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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산사 비구니 초청 대법회 의미 깊다

기자명 법보신문
  • 사설
  • 입력 2018.03.12 13:56
  • 댓글 1

무주 향산사가 창건 100주년을 맞아 일곱 비구니스님을 초청한 ‘큰스님 설법 대법회’를 봉행한다. 매우 의미 깊은 법회다. 향산사 주지스님의 결단과 대중의 동의가 있어야 가능한 법회이기 때문이다.

조계종 소속 유수 사찰이라 평가된 산사라 하면 ‘큰스님 초청 법회’ 를 한 번쯤은 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향산사 법회에 이목이 끌리는 것은 ‘비구니스님 초청 법회’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일곱 비구니스님이 연이어 법석에 오르는 법회다. 현 한국불교의 풍토에 비춰볼 때 창건 100주년을 기념하는 법회라면 그 어느 사찰이라도 단연 비구 스님을 필두로 한 고승으로 법석 프로그램을 구성했을 것이다. ‘그래야만 한다’는 법은 없지만 ‘그래야 한다’는 인식이 교계 저변에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사실, 비구니스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그에 따라 비구니스님이 대중법석에 본격적으로 오르기 시작한 건 1990년대 들어서다. 그만한 이유는 있다.

남녀차별의 풍토에서 법랍 높은 비구니스님도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금의 상황은 다르다. 일례로 1969년 결제에 들어간 비구니스님은 600여명이었으며 1980년대 방함록에 오른 비구니스님은 평균 700여명이었다. 그 스님들의 법랍만 해도 40년에서 50년에 이른다. 동학사, 운문사, 청암사를 중심으로 한 비구니 강원 또한 여전히 활기차게 운용되고 있다.

폐허가 된 내원사, 대원사, 석남사 등을 비구니 대표 선원으로 복원시킨 장본인이 비구니스님이다. 정화불사와 종단개혁에도 비구니스님들은 위법망구 정신으로 헌신했다. 정화불사 하면 ‘5 비구’를 떠올리지만 ‘5 비구니’도 있었다. 언 땅에 엎드려 있다가 폐렴으로 입적한 월혜, 뇌출혈을 일으켰던 서운, 단식기도 중 쓰러졌음에도 병원행을 극구 거부했던 정행, 본현, 묘명 스님이 있었음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비구니스님들이 이룩한 업적이나 내공을 비구니란 이유만으로 평가절하해서는 안 된다.

비구니스님을 중심으로 한 법석을 자주 마주할 수 없는 건 아직도 비구니스님이 법석에 오르는 것을 암묵적으로 불허하거나 부담스러워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 이상 풍토나 관습이라는 허명으로 현 상황을 고착시킬 이유는 없으며, 이 고정관념을 깨고 나서야 할 당사자는 비구니스님이다. 향산사 법회가 의미 있는 이유다.


[1431호 / 2018년 3월 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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