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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사랑법

  • 법보시론
  • 입력 2018.05.08 09:49
  • 수정 2018.05.31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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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26일 통계청에서 발표한 ‘2018 청소년 통계’에 2017년 9~24세 청소년이 부모님(양육자)과 매일 저녁식사를 하는 비중이 27.0%로 나왔다. 매우 우려스러운 현실이다. 더군다나 이는 3년 전(37.5%)보다 10.5%나 감소한 것이다. 자식에 대한 사랑이 꼭 수치로 객관화될 수 없다고 할 사람도 있겠지만, 객관적으로 표현되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서로 밥상 공동체도 이루지 못하면서 어떻게 사랑의 유대관계를 쉽게 이룰 수 있겠는가?

지난해 말 비영리단체인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전국 초등 4학년에서 고교 2학년 571명을 조사한 결과도 안타깝다. 매일 가족끼리 대화하거나 함께 노는 시간이 하루 13분에 불과하다. 막상 집에 함께 있어도 상당수가 서로 어떻게 대화하거나 놀지를 모른다고 한다. 아이들이 행복을 위한 최우선 조건으로 ‘화목한 가정’을 첫손가락에 꼽고 있다는 사실에 비추어볼 때 그 괴리는 심각하다.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라는 말이 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기는 쉬워도 자식이 부모를 사랑하기는 어렵다는 말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사회는 내리사랑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기현상이 전개되고 있다.

오늘날 고도의 지식사회로 진입하고 학습해야 할 분량이 과거 사회에 비하여 폭증하면서 자녀 교육의 부담은 더욱 커지고 있다. 가정 단위에서만이 아니라 사회 전체로 보더라도 급변하는 산업 상황에 맞추어 노동인력의 교육과 재교육에 얼마나 성공하느냐가 그 사회나 국가의 미래 경쟁력을 좌우한다는 점에서 후세대에 대한 교육은 그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교육이 무엇을 위한 교육인지 새삼 성찰해야 한다. 인간은 단지 생존과 경쟁을 본성으로 하는 동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부모에 대한 보살핌도 사랑이 그 근간이 되어야 하듯이 자녀에 대한 교육도 사랑이 그 중심에 있지 않으면 그 교육의 핵심이 빠지게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가장 가까운 사람들의 기초적 공동체라고 할 수 있는 가족에서 서로에 대한 유대와 사랑이 약화된다면 그 사회는 미래가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육방예경(六方禮經)’에서 부처님께서는 여섯 방향에 대하여 예배하는 어리석은 사람에게 그 여섯 방향이 단순히 특정한 방향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고 하신다. 곧 부처님께서는 구체적인 인간관계를 잘 다져나가야 한다는 깨우침을 주신다. 동, 서, 남, 북, 상, 하가 부모, 아내와 자식, 스승, 동료, 존경할 사람, 피고용인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자신의 주변에서 일상적으로 마주치는 사람들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부모가 제일 먼저 오고 그 다음에 아내와 자식이 바로 이어서 언급되고 있는 것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궁극적으로는 두루 사랑하고 아껴야 되겠지만, 가장 기초적인 사랑으로서 부모와 아내와 자식에 대한 사랑이 주목되어야 한다.

1957년 발표된 ‘대한민국 어린이 헌장’은 제1항에서 ‘어린이는 인간으로서 존중하여야 하며 사회의 한 사람으로서 올바르게 키워야 한다’라고 하였으나 1988년 전면 개정된 ‘제2 어린이헌장’은 제1항에서 ‘어린이는 건전하게 태어나 따뜻한 가정에서 사랑 속에 자라야 한다’라고 바뀌었다. 이렇게 바뀐 지 30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나라의 가정은 어린이를 사랑 속에 자라도록 하는 방향으로 성숙되어 왔는가? 세계적인 평화학자 요한 갈퉁은 “평화는 평화적인 과정을 통하여 이루어져야 한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이 표현을 원용하여 말하자면, “사람의 행복은 행복한 과정을 통하여 이루어져야 한다”라고 할 수 있겠다. 미래의 행복을 위한답시고 어린이들의 현재 행복을 희생시키는 우를 더 이상 범하지 않는 우리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류제동 성균관대 한국철학과 초빙교수 tvam@naver.com
 

[1439호 / 2018년 5월 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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