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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제석천 혹은 인드라

아시아 역사·상상의 공간에서 가장 파란만장한 운명을 겪다

▲ 아기 붓다의 출산을 돕고 있는 인드라의 모습. 탄생 부조상 가운데 세부. 대략 기원후 2∼3세기경 간다라 지역 출토. 미국 워싱턴 프리어(Freer) 갤러리 소장.

지난 번 글에 소개한 것처럼, 인드라와 경쟁하여 전투신으로 등극한 위태천에 대한 이야기를 기억할 것이다. 위태천은 비록 전투에서 신들의 왕인 인드라를 무릎 꿇게 했으나 자신이 왕의 권좌에 오르는 대신 인드라를 다시 왕으로 추대하고, 자신은 신들의 사령관으로 한걸음 물러나게 된다. 이 신화적 장면은 신들의 왕인 인드라가 차후 실제 인간의 역사 속에서 어떻게 묘사될 것인가를 암시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베다 전후 영웅호걸 모습과
패륜아적 면이 동시에 혼재
이 시기 불교 속으로 들어와

제석천 역할 통해서 볼 때
신적인 지위는 불교의 신중
부처님 호위무사 활동하며
석가모니 모든 일생에 등장

싯다르타 출산 돕는 조각 속
제석천 이마에 새긴 제3의 눈
한국불화에 남아 있어 흥미

사실 인드라만큼 아시아 역사나 상상의 공간 속에서 파란만장한 운명을 겪었던 신도 적을 것이다. 때로는 최고의 전투신이었다가, 때로는 몰지각한 패륜아였다가, 쇠락한 비의 신으로 변모하거나, 때로는 부상하는 지역의 토착 신들과 겨루어 굴욕적인 패배를 감수해야했던 신이었다. 불경에서 인드라는 거의 모든 석가모니의 삶 속에 등장한다. 신화 밖의 불교유물 속에서도 그는 여러 모습으로 등장한다. 전생까지 따라가 그를 시험하기도 하고 갓 탄생한 아기 싯다르타를 산모 마야부인에게서 받아내는가 하면, 석가모니의 호위무사로 그를 수행하거나 범천(梵天 Bra-hma)과 함께 석가모니를 모시고 도리천에 갖다오기도 한다. 심지어는 석존의 열반 후 사리 분배에도 간여하고 있으니, 석가모니의 거의 모든 일생에 이 신중이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글쎄 뭐랄까, 몰락한 가문의 장남이 남의 집안 집사노릇을 하고 있는 그런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 만큼 불교의 대표적인 신중인 이 제석천은 장구한 시간의 변화를 겪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신은 여전히 아시아의 불교 문화권에서 신왕(神王)의 지위를 놓쳐본 적이 거의 없다. 많은 고전과 유물을 통해 사람들은 인드라에게 왕좌를 내어주는 것이 당연한 듯이 생각하며, 이러한 관념은 아직 잔존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불경 속에서 이 신은 불교적 설화나 설법 전개상 빠질 수 없는 조연 배우이며, 게다가 굳이 계보를 따지자면, 제석은 단군의 조부쯤 되니 단군신화 속에서 이 신은 우리의 조상신 아니던가.

그런데, 특이하게도 인드라가 인류 역사적 기록 속에 처음 등장하는 것은 대략 기원전 14세기경이다. 그것도 인도와 뚝 떨어진 지금의 터키 시골마을 보아스칼레(Bog˘azkale) 지역에서 발견된다. 여기서 발굴된 히타이트(Hittite)와 미타니(Mitanni) 왕국 사이의 협정문서(정확히는 설형문자로 기록한 토판) 속에 그 이름이 나타나는데, 여기에 인도·아리아 신들의 이름이 여럿 등장한다. 베다의 대표적인 신들이다. 언어학적으로는 리그베다도 그 협정문서가 제작된 유사한 시기에 구전(口傳)집성된 것으로 볼 수 있으나, 리그베다가 ‘기록된’ 시기는 비교적 현대이기 때문에 이 토판의 기록은 아마도 가장 오랜 인드라의 흔적이 될 것이다.

한국과도 떨어질 수 없는 제석천의 이름이 터키에서 발견된 것은 고대 인도·이란인들의 조상 일부가 다른 쪽으로 서진(西進)했었다는 것을 암시하며,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이 신의 기원이 훨씬 더 오래되었다는 것을 시사한다. 반면 동남하(東南下)한 아리아인들은 리그베다(r.gveda)나 아베스타(avesta) 안에 제석천의 흔적을 또렷이 남겼다. 특히 인도·아리아인들은 리그베다 속에 가장 다양하고 박력 있게 제석천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는데, 그 어떤 신의 모습보다도 가장 많이 그의 무용담을 찬양하고 있다. 천둥과 벼락의 신이며 비의 신인 인드라는 물을 가두고 있던 적 브리뜨라(vr.tra)를 무찌르고 세상을 해갈시킨다. 구름을 타고 다니며 벼락(바즈라 vajra)을 휘두르는 이런 전투자의 모습은 제우스나 토르 등과 같은 인도·유럽의 다른 신들을 떠올리게 한다.

▲ 자신의 애마 칸타카를 타고 출가를 위해 성문을 나서는 싯다르타. 그 앞으로 활을 멘 인드라가 앞길을 인도하고 있다. 기원후 1∼3세기경 간다라 지역. 영국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 소장.

초기 베다문헌에서 가장 중요한 신들의 대표자로 찬양되던 인드라는 후대에 이를수록 패륜아의 모습이 짙어진다. 술 취한 상태로 의례집전을 방해하거나 비겁한 음모를 사용해 적을 살해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사제들을 살해하는가 하면, 심지어 바라문의 부인과 간통을 저지르기도 한다. 아할리야(Ahalya-)와의 통정 사건은 매우 유명한데, 베다뿐만 아니라 라마야나에서도 이를 기억하고 있다. 아할리야는 본래 바라문 사제의 부인으로 신들의 넋을 빼앗을 정도의 미인이었다. 인드라는 남편인 바라문 사제로 변신해 그녀를 겁탈하게 되는데, 이로 인해 인드라의 몸에 여인의 성기가 천개나 달라붙게 되는 저주를 받기도 한다.

베다 전후기에 나타나는 인드라의 모습을 보면 영웅호걸의 모습과 영웅 내면에 숨겨져 있는 패륜아적인 면모도 동시에 보여준다. 이와 같이 힌두 문헌 속에 그려지는 천신들의 모습은 그리스의 그것과 유사하게 인간적인 감수성과 욕망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인드라의 경우, 적어도 이 정도 변모의 시기에 이르러 불교 속으로 인드라가 들어오지 않았을까 추측된다. 바라문 신들의 왕으로서 권위와 힘을 가지고 있지만, 여전히 인간적인 욕망과 번뇌를 고스란히 소유하고 있는 존재로 말이다. 바로 이 지점이 불교가 힌두교의 신들을 바라보는 경계일 것이다. 모든 힌두교의 신들은 불교의 욕계와 색계 속에 머무른다.

제석천이 보여주는 대부분의 역할을 통해 볼 때, 그의 신적 지위는 불교 내 신중의 역할 정도를 대변한다. 다시 말해, 불교신중으로서의 역할을 가장 적절히 대변하고 있는 신이 바로 인드라다.

비교적 초기에 불교 속에 들어온 인드라의 모습은 붓다의 일생 속에서 여러 에피소드에 등장하기 때문에 다양한 모습을 취할 수 있다. 그러나 베다문헌에서 등장하는 것처럼 호전적이거나 욕망에 휩싸인 모습으로 형상화되지는 않는다. 이러한 모습은 거의 탈각하고, 대신 그의 신격을 보여주듯 사각이나 원통형의 관모를 쓰거나 터번을 쓴 형태로 등장하여 붓다와 주변 인물들을 호위하거나 떠받드는 귀인의 모습을 취한다. 마찬가지로 후대 힌두문헌 등에 자주 등장하는 그의 탈 것, 아이라바타(Airavata)라 부르는 코끼리의 흔적도 많이 등장하지 않는다. 아마 가장 이르게 볼 수 있는 흔적은 기원전 인도 바자(Bha-ja-)석굴에서 묘사된 코끼리를 타고 있는 인물상을 인드라로 추정할 수 있지만 불확실하다.

대신 인드라는 그의 손에 자신의 무기인 바즈라 또는 금강저(金剛杵)를 들고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흔히 벼락 등으로 해석하는 이 바즈라는 단지 벼락이나 번개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것은 번개뿐만 아니라 몽둥이를 뜻하기도 한다. 이 단어 자체 역시 인드라 보다 훨씬 오래된 인도·유럽인들의 공동 유산이라는 점을 주의할 필요가 있다. 베다문헌에는 이 몽둥이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가 있는데 끝이 뾰족한 어떤 무기가 아니라, 돌기(bhr·s·t·ti)가 있는 몽둥이를 암시한다. 바즈라에 대한 이러한 묘사는 리그베다와 아베스타에서 동일하게 나타난다. 따라서 인드라가 손에 들고 있는 무기는 현재 한국의 사찰이나 불교유물 속에서 확인되는 것처럼 끝이 뾰족하거나 갈라진 것이 아니다. 베다 문헌에서 묘사되는 것과 간다라 불교조각 속에서 형상화 되고 있는 바즈라의 형상도 역시 다르다고 볼 수 있다. 간다라의 불전부도 속에서 인드라가 들고 있는 바즈라는 마치 아령과 같이 양쪽 끝이 동물의 뼈와 같이 둥글거나 평평하고 약간 각이 진 것이 특징이다.

이 인드라, 또는 제석천이 무기로 들고 있는 것은 반드시 바즈라 뿐만이 아니라 활도 가능하다는 점을 기억해야한다. 제석천의 또 다른 별명은 ‘화살을 가진 자(is·uhasta)’이기 때문이다. 때로 활을 가진 모습으로 인드라가 조각되기도 하는데, 싯다르타 태자가 출가를 위해  성을 빠져나가는 장면(出家踰城)은 여러 조각을 통해 나타난다. 이 속에서 그의 출가를 안내하는 자가 바로 인드라다. 이때 활을 들고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여기서 하나 더 주목할 것이 있다면, 제석천의 어떤 신체적 특징이다. 전부는 아니지만, 때때로 제석천의 조각이나 회화 속에서 그의 이마에 그의 신적 권능을 상징하는 세 번째 눈이 그려지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한국의 신중탱이나 제석탱 속에서도 이러한 흔적이 분명히 남아있다. 이는 보통 힌두교의 대표신 쉬바의 흔적이라고 보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 이러한 표현은 훨씬 오래전에 불교 내에서 형성된 다른 흐름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다.

워싱턴 프리어(Freer) 갤러리에 있는 마야부인의 붓다 출산 장면에서 으레 제석천은 천을 펼쳐 마야의 허리춤에서 탄생하는 싯다르타를 받아내고 있다. 이 조각은 대략 기원후 2∼3세기경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 조각 속의 제석천의 이마를 가만히 쳐다보면 다른 조각에서 보이지 않는 또 다른 하나의 눈이 새겨져 있는데, 이러한 특징은 한국의 불화 속에도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에 흥미롭다. 이 특이한 그의 신체적 특징은 한역이나 다른 산스크리트 문헌 속에서는 나타나지 않지만, 실크로드를 오갔던 소그디아(Sogdia)인들이 자신들의 언어로 남긴 별도의 ‘자타카(本生談)’ 속에 이 특별한 제석천의 신체적 특징을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 아마도 인도북서부나 중앙아시아를 오갔던 이 지역의 사람들은 비교적 일찍부터 자신들을 위한 별도의 본생담과 자신들만의 또 다른 인드라의 이미지를 통해 독자적인 불교를 이어가고 있었을 것이다.

심재관 상지대 교양과 외래교수 phaidrus@empas.com

[1327호 / 2016년 1월 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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