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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조정래의 ‘인도, 삶의 영원한 거울’② - 1983년 ‘불교사상’

기자명 법보신문

가난하고 게으른 나라라는 편견

뉴델리와 바라나시와 아그나를 본 다음의 반응은 재미있는 결과를 낳았다. 일곱은 긍정적이었고, 셋은 부정적이었다. 부정적인 세 사람은 인도인들의 가난과 비위생적인 생활, 그리고 비문명적인 모습에 정나미 떨어져하고 몸서리까지 쳐댔다. 그런데 나는 어이없게도 그 세 사람을 일고의 여지도 없이 경멸하고 있었다. 그런 나는 인도에 가기 전에 가졌던 ‘가난하고 게으른 나라’는 인식을 완전히 수정할 수 있는 답을 얻고 있었다.

순례자 기도와 불타는 시체
시체 떠있는 강선 성수목욕
인생의 의미 생각케 만들어

물론 똑같은 물상을 놓고도 보는 사람의 입장이나 사고의 정도, 가치관 같은 것에 따라 전혀 다르게 인식될 수 있다. 평소에 삶에 대한 종교적, 철학적, 문학적 인식이 전혀 없거나 그 정도가 얕은 사람은 인도 공항에 내리면서 벌써 정나미가 떨어지고 말 것이다. 평균 섭씨 45도의 아교풀처럼 끈적끈적 달라붙는 더위와 끝없이 구역질을 솟게 하는 액체처럼 끈적이는 노린내 때문에 혼비백산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로서는 상상도 안 되는 그런 기후 조건 속에서 그들은 어떻게 살아나가는 것일까 하는 지극히 간단한 의문을 제기하는 데서부터 인도의 존재는 그 문을 열기 시작하는 것이다. 살인적인 더위로 불타는 거대한 인도 대륙의 젖줄인 갠지즈 강가에 자리 잡은 힌두교의 성지인 바라나시를 살펴보고 나면 그 누구를 막론하고 머리를 때리는 충격을 받게 된다. 그 충격은 일시에 긍정과 부정으로 나뉜다. 사고의 중간지대를 허용하지 않는다.

‘진정 인생이란 무엇인가’ 하는 긍정과 ‘저것도 사람 사는 꼴인가’ 하는 부정이 그것이다. 그 어떤 것이 옳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인생이 무엇인지를 진정으로 아프게 회의하며 하룻밤쯤 울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그 장소에서 순식간에 그 답을 얻게 되는 것이다. 아, 부질없는 것, 산다는 것, 명예를 얻고자하는 것, 남보다 잘 살고자하는 것, 보다 오래 살고자하는 것, 그런 모든 짓들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가를 깨닫게 된다.

갠지즈 강은 유유히 흘러내리고, 떠오르는 아침 해를 향하여 전국에서 몰려온 순례자들은 합장 기도를 절과 함께 끝없이 올린다. 그 옆 화장터에서는 장작더미 위에서 시체가 타는 게 그대로 보이고, 화장터 아래 물가에는 물에 뿌려지기를 기다리는 하이얀 뼈들이 돌무더기처럼 높게 쌓여 있다. 물속에서는 성수 목욕을 즐기는 순례자들의 경건하고도 행복한 얼굴이 무수하게 물에 젖어 있고, 저만치 물 위에 무언가가 둥둥 띠 내려오는데 그 위에서 독수리가 큰 날개를 퍼덕이고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악취를 풍기는 소의 시체를 뜯어먹는 중이었고, 순례자들의 목욕은 바로 그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진행되고 있었다.

▲ 소설가
외국인으로서 이런 광경을 보고 일단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문명의 혜택을 받은 사람일수록, 문명의 이기에 대한 신봉의 정도가 클수록 그 도는 심해질 것이다. 그러나 그 갠지즈 강가 돌계단에 쭈그리고 앉은 더부룩한 금발의 젊은이, 그는 프랑스에서 왔다 했다. 무엇을 느꼈느냐는 물음에 주저 없이, 인생을 느꼈다며 그지없이 행복하게 웃었다. 반바지 차림에 슬리퍼 같은 신을 신은 그는 며칠째 그 강가에서 잠을 잤다는 것이었다.

 

 

[1432호 / 2018년 3월 2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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