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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는 민주주의인가

민주는 최선 아닌 차선
교계서 민주 강조될수록
불교 고유성 절로 퇴색

현대사회에서 민주주의는 최고의 정치 체제로 꼽힌다. 18세기 서구에서 새롭게 부활한 민주주의는 인간의 자유와 평등, 존엄성을 최고의 가치로 내세운다. 동시에 어느 사회계층도 다른 계층의 희생을 대가로 군림할 수 없다는 인도주의를 지향한다. 전제왕권 시대 타고난 신분에 따라 일평생 혹독한 차별을 감수해야 했거나 1인 독재체제에서 신음했던 민중들에게 민주주의는 그토록 꿈꿔왔던 미륵세계이자 천년왕국과 다르지 않았다. 오늘날 자본주의 국가나 사회주의 국가 모두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민주주의가 이상적인 체제로 부각되면서 불교의 민주주의적 요소도 새롭게 주목받았다. 2600여년 전 부처님은 극단적인 신분차별제도가 있었음에도 누구나 최고의 깨달음을 이룰 수 있다고 선언했다. 또 아무리 천민이라도 출가해 승가의 일원이 되는 순간 완전한 평등이 보장됐으며, 타고난 신분이 아닌 법랍이나 수행 정도에 따라 위계가 정해졌다. 북인도의 강대국이었던 마가다국 왕이 밧지족을 정벌하려 할 때 했던 부처님의 말씀에서도 민주주의에 대한 부처님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아난다여, 밧지 나라 사람들이 함께 모여 의견을 일치시키고, 의견을 일치하여 일어서고, 의견을 일치하여 자기들의 임무를 수행하는 한 밧지 나라 사람들은 쇠퇴하지 않고 번영하리라.’

부처님은 강대국이라도 민주적으로 운영하고 화합하는 나라는 무너뜨리지 못한다고 보았다. 불교의 이런 특징으로 인해 지금도 ‘불교는 곧 민주주의’라고 간주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불교와 민주주의는 차원을 달리한다. 불교는 재물, 성욕, 음식, 명예, 수면 등 욕망을 넘어 번뇌의 불길이 꺼진 열반을 지향한다. 민주주의는 ‘권력이 특정 개인이나 집단이 아니고 공동체 전체 구성에게 합법적으로 부여되고 있는 형태’라는 특성에서 드러나듯 권력의 배분이 핵심이다. 불교가 출세간의 원리라면 민주주의는 세간의 원리에 가까운 것이다.

이런 차이는 승가와 오늘날 민주주의 투표 방식에서도 명확히 드러난다. 피야세나 딧사나야케의 ‘불교의 정치철학’(대원정사, 1987)에 따르면 전통적으로 승가사회에서 투표를 통해 결정을 내려야 할 경우 무기명 비밀투표, 귀에 속삭임, 공개투표의 세 가지 방법을 사용했다. 그러나 그 결과가 담마(法)에 일치하지 않을 경우, 투표 진행위원은 그 투표의 결과를 거부할 수 있었다. 이렇듯 불교적 의미에서의 민주적 결정이란 단순한 머릿수를 헤아리는 것을 뜻하지 않았다. 이는 승가가 법의 구현 및 전승과 화합을 이상으로 하는 출가공동체라는 특성에서 비롯됐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 조계종은 선거로 몸살을 앓고 있다. 돈 선거라는 오명에서부터 구성원 의사반영 부족, 선거 후 소송과 갈등, 위계질서 문란, 수행풍토 약화 등 온갖 부작용을 낳고 있다. 이는 율장 대신 세속법이 모본이 된 종헌종법이 운영원리로 작용하고, 국가 운영 방식인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의 형태를 쫓은 종단의 당연한 귀결점일지 모른다.

▲ 이재형 국장
이런 가운데 최근 총무원장 선출 방식을 두고 논란이 뜨겁다. 중앙종회에서는 직선제를 비롯해 선거 후유증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결과는 두고 봐야 할 일이지만 수행자 공동체에서 민주주의는 차선이며, 최선은 화합이라는 승가의 정신이다. 어떤 제도여야 분열과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을 지에 지혜를 모을 일이다.

이재형 mitra@beopbo.com


 

[1352호 / 2016년 7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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