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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파타차라 ④

기사승인 2018.03.19  16:4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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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편, 자식, 부모 다 잃었다”

“여보, 저기 봐. 먹구름이 몰려오네. 한바탕 큰 비가 내리겠어. 오늘은 글렀으니 일단 집으로 돌아가서 하늘이 개이길 기다리는 게 어떨까.”

폭우 속에 고향집 돌아가다
남편· 아들 모두 잃고 실의
고향집선 부모가 비명횡사


남편의 말처럼, 지평선 언저리의 시커먼 구름이 빠른 속도로 하늘을 물들여가고 있었다. 큰아이는 간간이 들리는 천둥번개 소리가 무서웠는지 그대로 주저앉아 울먹거리기만 했다. 파타차라가 원망 섞인 눈빛으로 먹구름과 남편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궁색한 생활로 돌아갈 순 없는데, 저들은 어찌 나를 가로막는 것인가. 파타차라는 입술을 깨물고 큰아이를 일으켜 세웠다. 조금씩 떨어지던 빗방울이 굵어지더니 사방으로 몰아쳤다. 코앞조차 분간하기 어려운 짙은 어둠도 뒤따랐다. 남편과 아이를 힐긋 쳐다보던 파타차라가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 남편은 체념한 듯 아이의 손을 꼭 붙잡고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칠흑 같은 밤을 헤집고 나아간 지 얼마 되지도 않아 파타차라가 배를 부여잡고 쓰러져 버렸다. 둘째 아이가 나오려는 것이었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 당황한 파타차라가 아이 낳을 장소를 찾아보라며 막무가내로 소리를 질러댔다.

남편은 파타차라와 아이의 얼굴을 쓰다듬고는 도끼로 덤불을 베어가며 비를 피할 안전한 장소를 찾기 시작했다. 급한 대로 움막이라도 짓고자 잡초가 듬성듬성 난 땅을 골라 대충 파내고 덤불을 잘라 덮었다. 그때, 나뭇가지 하나가 몸통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다가왔다. 독사였다. 미처 피할 틈도 없이 얼굴을 물린 남편이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비가 우물처럼 고인 산길에 드러누워 둘째 아이를 낳은 뒤에도 남편은 돌아오지 않았다. 핏덩이 둘째를 왼쪽 편에, 큰아이를 오른 편에 안고 남편이 향했던 방향으로 걸어갔다. 잠시 뒤, 작은 움막 같은 것이 희미하게 보였다. 다가가자 남편이 엎어져 있었다. 눈을 뜬 채였다. 파타차라가 절규했다. “나 때문에 남편이 죽었다.” 열려 있는 남편의 눈을 손으로 쓸어내렸다. ‘아이들이라도 기필코 친정으로 데려가야 한다.’ 다시 첫째와 둘째를 품에 안고 차마 떨어지지 않은 발걸음을 떼었다.

이번엔 거대한 강물이 파타차라를 가로막았다. 폭풍우까지 받아낸 강물은 금방이라도 범람해 버릴 듯 거칠게 움직였다. 아이들을 한꺼번에 옮길 수 없어 첫째에게 기다리라고 한 뒤 핏덩이를 안고 조심조심 건너편으로 넘어갔다. 둘째를 내려놓고 첫째에게 돌아가기 위해 강의 중간에 이르렀을 때였다. 상공을 날던 독수리 한 마리가 기다렸다는 듯 둘째를 향해 내려왔다. 깜짝 놀란 파타차라는 소리를 지르며 양손을 허공으로 휘저었다. 하지만 독수리는 부리로 둘째를 몇 번 쪼더니 낚아채어 허공으로 날아가 버렸다. 절망한 파타차라가 고개를 돌리자 첫째가 강물 속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엄마가 손을 휘젓는 모습을 건너오라는 신호로 알아들었던 것이다. 한동안 수면 위에서 허우적거리던 첫째가 맹렬한 기세로 흐르는 강물에 휩쓸려 떠내려가고 말았다. 눈 깜빡할 사이에 두 아이까지 모두 잃은 파타차라는 넋을 잃고 주저앉았다. 눈물 흘릴 힘도 더는 남아있지 않았다.

의지할 데라곤 부모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풀린 눈과 축 처진 어깨로 간신히 발을 움직여 사위성으로 걸어갔다. 비가 그친 하늘이 맑게 개어 해 떠오르는 광경을 선명하게 드러내었다. “남편 말을 듣고 하루만 참을 것을….” 친정 인근에 도착해 사람을 붙잡고 부모의 근황을 물어보았다. “아, 그 부잣집 말이죠. 어제 비가 어마어마하게 와서 건물이 무너져버렸지 뭐에요. 그 집에 있던 사람들이 죄다 죽어 버렸소. 자다가 봉변을 당한 게지. 저기 화장터에 가면 아직도 연기가 나고 있을 게요.”

하루아침에 남편과 두 아이, 부모까지 숨을 거두었다. 실성한 파타차라는 머리카락을 쥐어뜯고 얼굴을 손톱으로 긁어대며 악에 받힌 쇳소리를 허공으로 내질렀다.

“아들이 죽었다. 남편이 죽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도 죽었다. 몹쓸 세상! 빌어먹을 세상!”

김규보 법보신문 전문위원
dawn-to-dust@hanmail.net
 

[1432/ 201832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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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보 dawn-to-dust@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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