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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도원 스님과 금산사 들깨 토란국

“한 톨 쌀에 농부의 땀 일곱 되 스며있다는 사실 새겨야”

▲ 일러스트=강병호 작가

서울 수락산 학림사는 나눔사찰로 널리 알려져 있다. 사중 행사를 비롯해 불자들의 십시일반으로 모연된 쌀을 정기적으로 지역의 어려운 이웃들에게 회향하고 있다. 이 같은 자비나눔행은 학림사 회주 도원 스님의 보시 원력과 불자들의 적극적인 동참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가난한 살림에 아침마다 죽
밥을 해도 세 홉 이상 안돼

한센병 환자 남긴 밥 버렸다
큰스님 불호령에 주워 먹어
그 이후로 음식 탐착 사라져

금산사 별미는 ‘들깨토란국’
콩나물잡채 빼놓을 수 없어

맛보다 정신 되살리는 것이
참된 의미 사찰식문화 선양

도원 스님은 15살 되던 1961년 해인사 주지 금당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그러나 사제의 인연을 맺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은사 금당 스님이 입적해 금오 스님을 따라 금산사로 향했다. 당시 금산사 조실이었던 금오 스님은 주지 월주 스님과 인연을 맺어주고 계를 받도록 해주었다. 이에 도원 스님의 행자생활은 금산사에서 다시 시작됐다.

1960년대 초 금산사에는 금오 스님 등 어른스님들을 비롯해 강원 학인 등 30여명의 대중이 함께 생활했는데 규율이 서릿발처럼 엄하고 매서웠다. 특히 공양과 관련한 규율은 더욱 그러했다. 모든 대중은 대방에 발우를 펴고 오관게를 외우며 기도를 올린 뒤에야 공양할 수 있었고, 아침 공양은 반드시 죽을 먹어야 했다. 점심과 저녁에는 밥을 먹을 수 있었지만 일미칠두(一米七斗)라 하여 쌀 세 홉 이상을 먹지 못하게 했다. 일미칠두란 쌀 한 톨을 만들어 내기 위해선 농부의 땀 일곱 되가 필요하다는 뜻으로 그만큼 쌀을 귀하게 여기라는 의미에서 쓰였던 말이다.

“당시에는 밥을 할 때마다 식량을 담당하는 미감스님이 철저히 인원수를 세어 꼭 맞게 쌀을 내주었어요. 그러다 갑자기 손님이라도 찾아오면 대중들은 자신의 공양에서 조금씩 덜어 손님을 대접해야 했습니다. 언제나 배가 고팠던 행자들은 공양을 마친 손님상에 밥풀이라도 붙어있으면 서로 입속에 넣으려 난리가 났지요.”

이와 관련해 잊을 수 없는 이야기가 있다. 예전 금산사 뒷산 너머에는 한센병 환자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막 공양을 하려는데 그들 몇몇이 찾아왔다. 어른스님들은 행자들에게 스님들의 공양을 덜어 상을 차려주라고 시켰다. 공양을 마친 손님상에는 제법 많은 양의 밥풀이 남아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그 밥풀에 손을 대는 사람이 없었다. 행자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남은 밥풀을 구정물 통에 버렸고, 하필 도감스님에게 그 모습을 들키고 말았다. 도감스님의 불호령이 떨어졌고, 행자들은 구정물 통의 밥풀을 씻어 나눠먹어야 했다. 당시는 한센병에 대한 무지로 행자들은 너나할 것 없이 하얗게 사색이 됐지만, 이 사건으로 스님의 마음에선 분별심이 사라졌다.

“여느 절에서나 마찬가지로 금산사에서도 밭에 상추와 배추 등 온갖 채소를 심어 가꾸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금산사는 예전부터 관광지로 널리 알려져 관광객이 몰려드는 봄가을이면 어마어마한 양의 공양을 준비해야 했어요. 물론 채소를 가꾸고 공양을 준비하는 일 대부분은 행자들이 해야 할 소임이었습니다.”

도원 스님은 금산사를 대표하는 음식으로 가을에 밭에서 수확한 토란으로 만든 ‘들깨 토란국’을 꼽았다. 들깨 토란국 만드는 법은 먼저 들깨를 학독에 잘 갈아둔다. 이후 토란을 넣어 국을 끓일 때 처음엔 조금만 넣고 나중에 국이 거의 다 되었을 때 학독 아래 깔려있는 들깨가루를 넣으면 향이 진하고 구수한 들깨 토란국이 된다. 아욱국도 같은 방법으로 끓여내면 맛이 배가 된다.

특히 도원 스님이 금산사 들깨 토란국을 잊지 못하는 데는 숨은 이야기가 있다. 하루는 토란국을 끓이다 마지막에 들깨가루를 넣으려는 찰라 그만 시렁 위 팔각성냥통을 건드려 성냥이 몽땅 국속에 빠져버린 사건이 발생했다. 깜짝 놀란 스님은 조리로 국속에 성냥을 건져내려했지만, 펄펄 끓는 가마솥 안의 성냥을 건져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공양 시간은 다 되어가고, 아무리 휘저어도 성냥은 이리저리 빠져나가고, 할 수 없이 스님은 그냥 그 국을 떠서 스님들에게 올릴 수밖에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조금 지나자 대방에서는 어른스님들의 불호령이 떨어졌고, 스님은 꼼짝없이 불려가 혼이 난 뒤 참회의 3000배를 올려야 했다.

금산사의 또 다른 별식으로는 ‘콩나물 잡채’를 들 수 있다. 콩나물 잡채에는 당면이 들어가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머리와 꼬리를 뗀 콩나물을 끓는 물에 살짝 데친 후 거기에 당근, 고사리, 미나리 등을 손질해 넣는다. 그리고 식초와 설탕, 겨자, 소금, 깨소금 등을 넣어 새콤달콤하게 무치면 금산사의 별식 콩나물 잡채가 완성된다. 도원 스님에 따르면 전라도 지역에서는 큰 잔치 때면 꼭 콩나물 잡채를 대접했다고 하니 콩나물 잡채는 비단 금산사만의 음식이 아니라 전라도 지역식이라 하겠다.

스님은 어떤 음식이든 절대 가리지 않는다. 더러우면 더러운 대로, 깨끗하면 깨끗한 대로, 마음이 중요한 것이지 결코 음식의 문제가 아니라고 했다. 예전 구정물통 밥풀을 통해 배운 무분별의 정신이다. 그리고 사찰음식을 통해 전해야 할 가르침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강조한다.

“최근 사찰음식에 머물지 않고 사찰음식에 담긴 정신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고무적인 현상입니다. 바른 사찰 식문화 정신을 선양하고 이어나가는 것은 우리 불교를 선양하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따라서 사찰음식에 대한 조사와 연구만큼이나 중요한 일은 어른스님들의 일미칠두의 가르침을 전승하는 일이라 하겠습니다.”

정리=김현태 기자 meopit@beopbo.com

   
 

 

 

 

 
도원 스님은

1961년 해인사 금당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동국대 불교학과에 입학해 석사학위를 받았다. 서울 상계동 학림사 회주로 포교와 전법에 매진하는 한편 지역사회 나눔활동에 앞장서고 있다.

 

 

 

[1354호 / 2016년 8월 1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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