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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 뜨거운 불교계 민원 요청

정치인·고위공직자 향한
스님들 부적절한 민원은
불자들 부끄럽게 만들어

2013년 7월25일 오전 청와대로 향하는 버스 안에는 30여명의 불교지도자들이 탑승하고 있었다. 각 종단 대표자와 조계종 24개 교구본사 중 20여개 본사 주지스님들이 참여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청와대 초청 오찬은 향후 불교계와의 관계에도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자리였다. 그 때문에 내부적으로도 개별적인 요청 사안은 자제하자는 얘기도 나왔다.

그러나 우려가 곧 현실이 됐다. 대통령의 인사말이 끝나자 모 교구본사 주지 스님이 마이크를 잡더니 정부가 자신의 사찰에 기념관을 지어야 하는 당위성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했다. 그러자 모 종단의 총무원장도 무형문화재 관련 건물을 지어달라고 하는가 하면 심지어 어떤 스님은 자신의 절을 관람료 사찰로 전환해 입장료를 받을 수 있도록 요청했다고도 한다. 천만 불자를 대표하는 불교지도자들이 대통령에게 바른길을 일러주고 때로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아야 할 자리가 낯 뜨거운 민원 요청의 장이 돼버린 것이다.

불교계의 부적절한 민원 요청으로 공직자들이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하는 일들도 적지 않다. 특히 선거철이면 뭐라도 해줄 것처럼 선심을 쓰는 국회의원 후보자들도 문제겠지만 이 때다 싶어 민원을 줄줄이 늘어놓는 일부 스님들도 수행자의 태도로 보기는 어렵다.

초기경전인 ‘쌍윳따니까야’에 나오는 베라핫차니 부인과 수행자 우다인의 일화는 출가자의 위의를 돌이켜보게 한다. 바라문 명문가 출신으로 똑똑한 데다가 자존심이 무척 센 베라핫차니 부인이 있었다. 어느 날인가부터 그녀에게 우다인이라는 반듯한 사문에 대한 얘기가 자주 들려오자 사람을 시켜 우다인 스님을 초청했다. 그녀는 훌륭한 스님을 불러 대화를 나누고, 그가 원하는 바를 적당히 들어주면 자신에 대한 평판도 높아지리라 여겼던 것 같다.

초청을 받은 우다인 스님은 다음날 그녀의 집으로 찾아갔다. 그러나 스님은 법을 청하는 베라핫차니에게 “(법문을 들을) 때가 올 것입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곧바로 자리를 떴다. 스님은 법문을 청하고도 높은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는 등 그녀의 태도에서 진정성이 없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스님은 자신이 그녀의 액세서리로 취급받거나, 부처님 가르침이 지적 허영으로 전락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한데 그녀에게 이런 경험은 생소했다. 누구라도 그녀 앞에서는 절절 매거나 잘 보이려 애썼을 터였다. 그녀는 사문에게 화도 났지만 은근히 존경심도 솟았다. 주변에서는 다시 스님을 초청할 것을 권했고 그녀도 이를 받아들였다. 다음날 우다인 스님이 베라핫차니의 집을 찾았을 때 그녀는 진심으로 가르침을 청했다. 이에 우다인은 정성껏 법을 설했고 그 법문에 크게 감동한 그녀는 “훌륭하십니다. 존자께서는 어둠 속에 등불을 가져오듯 여러 방법으로 진리를 밝혀주셨습니다. 이제 저는 세존께 귀의합니다”라고 찬탄했다.

▲ 이재형 국장
최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 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 내정됐다. 그녀가 독실한 불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보니 불교계의 민원들이 잇따를 것이라는 우려들이 나온다. 오늘날 모든 스님들에게 반듯한 수행자였던 우다인의 모습을 바라기는 어렵다. 그렇더라도 지극히 사적인 민원을 요구하거나 인맥을 동원해 뜻을 관철하려는 것은 부처님 가르침에 어긋나고 불자들을 부끄럽게 하는 일이다. 오히려 정치인이나 공직자들이 스님을 찾아와 도와 드릴 게 없느냐고 묻더라도 ‘차나 한잔 드시고 가시라’고 말하면 어떨까.

이재형 mitra@beopbo.com

[1356호 / 2016년 8월 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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