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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만에 다시 보는 송광사 16국사 진영

기사승인 2018.02.09  12: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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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9일까지 성보박물관서
1969년 촬영한 사진 기반
도난당한 13점 포함 모사
되찾은 묵암 스님 진영도

   
▲ 1969년 촬영한 사진을 기반으로 모사해 조성한 송광사 16국사 진영.
송광사성보박물관(관장 고경 스님)이 송광사 국사전 16국사 진영 모사불사 회향을 기념해 특별전을 갖는다. 특히 이번 전시에는 최근 일본에서 환수한 묵암최눌 스님 진영과 관련 유물을 함께 공개한다.

송광사성보박물관은 2월10일부터 5월9일까지 관내 전시실에서 ‘16국사 진영 모사불사 회향 및 묵암당 진영 환수 기념특별전’을 갖는다. 보물 제1043호 송광사 국사전에는 보조국사 지눌 스님을 비롯해 2세 진각, 3세 청진, 4세 진명, 5세 자진, 6세 자정, 7세 원감, 8세 자각, 9세 담당, 10세 혜감, 11세 자원, 12세 혜각, 13세 각암, 14세 정혜, 15세 홍진, 16세 고봉 스님 등 고려시대 송광사를 중심으로 활약했던 16분의 고승진영이 모셔져 있었다.

송광사 국사전에 16국사 진영이 처음 모셔진 것은 14세기 후반으로 추정된다. 이후 조선시대에 들어서 임진왜란을 비롯해 전란을 겪으며 소실되는 등의 수난을 겪다가 1780년 왕실의 지원으로 다시 조성됐다. 그러나 1995년 1월 전체 16점 가운데 1세 보조, 2세 진각, 14세 정혜국사의 진영을 제외한 13점이 도난당했다. 송광사는 도난당한 진본 진영의 회수를 염원했지만 10여년이 넘도록 그 행방을 알 수 없자, 1969년 촬영한 사진을 기반으로 보존처리 및 모사를 진행해 2017년 12월 불사를 회향했다.

16국사 진영은 모두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이다. 3세 청진, 4세 진명, 8세 자각, 9세 담당, 10세 혜감, 12세 혜각, 13세 각암, 14세 정혜, 15세 홍진 스님 진영은 의자 위에 가부좌를 한 것이 특징이다. 지물로 불자(拂子)나 주장자(柱杖子)를 들고 있거나 지물이 없는 경우는 선정인(禪定印) 또는 설법하는 모습을 취하고 있다.

   
▲ 이번 전시회에 함께 공개되는 묵암최눌 스님 진영.
이번 전시회에 함께 공개되는 묵암최눌(1717∼1790년) 스님의 진영은 2017년 동국대박물관이 개최한 ‘나한(羅漢)’ 특별전에 출품된 유물이다. 일본인 개인이 소장했던 것을 협의를 거쳐 100여년 만에 본래 봉안처인 송광사에 다시 모시게 됐다. 묵암 스님 진영은 1906년 일제가 송광사 일원에서 일어난 의병활동을 탄압하던 과정에서 유실된 것으로 전해지며. 1920년 일본 교토박물관 한 전시회에서 ‘조선 승려의 초상화’라는 이름으로 출품되기도 했다.

묵암최눌 스님은 14세 되던 1725년 징광사 득휘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풍암 스님 등에게 경전을 배웠고 호암, 회암, 용담, 명진, 상월 스님 등 제방선지식들을 참방했다. 1790년 4월 송광사 보조암 백련실에서 법랍 54세, 세수 73세로 입적했으며, 현재 스님의 비와 부도가 송광사에 전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는 묵암 스님의 진영 외에 스님의 저술인 ‘화엄과도(華嚴科圖)’ ‘제경회요(諸經會要)’ ‘반착회요(盤錯會要)’를 비롯해 최근 부도전 보수불사 중 출토된 ‘묵암당 백자 사리호’도 함께 공개된다.

김현태 기자 meopit@beopbo.com

[1428호 / 2018년 2월 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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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태 기자 meopit@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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