서 토를 달 수 없는 확고한 정치적·도덕적 지지를 업고 있는 형국이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난 수사(修辭)만 본다면 대화에 임하는 남북의 입장은 동상이몽이다. 북한은 핵과 미사일은 미국을 겨냥한 것으로 이제 대량생산을 통해 실전 배치하는 일만 남았다고 하고, 남북 관계는 그것과 분리해 오로지 ‘우리 민족끼리’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려 한다. 반면에 우리는 이번 대화 자체가 튼튼한 한미동맹의 성과이며, 궁극적으로 핵과 미사일 문제를 둘러싼 북미 합의와 한반도 평화정착의 계기로 살려간다는 입장이다.

남북이 이렇듯 딴 생각을 하며 만났으니 별 성과를 내기는 어려우리라는 비관론도 있다. 어차피 북한이 어렵게 얻은 핵을 포기할 리는 없고, 올림픽이 끝난 뒤 한미 연합 군사훈련이 재개되면 상황은 기다렸다는 듯 원점으로 돌아가리라는 것이다. 하지만 남북 관계처럼 ‘수 싸움’이 복잡한 사안일수록 겉으로 말해진 것이 전부가 아니며, 협상에 임하는 양 당사자의 진정성 여하에 따라 상상을 뛰어넘는 진전을 이루는 것도 가능하다는 것을 역사적 경험은 말해 준다. 불과 두 달 전 상황은 어떠했는가. 북한에 대해 영향력이 가장 크다는 중국조차 제19차 전국인민대표대회 결과를 설명하기 위해 파견한 특사가 김정은을 만나보지도 못한 채 귀국하는 수모를 겪었으며, 대화를 열어볼 실마리라고는 눈 씻고 둘러보아도 찾기 어려웠다. 그런데 지금은 북한에서 수백 명에 달하는 응원단, 참관단 등이 친선을 위해 방남(訪南)을 준비하고 있고, 미국에서는 펜스 부통령이 직접 대표단을 이끌고 온다고 한다.

실로 오랜만의 대화 국면이다. 그것도 남북이 주도하는 국면이다. 평화를 바라는 겨레의 속내야 이신전심일 테니, 대화가 대화로 이어져 마침내 한반도 평화 정착으로 나아가는 첫걸음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이중남 마하이주민지원단체협의회 운영위원 dogak@daum.net


[1425호 / 2018년 1월 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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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남 dogak@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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