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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비트코인과 욕망

기자명 최원형

버찌씨를 사탕으로 바꿔 준 위그돈씨의 아량

우리 사는 세상은 참으로 변화무쌍하다. 찰나조차 변하지 않는 순간이란 없다. 얼마 전 벌어졌던 가상화폐 광풍 또한 그 변화무쌍 가운데 하나였다. 가상현실, 가상공간처럼 발 딛고 사는 현실에 깊숙이 들어온 이 가상의 세계에 화폐가 하나 더 추가된 셈이다. 삶은 한낱 꿈일 뿐이라는 비유가 결코 비유가 아니라는 걸 요즘 가깝게 다가온 이 가상이라는 낱말에서 더욱 실감하게 된다. 투자, 투기, 거품 등 다양한 수식어가 따라붙는 비트코인의 등장은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투자회사인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하면서 시작된 2008년 금융위기로 전 세계 경제가 휘청거렸다. 충격의 크고 작음은 있었겠으나 어느 나라도 그 파장에서 비껴가지 못했던 위기였다. 바로 그 무렵, 기존 금융체계에 대한 불신이 깊다고 판단한 어떤 이는 머릿속에 아주 새로운 방식의 화폐 시스템을 구상했다. 개인 정보를 요구하지 않지만 거래의 투명성은 완벽하게 보장되는 데다 검은손의 조작이 불가한 대단히 획기적인 금융시스템과 이를 구현해줄 기술이었다. 사토시 나카모토가 제안했던 이 시스템이 바로 비트코인이다. 비트코인이란 단어는 정보 저장 단위인 비트와 동전(코인)을 합친 명명이다. 소수 독점의 금융 지배로부터 벗어나 개인들의 네트워크에 기반을 둔 대단히 새로운 화폐시스템을 구축하자는 취지는 참신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고려 대상에서 빠진 게 있었다. 바로 욕망이었다. 현재 비트코인은 바로 그 욕망에 붙들린 채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한낱 거품으로 사라질 것인지 미래 화폐로 자리매김할 것인지 갈림길에 서 있기 때문이다.

가상현실 접하며 ‘삶은 꿈’ 실감
리만 브라더스 파산 후 경제 휘청
개인네트워크 기반한 화폐 등장
욕망으로 미래 예측 못하게 돼

비트코인이란 낱말을 내가 처음 인지했을 때가 언제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신조어의 하나쯤으로 흘려들었을 게다. 그러니 내 마음에 어떤 파장도 만들지 못했다. 그런데 최근 비트코인 광풍이 연일 뉴스에 오르내리고 벼락부자가 됐다는 사람들 얘기가 심심찮게 전해지면서 갑자기 내 마음이 요동을 쳤다. 벼락부자 대열에 합류하지 못한 애통함이었을까? 대체 나랑 아무 상관도 없는 그것으로 인해 왜 마음은 이토록 불안정할까 들여다 보았다. 비트코인으로 떼돈을 번 사람들이 부러웠다. 이미 거품을 말하는 시점에서 비트코인을 살 수도 없는 신세가 한탄스럽기까지 했다. 왜 진작 실속을 못 챙겼을까 하는 생각도 일었다. 뭔가 뒤처지는 것 같고, 억울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다 문득 왜 괴로워야 하는지를 내게 되물었다. 괴로움의 진원지는 욕망이었다.

폴 발라드가 쓴 ‘이해의 선물’에는 버찌씨 돈이 등장한다. 네 살짜리 주인공은 위그돈씨 가게에서 파는 사탕이 먹고 싶어 자신의 소중한 버찌씨를 달콤한 사탕과 맞바꾼다. 이 거래가 가능했던 것은 위그돈씨의 아량 덕분이었다. 돈이란 타인들과 약속된 추상물을 통해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는 ‘어른의 세계'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네 살배기 아이에게 어른의 세계는 짐작조차 불가했겠지만 어른 세계에 깊숙이 속해있던 바로 그 어른 위그돈씨의 배려로 그들의 거래는 아름답게 이루어졌다. 비트코인으로 돈의 속성을 생각하다 어느덧 내 생각은 버찌씨에 다다르고야 말았다. 곁가지를 뻗다보니 아주 엉뚱한 생각을 또 하게 됐다. 버찌씨는 싹을 틔우고 나무로 자라 숲을 이룰 수도 있지만 돈은 무엇을 이룰 수 있을까? 숫자로 욕망의 숲을 이룰 순 있겠지만 그래서 버찌씨가 이룬 숲을 한순간에 없애버릴 수도 있겠지만 그래서 결국 무엇이 남을까? 여기까지 생각이 이르고 보니 어쩌면 위그돈씨의 아량은 오히려 큰 거래를 이끌어냈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리고 그런 거래가 가능했던 것은 욕망을 제압하는 아량이 있어서 가능했던 게 아니었을까 싶기도 했다.

비트코인으로 인해 아무렇지도 않던 내 마음이 순간 괴로움으로 번질 수 있었던 근간에는 단단하게 똬리를 튼 욕망이 있었다. 욕망을 들여다보다 그 끝자락에서 또한 발견을 했다. 마음이란 가상공간에서 열심히 욕망의 탑을 쌓으며 괴로워하고 있는 나를. 나를 흔드는 것이 부질없는 욕망이라는 걸 알아채는 순간 괴로움이 ‘툭’하고 떨어져나갔다. 웃음이 났다.

쉼 없이 일렁이는 바다에서 내 마음의 흔들림을 알아차리기만 해도 곧장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외부에 존재하거나 벌어지는 무수한 것들과 나의 관계가 매 순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상황에서 끊임없이 발생하는 괴로움을 겪지 않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새롭게 깨닫는다. 비트코인의 광풍 속에서 내 안에 자리한 욕망을 엿보았으니 이만하면 나도 큰 이득을 챙긴 건 아닐지.

최원형 불교생태콘텐츠연구소장 eaglet777@naver.com
 

[1428호 / 2018년 2월 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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