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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새들도 평화를 지저귀던 날

기사승인 2018.05.08  10: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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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목에서 소통으로 선회하고 잉태한 생명평화

얼마나 감동이었냐고 묻는다면 보고 또 봐도 좋다는 말로 대신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느 일간지는 펼친 면 전체에 두 나라 정상이 만나는 사진을 꽉 차게 실었다. 적어도 그만큼의 감동이었다. 판문점에서 만난 두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을 하루 종일 지켜봤다. 그날은 도무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으니까. 이 땅에 살고 있는 대부분 사람들이 아마도 그러지 않았을까 싶다. 전쟁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으로 하루하루가 위태로웠던 때가 바로 얼마 전 일이다.

북한, 람사르협약 170번째 회원국
문덕·라선 철새보호구역 승인예정
식생조사 위한 국제학술교류 기대


태평양을 가로질러 쏘아 올리는 미사일 소식은 절망의 끝을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날로 위력은 더해져서 미국 본토마저 불안에 떨 지경에 이르렀다. 남과 북이 아니라 북과 미가 한바탕 전쟁을 치를지도 모르겠다는 불안감 그리고 그 사이에 낀 우리는 바람 앞에 위태로운 촛불 같았다. 팽팽한 긴장이 연일 지속되었다. 나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에 이르자 무력감에 빠졌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 설마를 주문처럼 외웠다.

이 땅에서 나고 자란 나도 전쟁에 대한 불안감이 이 정도였으니 외국인 눈에 비친 이 나라는 오죽했을까. 그 무렵에는 평화의 의미를 아무리 곱씹어도 지겹지 않았다. 그러다 하룻밤 사이에 급반전되고 보니 어리둥절하다. 누군가가 장난처럼 포토샵을 해서 만들었을 것만 같은 혹은 상상 속에서 벌어진 일일 것만 같은 사진과 풍경들이 모두 실제 상황이었다. 수시로 뭉클했고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오랜 시간을 철통 보안과 긴장 속에서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지내던 바로 그곳이 이토록이나 쉽게 오갈 수 있는 길이었다니.

두 정상이 도보다리 벤치에 앉아 대화하는 동안 들려오던 새소리는 마치 평화를 합창하는 듯 했다. 힘차게 꿩이 ‘꿩꿩’, 아름다운 소리로 되지빠귀가 그리고 장난꾸러기 같이 ‘끼끼끼끼’하는 청딱따구리 소리가 평화를 이끄는 배경음악이 되었다. 그날 한반도를 대표하는 13종의 여름새들이 함께 평화마중을 했다고 한다. 주로 밤에 활동하는 소쩍새마저 이 기쁜 자리에 빠질 수 없었던지 ‘소쩍 소쩍’ 하며 함께 했다. 자연이 더불어 맞이한 평화라니 꿈만 같았다.

남북 모두의 깊고도 오랜 상처가 드디어 치유의 방법을 찾아가고 있다는 것을 이번 4.27 판문점 선언문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이렇게 한발 두발 내 딛다보면 서로 오가게 될 것이다. 60년 이상을 섬 아닌 섬으로 살았던 우리는 벌써 대륙횡단 열차를 꿈꾼다. 내게는 그보다 더 가슴 설레는 일이 있다. 습지보전 관련한 람사르협약에서 지난 2월에 북한을 170번째 회원국으로 승인했고 이달 16일에 정식으로 가입시킬 예정에 있다. 평안남도 청천강 하구 문덕철새보호구와 함경북도 두만강 하구의 라선 철새보호구역이 람사르 협약에 등재될 예정이다. 이 두 곳은 모두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오가는 철새들의 중간 기착지이자 서식지로서 가치가 높은 곳들이라 한다.

특히 문덕철새보호구는 멸종위기종인 두루미, 흑두루미, 개리 등의 보호를 위한 중요한 서식지로 평가되고 있는 곳이다. 이곳은 새들의 반 이상이 살고 있거나 지나다 잠시 머물기도 하는 곳일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와 남태평양을 오가는 철새에게도 영양분을 제공하는 곳이다. 람사르습지로 지정이 되면 새뿐만 아니라 그곳에 살고 있는 다양한 식생 조사를 위한 국제학술교류가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또 하나 반가운 것은 북한이 금강산과 인근 지역을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받으려 유네스코에 신청서를 제출했다는 소식이다. 이번 판문점 선언을 계기로 왕래가 자유롭게 된다면 이제 한반도 전체를 가로지르는 생물들의 삶을 들여다볼 기회가 가능하게 될 것이다.

얼마나 많은 새들이 한라에서 백두까지 오가는지 생생하게 알 수 있게 될 날이 멀지 않은 것 같다. 하긴 새들은 언제나 오갔다. 다만 우리가 그럴 수 없었을 따름이었다. 금강산으로 청천강, 두만강으로 생태관광 떠날 날이 목전에 다가오고 있다는 이 조짐이 가슴 벅차다. DMZ가 생태보고라고 하지만 현실은 조금 다르다. 남과 북이 대치상황이었던 만큼 서로를 감시하고 주시하기 위해 쉼 없이 나무를 베어버리는 등 숲이 울창할 틈을 주지 않아 사실상 생태계가 단조롭다는 얘길 들었다. 개발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뿐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기에는 그곳의 긴장이 너무도 오랜 시간 지속되었다. 이제 더 이상의 전쟁 가능성이 사라진다면 DMZ는 생태의 보고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반목에서 소통으로 방향을 선회하니 생명들이 살아 숨 쉬는 것이 느껴진다. 생명 평화란 결국 소통이 잉태하는 것이란 걸 다시 한 번 체감한다.

최원형 불교생태콘텐츠연구소장
eaglet777@naver.com
 

[1439호 / 2018년 5월 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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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형 eaglet77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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