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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선제 대신 율장 ‘단사인 제도’ 활용해야”

기자명 법보신문
  • 기고
  • 입력 2016.08.11 19:46
  • 수정 2016.08.12 19:59
  • 댓글 24

이자랑 동국대 HK연구교수 법보신문 기고

총무원장은 한국불교 대표자
수행·계행 등 불교 소양 필수
다수결로 결정하는 투표 아닌
명확한 근거로 검증 이뤄져야

율장의 ‘단사인 제도’ 활용해
갈마위 구성해 검증 제도화
‘불법대로 살아보자’ 외쳤던
옛 고승처럼 ‘실천력’이 관건

이자랑 동국대 불교학술원 HK연구교수가 조계종 총무원장 직선제 논의와 관련해 7월20일 “직선제는 승가 기본 이념에 어긋난다”는 내용의 기고문을 보낸데 이어 이번에는 ‘율장 이념에 부합하는 총무원장 선출제도를 제언한다’는 제목의 기고문을 보내왔다. 이 교수는 2001년 일본 도쿄대학에서 ‘초기불교교단의 연구-승단의 분열과 부파의 성립’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나를 일깨우는 계율 이야기’ ‘붓다와 39인의 제자’ ‘도표로 읽는 불교입문’(공저) 등 저술과 다수의 논문이 있다. 편집자

▲ 이자랑 동국대 불교학술원 HK연구교수
지난 7월27일자 법보신문에 ‘직선제, 과연 율장의 이념에 부합하는가?’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하였다. 이 글에서 필자는 조계종 총무원장 선출제도의 개선과 관련하여 사부대중 100인 대중공사 여론조사에서 선호도가 가장 높았던 직선제가 율장의 이념에 상치하는, 그야말로 역방향으로 가는 제도라는 점을 지적하였다. 직선제는 승가 운영의 최고 원리인 ‘여법’과 ‘화합’이라는 두 가지 기준을 전혀 충족시키지 못하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직선제 비판을 현행 간선제 내지 다른 대안의 옹호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지만, 이는 오해이다. 직선제에 초점을 맞춘 이유는 사부대중의 지지도가 가장 높기 때문이다.

직선제가 율장의 이념에 부합하지 못한다 해도 금품 수수와 같은 현행 간선제의 폐단을 없애줄 수 있으므로 차선책으로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우리는 직선제가 정말 이러한 폐단을 일소해 줄 수 있는 제도인가와 더불어, 승가가 추구해야 할 ‘여법’과 ‘화합’이라는 중요한 가치를 저버리고 가는 제도가 궁극적으로 초래하게 될 결과에 대해 숙고해야 한다. 바로 지금 이 시기가 새로운 총무원장 선출법을 모색하고, 나아가 변화시킬 수 있는 기회라면, 차선이 아닌 최선책을 찾아 실현할 수 있도록 사부대중 모두 지혜를 모아야 한다. 필자의 직선제 비판은 바로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지난번 기고문에 이어 이 글에서는, 그렇다면 ‘여법’과 ‘화합’이라는 두 가지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 총무원장 선출제도란 어떤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한 가지 방향성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결론을 먼저 간단히 언급해보면, “총무원장 선출제도는 다수결로 사안을 결정하는 투표가 아닌, 명확한 기준에 근거한 갈마위원회 중심의 검증과 만장일치로 결론을 도출해내는 방향으로 개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구체적인 개선 방향은 다음과 같다.

율장에 의하면, 여법과 화합은 서로 불가분의 관계를 갖는다. 여법한 기준에 따라 갈마가 실행되면, 그것이 곧 화합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총무원장 선출제도를 개선하는데 있어서도 올바른 기준인 ‘여법’의 내용을 확보하는 일이 최우선이다. 율장에서는 경과 율을 여법의 기준으로 제시하지만, 오랜 역사의 흐름과 더불어 교리나 수행, 계율 면에서 다양한 변화를 겪어온 조계종의 경우에 이를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역사 속의 승가들이 그러했듯이, 현재의 조계종도들 역시 ‘스스로’ 여법한 기준을 마련하고, 이를 철저하게 실천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총무원장 선출의 경우에는 총무원장 후보의 자격 요건, 검증인단의 구성, 그리고 선출 절차 등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이 필요하다. 현 종헌·종법에도 이 점이 규정되고는 있지만, 현재의 혼란이 보여주듯이 보완 내지 수정이 필요하다.

먼저 총무원장 후보의 자격 요건을 예로 들어 보자. 현 종헌·종법에 제시된 총무원장 후보의 자격 요건을 요약해보면, “종단 재적승으로서 승랍 30년 이상, 연령 50세 이상, 법계 종사급 이상의 비구여야 한다”는 기본 조건과 더불어, 재적이나 공권정지와 같은 징계를 받고 그 기간이 경과하지 아니한 자, 종단의 주요 요직이나 교구본사 주지 등을 역임한 자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하지만, 총무원장이 조계종이라는 종교 공동체를 대표하는 종단 지도자라는 점을 고려할 때, 이 조건들은 너무 평범하다. 일각에서는 총무원장을 단순한 종무 행정의 책임자로 보려는 경향도 있지만, 총무원장은 명실공히 한국불교 최대 종단인 조계종의 대표자이다. 그리고 실제로 총무원장이라는 지위는 조계종의 향방을 좌우할 수 있는 중책이다. 따라서 총무원장의 자격 요건에 수행이나 계행 등과 관련된 불교적 소양을 보여주는 조건이 추가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율장에서는 주요 소임자의 자격 요건으로 경과 율에 해박하고, 행이 올바르며, 설법을 잘하는 자, 그리고 승가에서 발생한 일을 탐진치나 두려움에 사로잡히지 않고 잘 판단할 수 있는 자를 예외 없이 들고 있는데, 이에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총무원장은 어떤 사람인가?’ 바로 이 점에 대한 정리가 이루어지고, 나아가 조문화된다면, 총무원장의 자격 요건에 대한 객관적인 여법의 기준이 마련되는 것이다. 이 기준 마련 작업은 율사처럼 불교 규범에 정통한 사람들의 참여가 필수적이다. 또한 총무원장은 실무를 담당하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이를 고려한 자격 요건에 대한 제안을 해줄 수 있는 사람도 참가하면 좋을 것이다. 이들이 함께 고민한다면 분명 구체적이고도 여법한 총무원장 자격 요건을 어렵지 않게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 조계종 총무원장 선출제도와 관련해 중앙종회가 직선선출제 특위를 구성해 논의하고 있는 가운데 이자랑 교수는 직선제가 아닌 율장에 근거한 선출제도가 바람직하다고 제안했다. 사진은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 모습. 법보신문 자료사진
다음은 후보들을 대상으로 자격 요건을 철저하게 검증하는 갈마위원회가 마련되어야 한다. 율장에서 규정하는, 이른바 현전승가 차원의 갈마법이 여기서 활용될 수 있다. 현전승가를 구성하는 주된 목적은 여법화합갈마의 실행에 있다. 따라서 일정한 수의 대표 검증단이 하나의 현전승가를 형성하고 올바른 절차를 거쳐 검증하여 만장일치로 결론을 내면 된다. 굳이 조계종 전체를 하나의 현전승가로 보아 몇 천 명의 조계종도가 한 자리에 모여야 한다거나, 내지 이들의 의견을 하나하나 반영하여 사안을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이것은 현실적으로도 불가능한 일이다.

율장에서도 ‘단사인(斷事人)제도’라고 해서 대표위원회를 구성해서 논의하고, 그 결과를 대중에게 공개하는 형식을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갈마위원회에서 이루어진 검증 과정이나 결과를 다른 종도들에게 공개하고 동의를 구하는 방식을 취하면 된다. 이에 대해 공식적인 반론이 제기되지 않는다면 그것으로 여법갈마는 성립했다고 볼 수 있다. 공식적인 반론에 대해서는 진지한 검토가 이루어져야 하며, 공식적인 반론을 제기하지 않으면서 갈마의 결정에 불만을 표하며 종단에 불화를 야기할 경우에는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두세 명의 후보자가 결정되면, 마지막 결정을 위해 최종 위원회가 구성될 필요가 있다. 이것은 두 가지 목적을 위해서이다. 하나는 마지막까지 최선의 한 명을 선택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며, 또 하나는 종교적 권위의 확보를 위해서이다. 사실 율장에서 전제로 하는 현전승가는 일정한 공간 안에서 함께 생활하는 사람들로 구성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평소에 그 사람의 인격이나 수행, 계행, 지도 능력 등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판단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이로 인해 객관적인 검증 조건에 더하여 총체적인 판단이 가능하므로 결과적으로 실패할 가능성이 적다. 하지만, 지금 조계종의 경우에는 범위가 크기 때문에 이런 추가적인 판단이 쉽지 않다. 따라서 이 부분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 일단 철저한 검증 과정을 거친 후보들이므로 사실상 누가 된다 해도 큰 문제는 없겠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의 선택을 위한 노력을 하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1차적 갈마위원회 및 이 최종위원회를 구성하게 될 위원들의 자격 요건이나 인원수에 대해서는 필자가 섣불리 여기서 언급할 부분은 아닌 것 같다. 전문가들의 세밀한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여하튼 이 위원회의 구성원들이 모여 최종적인 논의를 거쳐 단 한 명을 만장일치로 추대하는 방식으로 마무리 지었으면 한다. 이것이 갈마법에도 부합한다. 가톨릭교회의 교황 선출 방식인 콘클라베를 보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종교란 성스러운 영역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것은 곧 종교적 권위이기도 하다. 두세 명의 후보자를 두고 필시 논의 과정에서 적지 않은 의견 충돌이 있을 수 있을 것이고, 또한 사적인 감정 역시 작용할 것이다. 하지만, 이 선에서는 모든 것을 이들의 판단과 결정에 맡기고, 이들의 논쟁을 통해 최후에 남은 단 한 명을 종단의 지도자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콘클라베는 참석자 3분의 2의 동의를 얻어내는 것으로 마무리 짓지만, 조계종에서는 갈마 원칙에 따라 만장일치를 이끌어내어 추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리고 여기 참석했던 구성원들이나 종도들 역시 적어도 이 결과에 대해서는 모두 승복해야 한다. 이는 구성원의 화합을 위한 일이므로 사부대중의 인식의 공유가 필요하다.

이상, ‘여법’과 ‘화합’이라는 율장이 강조하는 승가 운영의 이념을 고려하며 총무원장 선출제도의 개선 방향에 대해 의견을 제시해 보았다. 지금으로서는 많이 부족하지만, 이에 사부대중의 의견이 추가되어 간다면, 훗날 후회하지 않는 좋은 제도가 마련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혹자는 “현재의 조계종은 율장에 의해 운용되지 않고, 종헌·종법과 청규에 의해 운용된다”라는 주장 하에, 율장의 가르침을 현재의 한국불교에 적용시키는 점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기도 하지만, 이는 참으로 얼토당토않은 주장이다. 현재 조계종도에게 가장 영향력 있는 규범이 종헌·종법인 것은 맞지만, 조계종이 종헌·종법이 제정된 1962년에 새롭게 등장한 신흥종교가 아닌 이상, 종헌·종법과 율장을 완전히 분리시켜 그 가치를 논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종단의 정체성을 뒤흔드는 일이다. 더구나 종헌 제8조 및 제9조에서 ‘본종이 비구·비구니로 구성되고, 이들은 구족계와 보살계를 수지한다’라고 명언하고 있으며, 실제로 구족계를 받고 조계종의 비구·비구니가 되고 있는 상황에 눈에 보이는 어설픈 ‘현실’ 논리로 율장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

중국의 도선 스님, 한국의 자장 스님 등, 과거에 존재했던 역사 속의 승가들이 기강 확립과 재건을 시도할 때마다 필히 율장에 주목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율장에는 그 어떤 규범집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승가 운영의 이념과 구체적인 실천 지침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되짚어 보아야 할 것은 현 종헌·종법에 율장의 이념이 제대로 반영되어 실천되고 있는가 하는 문제이지, 율장의 부정은 아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부합하는 길을 찾으려는 노력이 등한시되는 요즘, 지극히 절망적인 현실 앞에서도 ‘부처님 법대로 살아보자’라는 구호를 외치며 불제자로서 지향해야 할 길을 버리지 않았던 근대 고승들의 판단력과 기백 넘치는 사자후, 그리고 강인한 실천력이 사무치게 그리워진다.

[1355호 / 2016년 8월 1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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