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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꽃으로 장식하지 말라

기자명 성원 스님

언제나 아침 6시 은사 스님 전화 왔었는데…

▲ 일러스트=강병호

혜인 스님 전화로 하루시작
생전에 자신의 영단 당부해
“가사만 덮은 운구 참 좋아
화려한 꽃장식도 하지마라”

지루한 장맛비가 멈추어선 곳에는 벌써 파아란 하늘이 자리 잡았습니다.

먼 남쪽나라 제주에서 장마소식이 끊어지면 곧 우리가 사는 아름다운 강산에도 비가 멈추어지고 생기발랄한 여름이 활기치기 시작하겠지요.

장마가 물러난 자리에는 사색가득 묻어나는 만해 스님의 시구가 마음에 머물며 좀처럼 떠나지 않습니다.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의 파문을 내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취입니까
지루한 장마 끝에 서풍에 몰려가는 무서운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
……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그칠 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

숨 쉴 겨를도 없이 시간이 흘러 지나갑니다.

벌써 7월의 가운데에서 혜인 스님의 4재를 준비하다 보니 많은 분들이 항공권을 구입하지 못해 이번에는 약천사를 찾아 나설 수 없다고 아쉬워합니다. 문득 고개 돌려보니 우리들이 휴가철 언저리로 내몰리고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시간이 우리를 어디로 내몰던, 계절이 어디로 우리를 끌고 다니던지 장맛비의 빗줄기가 멈추면 멈춰질 줄 알았던 그리움은 맑은 하늘 가득히 담겨 내게로 쏟아집니다.

오늘 아침에는 잠깐 선잠에 들었다 화들짝 놀랐습니다. 언제나 6시쯤이면 전화를 해서 이일 저일 하루의 일들을 시작하시었는데 전화가 오지 않아서 혹시나 내가 못 받은 줄로만 알았습니다.

죽음을 증명하는 사망진단서를 손에 들은 오늘까지도 내게 그 죽음은 현실감으로 쉬이 다가오지 못하고 있는 줄 이제사 알았습니다. 아니 저 자신이 서럽도록 아쉬웠던 화장막의 그 뜨거운 열기 앞에서도, 습골과 사리 수습의 그 애잔했던 순간에서도 그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나 봅니다.

문득 자리에 일어나 도량을 거닐다가 이제 우리 곁에 아니 계신다는 사실이 음산히 느껴졌습니다. 무엇 때문에 그토록 눈앞에 찬연히 펼쳐진 현실마저 제가 부정하고 있는지 정말 알 수가 없네요.

삶의 가운데에서 언제나 ‘감사하게 생각하라. 고맙다고 말하라. 늘 칭찬하라.’라고 하셨는데 마지막 순간 죽음의 문턱에서까지 혜인 스님은 그 마음을 흩트리지 않으셨습니다.

한번은 저를 부르시더니 “너도 생각해봐라. 정말 고맙고, 감사하고, 송구한 일이 아닌가! 내 은사스님(일타 큰스님)은 나보다 10배 100배 훌륭하신 분인데 72세에 입적하셨지 않느냐! 나는 송구스럽게도 은사스님보다 나을게 하나 없는데 벌써 3년이나 더 살았잖아.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은사스님께 송구스럽게 생각되어질 뿐이다. 소원이 있다면 내가 죽으면 부디 자그맣게 부도탑을 만들어 꼭 은사스님 부도탑 곁에 세워줬으면 좋겠다. 나는 죽어서도 우리스님 곁에 머물고 싶은 소원뿐이다.”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자신의 죽음이 손에 쥐어질 듯 가까이 다가오는 시간에 우리들은 자신이 살아온 삶의 시간에 대하여 감사한 마음을 낼 수 있을까? 자신이 존중하는 사람에 대한 한없는 예경심을 잃지 않고 고스란히 간직 할 수 있을까? 자신감 없는 나 자신이 자꾸 싫어지게 느껴지는 시간들이었습니다.

한번은 “스님 영단은 어떻게 꾸리는게 좋을까요? 노스님의 운구는 가사만 덮으니 참 보기가 좋았던 것 같았어요.” 라는 부질없는 저의 물음에 조금도 언짢아하시지 않으시고 담담히 일러 주셨습니다.

“노스님 때도 좋았고, 지난번 법정스님의 운구 모습이 참 좋아 보이더라. 가사만 덮으면 스님들은 충분할 것 같네. 화려하게 꽃 장식 하지마라.”라고 하시면서 당부하셨습니다. “내가 죽었다고 국화의 목을 잘라서 장식하는 일이 없도록 해라. 내가 죽었다고 국화를 잘라 죽여 단을 장식한다면 내 마음이 너무 아플 것만 같다. 제발 부탁이니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해주라.”

“그러면 단을 어떻게 장식할까요?”하니 잠시 생각하시고는 “난화분으로 꾸미고 끝나면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면 되겠다.” 하시면서 어린아이같이 즐거워하셨습니다. 많은 죽음을 응시해 보았지만 우리 스님은 죽음 앞에서도 천진하고 너무 친근했었습니다.

장례 때 단상에는 스님의 유지를 받들어 생화를 꺾어 장식하지 않았습니다. 살아계실 때 은사스님께 다소 당황스럽고 충돌적인 많은 의견을 내어 맘을 상하게 하곤 하였던 사형 한분의 생각으로 영단과 영결식장 뿐만 아니라 화장대까지 지화로 장엄하여 스님의 뜻을 받들게 되어 참 맘이 편했습니다. 아마도 그 사형은 살아 계실 때 은사스님의 마음을 편히 따르지 못한 것이 송구스러워 유별히 스님의 유훈을 따르고 싶어 했을 것도 같습니다. 우리 모두는 죽음 앞에서 더 너그러워지고 자신을 성찰하며 조금씩 더 성숙해 가는 것 같습니다.

다소 황당한 이야기이지만 분향소와 영결식이 거행된 은해사에는 스님의 고귀한 뜻을 미처 전해 듣지 못한 분들의 조화 수백 개가 놓이고 영천시 꽃가게의 국화꽃이 동났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은사스님께서는 늘 사람을 편하게 대해 주시려 스스로 힘써 노력하시는 분이셨으니 어찌 보내오신 조화를 언짢아 하시겠습니까? 이제부터라도 우리들이 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모든 사람들과 모든 생물들을 사랑하는 일 만이 스님의 유훈을 참답게 받드는 일 인것 같습니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삶의 마지막 순간에 서서 감사와 자비를 가슴에 담고 흩트려버리지 않은 사람에게 지옥의 고통이 과연 가당하기나 하겠습니까!

할 수만 있다면 스님께서 가르쳐주신 모든 것들을 받들어 따르고 싶습니다. 지난 3재 때부터는 영단에 헌화하는 꽃가지 한 개도 조화로 준비하여 보았습니다. 어쩐지 가벼워 보이지는 않을까 마음 조아렸는데 꽃가지 하나에도 가득한 사랑을 담고 떠나가신 우리스님의 마음을 참가 대중들께서 모두 잘 헤아려주시니 영단에서 조화를 받으시는 스님께서도 미소 가득 머금으시는 듯합니다. 스님의 삶과 죽음 앞에서 웰빙만큼이나 웰다잉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어쩌면 우리들은 죽기 위해 살고, 죽음은 새로운 탄생을 위한 시작일 것 만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주의 파랗게 물든 하늘빛이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적시어 그리워지는 사람도 그리워하는 사람도 모두 그리움으로 만나 행복한 시간 되시기를 마음 깊이 바라고 싶습니다.
그리움이 빛깔로 피어나는 때 여름 바닷가에서 성원 드림.

성원 스님 sw0808@yahoo.com


[1353호 / 2016년 7월 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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