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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茶)와 커피의 공세

  • 기자칼럼
  • 입력 2018.05.08 09:44
  • 수정 2018.05.31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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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은 햇차의 계절이다. 양력 4월20일 곡우(穀雨)를 전후로 경남 하동 야생차밭에서 첫 찻잎을 따기 시작해 5월이면 하동을 비롯해 보성, 제주까지 전국 곳곳의 차밭에서 찻잎을 따고 덖는 소식이 한창 이어진다.

올해는 특히 냉해로 인해 녹차 생산량이 확연히 줄어들 것이라는 걱정이 많았다. 지난 겨울은 어느 해보다 한파가 오랫동안 지속됐기 때문이었다. 한국의 차나무는 큰 추위에는 나무 자체가 얼어서 더 이상 잎이 돋아나지 못한다는 비관적인 예측이었다. 하지만 겨울을 보내고 완연한 봄이 찾아왔을 때, 차나무들은 보란 듯이 새순을 피워냈다. 비록 평균 생산량보다는 다소 적다고들 하지만 걱정할 만큼 현저하게 줄어든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혹독한 겨울을 이겨낸 올해의 찻잎은 어느 때보다 향기가 진하다는 것이 차인들의 한 결 같은 설명이다.

사실 최근 한국의 녹차는 이상기후보다는 커피의 공습을 더 두려워한다. 한국사회에 몰아친 커피 열풍은 녹차를 가까이해온 불교계에도 고스란히 반영됐다. 차도구가 자리한 다실에는 원두를 갈아서 내려 마시는 도구가 명당을 차지했고 선방의 손꼽히는 대중공양물로 당당하게 커피가 이름을 올렸다. 중국과 대만의 명차들 사이에서 겨우 숨고르기를 하던 한국의 야생녹차는 몰아치는 커피의 공습을 피할 수 없게 된 상황이었다. 이제 녹차는 새하얀 헌다 잔에서만 보는 ‘그림의 떡’이라는 목소리도 심심찮게 들리면서 차 농가의 속앓이는 이래저래 늘어만 갔다. 이 같은 흐름 속에서 지난 겨울을 견딘 햇차 소식은 어느 때보다 반갑다.

지난 3월 말, 중국 사천성 선차 성지순례 취재 당시 첫 행선지였던 몽정산은 세계 최초의 차 시배지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한국보다 일찍 햇차를 수확하는 몽정산에서는 당시 햇차의 출시를 기념하는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예쁘고 잘생긴 청년 다예사들이 곡예에 가까운 방법으로 차를 내리는 이곳에서 맛본 고품질의 몽정산 녹차는 물론 맑고 향기로웠지만 무엇인가 아쉬웠다. 숙우(熟盂)에 물을 식혀 서서히 다려 그윽한 향기를 품는 한국의 녹차를 그립게 했다.

 

 

 

 

▲ 주영미 기자
 
최근 UN식량농업기구에서는 하동 야생차를 국내 차 분야로는 처음으로 ‘세계중요농업유산’으로 선정했다. 세계적으로도 인정받는 한국의 야생차가 정작 한국, 특히 차의 친정이라고 불리는 불교계에서 커피에 밀려 그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는 소식은 안타깝기만 하다.

맑은 빛깔, 은근한 향기에 산뜻한 맛뿐만 아니라 음양이 조화를 이루는 기질까지 녹여낸 한 잔의 차는 역대 수많은 선사들과 수행자들이 가까이하며 진리의 문을 두드리는 열쇠로 삼아 왔다. 부처님오신날이 다가오면서 사찰마다 육법공양 준비로 한창이다. 부처님전에 정성을 다해 감로차를 올리는 그 마음 그대로 자신을 위해 차 한 잔을 다려 마시면 어떨까.

ez001@beopbo.com

 

 

 

 

 

[1439호 / 2018년 5월 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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