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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우선원장 인경 스님

기사승인 2018.03.19  15:0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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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본성 절실히 의심·참구하는 실존 문제가 ‘화두’

   
▲ 목우선원장 인경 스님은 “전승되어 온 선문답(공안)이 그대로 화두가 되는 것은 아니다. 화두는 자기에게 절박한 문제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승되어 온 선문답(公案·공안)이 그대로 화두가 되는 것은 아니다. 화두는 자기에게 절박한 문제여야 한다. 수행자가 지금, 여기, 현재에서 인간의 본성에 관해 절실하게 의심하고 참구하는 실존적 자기 문제가 바로 화두다.”

88년 현호 스님 은사로 출가
‘몽산 덕이’연구로 박사 학위

간화선·위빠사나·명상 연구
학술 논문만도 50편 넘어

‘부처란 무엇인가?’ 물음
선·교 관통하는 키워드

특정한 조건에서 발생하는
연기결과 한 흐름이 ‘마음’

간화·위빠사나 수행 핵심
조화시킨 ‘인경명상법’ 탁월


인경 스님이 2009년 보조사상연구원 학술회의장에서 말 속에 뼈를 담아 한국 선가를 향해 던진 한 마디다. 화두가 무엇이고, 왜 들어야 하는지부터 올곧이 인식하고 수행에 접근하라는 뜻이다. 남방불교의 수행법인 위빠사나를 1990년대 초 한국 땅에 전파한 장본인, 2000년대 초 서양을 중심으로 일어난 명상을 한국불교에 접목한 주인공도 인경 스님이다.

선을 주축으로 한 교학적 기둥은 이미 굳건히 서 있었다. 1999년 동국대 철학박사 학위 논문 ‘몽산덕이(夢山德異)와 고려후기 선사상 연구’를 통해서 간화선이 어떻게 국내에 유입되고 전개되었는지를 살펴보고, ‘화엄교학과 간화선의 만남’(2006)을 통해서는 간화선과 화엄교학의 소통과 갈등을 해명했으며, ‘쟁점으로 살펴보는 간화선’(2011) 저술을 통해 간화선과 관련된 쟁점들을 정리했다. 간화선과 관련된 석·박사를 거쳐 목우선원을 연 오늘에 이르기까지 위빠사나, 명상, 그리고 심리상담과 관련된 논문만도 50편이 훌쩍 넘었다. 하여,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좀 더 새겨보고자 목우(牧牛) 선원장 인경 스님을 만났다.

‘선문답’ 자체로는 화두가 될 수 없다면, 어떻게 들어야 하는 것일까? 그러자 인경 스님은 ‘이뭣고’ 들기 전에 물으라 한다. ‘부처란 무엇인가?’
“부처님 재세 시에는 이 질문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 현존을 직접 경험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 입멸 후 그 질문이 시작됩니다. 거룩한 말씀을 결집·편찬하고, 마지막 남기신 흔적을 안치한 사리탑을 세우고, 80여년의 여정을 돌에 새기고 흙으로 빚은 건 부처님에 대한 그리움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 시대 불자들이 물었던 ‘부처란 무엇인가?’, 그 시대 불자들이 말하고 싶었던 ‘부처란 이것이다’라는 문답이기도 합니다. 불성에 대한, 현 시점에서 부처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여는 이 질문은 2500년의 시공을 넘어선 지금도 지속되고 있으며 법등이 세상을 비추는 한 끊임없이 이어질 것입니다.”

그렇다. 중국에서도 이 물음이 있어 ‘선의 황금시대’를 열 수 있었다. 그러니 지금도 자문할 건 ‘마른 똥 막대기라는 말이 왜 나왔을까?’가 아니라 여하시불(如何是佛·무엇을 부처라 해야 하는가?)이다. 전자에 매이면 구두선일 것이고, 후자를 인식이라도 하면 나름 화두 챙기는 것에 가깝다.

“달마를 필두로 한 역대 조사들이 내놓은 답은 ‘마음이 부처다’입니다. 부처님 마음에서 말씀이 나왔으니, 그 마음만 깨달으면 우리도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부처는 우리 각자의 마음에 존재한다고까지 했으니 희망적입니다.”

파도 하나 넘으니 더 큰 파도가 밀려온다. ‘어떤 마음이 부처인가?’ 아니, 그보다 형상도, 냄새도, 색깔도 없는 그 마음이란 무엇일까?

“‘관심론(觀心論)’에서도 ‘마음이여 알기 어렵다. 옹졸하면 바늘구멍조차 들어가지 않고, 너그러우면 우주를 감싸고도 남는다. 참으로 오묘하다’고 했습니다. 초기불교에서는 마음을 고정된 그 무엇이 아니라 의식이 대상에 접촉하면서 발생하는 흐름의 일부라고 봅니다. 다시 말해 특정한 조건에서 발생하는 연기 결과로써의 한 흐름을 마음이라 합니다.”

이제, 눈앞에 서 있는 세 번째 파도를 넘어야 한다. 마음과 불성(佛性)은 어떤 관계일까?

“보조지눌 스님께서 ‘수심결(修心訣)’을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몸은 지수화풍으로 구성되어 있고 성질이 완고하여 알아차림과 의지가 없다. 어찌 (대상에 대해서)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것이 있겠는가? 능히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것은 필히 너의 불성이다.’ 여기에 그 해답이 있습니다.”

인경 스님은 마조(馬祖)스님과 무업(無業) 스님의 선문답을 들어 보였다.

마조 스님이 이른다.

“몸은 우람한 법당인데 그곳에 부처가 없구나.”
“교학은 했으나 선문(禪門)에서 말하는 ‘마음이 부처’라는 말은 모르겠습니다.”
“알지 못하는 그 마음이 바로 그것이지, 다른 것은 없다.”
“달마가 서쪽에서 와 전한 심인은 무엇입니까?”
“정말 소란스럽구나. 갔다가 다시 오라!”

무업 스님이 일어나 나가자 마조가 부른다.

“이보게!”

무업 스님이 고개를 돌리자 마조 스님이 이른다.

“이게 무엇인가?”

이에 무업 스님은 마조 스님에게 큰 절을 올렸다.

   
▲ 인경 스님이 선보인 역·저서만도 10여권에 이른다.

한국 선가에서 가장 많이 들고 있다는 ‘이뭣고’ 화두의 원류다. 인경 스님은 우선 마조 스님이 ‘(이보게) 소리를 듣는 이것은 무엇인가?’라고 물었다는 사실에 주목하라고 한다. 소리를 듣는 것이 일차적인 알아차림이라면, ‘이게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자각은 소리 듣는 것을 반조(返照)하는 이차적인 자각인데, 바로 이것이 깨달음이라고 한다.

인경 스님은 유식불교의 3가지 마음작용(유식삼성·唯識三性) 구조로 좀 더 체계적으로 살펴 갔다.

“대상을 판별하고, 개념화하고, 자신의 갈망에 따라 집착하는 것을 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이라 합니다. 언어적 사유에서 판단분별하는 것입니다. ‘알지 못하는 마음, 그 마음이 바로 부처’라 알려 줬음에도 ‘말’만 듣고 ‘그 뜻’을 모른 채 주제에서 벗어난 ‘달마서래의’를 묻고 있으니 ‘소란스럽다’한 겁니다. 언어적 분별에 떨어졌다고 마조 스님은 판단한 겁니다.

대상과의 관계에서 조건에 따라 상호작용하는 것을 의타기성(依他起性)이라 합니다. 의식이 있는 순간이니 소리를 듣는 찰나요, 대상을 보는 지금입니다. ‘여보게!’ 하고 불렀을 때 고개를 돌린 바로 그것입니다.

참된 성품으로서의 마음을 일러 원성실성(圓成實性)이라고 합니다. 듣는 것을 되돌려 듣는(반조) 마음이고, 아는 것을 아는 마음입니다. 고개 돌리는 게 일차적이라면, ‘이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촉발된 마음이 ‘그 마음 자체’를 자각하는 게 깨달음입니다. ‘마음이 그대로 곧 불성’이라 한 마음은 원성실성입니다.”

그렇다면 ‘그 마음’을 보는 게 견성(見性)일 것이며 돈오(頓悟)일 터다.

“견성의 의미는 크게 둘로 나눠 볼 수 있습니다. 우선 대상을 관찰해 그 본질을 통찰한다는 의미를 함축합니다. 초기불교적 관점입니다. 두 번째로는 사물 그 자체 즉 바탕을 본다는 의미입니다. 대승불교권에서 말하는 견성은 바로 이것을 의미합니다.”

이쯤 되니 파도를 거슬러 해변에 앉아 있는 느낌이다. 그러나 이내 모래를 쓸고 가는 잔파도가 눈에 들어온다. 간화선에서의 화두참구는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보조 스님께서는 불성을 공적영지(空寂靈知)라는 측면에서 정의하신 바 있습니다. 텅 비어 있음(공)과 마음의 고요함(적)을 뜻하는 공적은 선정에 속하는 덕성으로 정(定)에 속합니다. 마음이 밝고 환하여 깨어있다는 의미의 신령스러움(영)과 산란하지 않고 어리석음을 떨친 인지적 측면의 분명한 앎(지)을 의미하는 영지는 지혜의 영역에 속하는 혜(慧)입니다. 따라서 화두참구를 통해 불성을 깨닫게 된다는 건 결국 공적과 영지에 대한 체험을 말하는 것입니다.”

순간, 선어록을 관통했던 한 물건, 일물(一物)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며 태고보우 선사의 일언이 스쳐간다.
“이것은 밝고 또렷하여 거짓이 없고, 사사로움도 없으며, 고요하여(寂然) 움직이지 않으나, 큰 신령스런 앎(靈知)이 있다. 생사, 분별, 이름과 모양이 없으며, 허공을 삼키고 천지를 뒤덮으며 큰 바탕과 작용을 갖췄다.”

마음과 불성, 그리고 간화선의 의미가 확연히 잡힌다. 파도와 파도가 뒤엉켰던 바다도 호흡을 조절한 듯 적요 속으로 침잠해 간다.

인경 스님은 목우 선원에서 위빠사나와 명상, 간화선을 접목시킨 명상을 통해 후학들을 지도하고 있다. 이 또한 선의 대중화 방편일 터다. 목우선원은 호흡, 느낌명상, 마음관찰, 현상관찰, 내면의 아이 만나기, 간화선이라는 6단계 명상수련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있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여기에 분노나 화가 나는 느낌이 있다고 전제합니다. 이것을 지도하는 방식에 따라서 다양한 접근이 가능합니다. 호흡명상은 깊게 심호흡을 해서 분노의 감정을 조절할 수가 있습니다. 호흡은 휴식을 돕는 부교감신경계를 활성화시키는 까닭입니다. 반면에 느낌명상은 분노의 감정이 일어날 때, 몸에서 느껴지는 긴장감과 같은 감각들을 바르게 알아차림(正念)하여 관찰하게 합니다. 마음(心)관찰은 분노라는 감정을 그 자체로 관찰하는 것입니다. 곧 여기에 화가 존재한다고 알고, 화가 존재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줄을 관찰하여 분명하게 알면(正知) 됩니다. 현상(法) 관찰은 분노감정의 발생과 소멸의 현상을 관찰하는 것을 말합니다. 내면 아이 만나기는 어린 시절에 형성된 분노의 씨앗을 찾아서 만나는 작업입니다. 그래야 분노의 원류를 발견하고 분노의 내적 종자를 정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간화선에서는 상대방을 자기 식으로 판단하면서 분노하는 그놈이 무엇인지를 질문합니다. 분노할 때 ‘무엇이 참 나인지'를 묻는 것이 화두명상입니다.”

수행에 관심을 둔 많은 사람들이 목우선원으로 걸음해 보기 바란다. 위빠사나와 간화선 수행법의 핵심을 토대로 한 인경 스님만의 독특한 명상법이 삼독에 끌려 흐트러진 현대인들의 마음을 바로잡아 줄 것이다.

채문기 상임논설위원 penshoot@beopbo.com

 

인경 스님은

1988년, 현호(玄虎) 스님을 은사로 출가.· 1999년, ‘몽산덕이(夢山德異)와 고려후기 선사상 연구’로 동국대학교 박사학위 취득. · 현재 목우선원장, 한국명상심리상담학회장.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명상심리학과 교수.· 저서로는 ‘몽산덕이와 고려후기 선사상연구’(불일출판사), ‘염지관 명상, 알아차리고 머물러 지켜보기’(명상상담연구원), ‘화엄교학과 간화선의 만남’(명상상담연구원), ‘현재, 이 순간에 머물기’(명상상담연구원) 등이 있다.

 

[1432/ 201832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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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문기 상임논설위원 penshoot@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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