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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광 스님 “동국대, 격랑에 휩싸인 나룻배와 같다”

  • 교계
  • 입력 2016.08.23 15:28
  • 수정 2016.08.27 09:52
  • 댓글 9

[특별 인터뷰] 동국대 이사장 자광 스님

▲ 자광 스님은 “지금 동국대는 격랑에 휩싸인 나룻배와도 같다”며 “흔들리고 있는 동국대가 다시금 순항하도록 하려면 원칙을 바탕으로 각자 위치의 것들을 그 자리로 돌려놔야 한다”고 강조했다.

개강이 얼마 남지 않은 8월18일. 동국대 서울캠퍼스에는 몇몇 학생들이 짝을 이뤄 어디론가 향하고 있을 뿐, 학기 중과는 사뭇 다른 한산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그마저도 연일 맹위를 떨치고 있는 폭염에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여느 대학 캠퍼스에서도 마찬가지일 여름 풍경 속에서, 여느 대학 캠퍼스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풍경이 눈에 띈다. 본관 앞에 파란 비닐을 씌운 천막이 세워져 있고 구호를 적은 종이들이 이곳저곳 잔뜩 붙어 있다. ‘평단사업 반대농성 173시간째 진행 중’이라는 글씨도 선명하다. 평생교육 단과대학 사업을 반대하는 학생들이 천막 안에서 8일째 농성을 이어가고 있었다. 총장 선출 과정에서 촉발된 학내 갈등이 횟수로 3년을 채우고 있는 현시점에서도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현장이었다.

1964년 종비생 1기로 입학
학교에 대한 애정 남달라

1995년까지 25년 군승 재직
불균형 군종제도 개선 주도
2012년 호국연무사 건립도

삼청교육대서 교육할 당시
교육생·병사 대치 벌어지자
맨몸으로 걸어가 설법 펼쳐
교육생들 총기 반납하게 해

“동국대는 귀족사립대 아냐
평단은 기회 제공하자는 것”

“학내갈등은 탐욕에서 비롯
삼독심 버리면 정상화 가능”

시간을 되돌려,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기 전이었던 6월20일. 동국대 이사회는 새 이사장으로 자광 스님을 선출했다. 당시 자광 스님은 “조계종 종비생 1기 출신으로 평소 애정이 많았던 동국대의 이사장 소임을 맡게 돼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며 “법인 이사님과 산하 교육기관 교직원 여러분과 힘을 모아 학교법인 운영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경산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스님은 1960년 경산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1963년 자운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받았다. 1964년 종비생 1기로 동국대 인도철학과에 입학했으며 1970년 군승으로 임관했다. 이후 스님은 깊은 신심과 우직한 뚝심으로 한국불교계에 굵직한 궤적을 그려왔다. 대한민국 군대 내 모든 군종 업무를 총괄하는 국방부 군승실장을 역임했으며, 군종특별교구장으로서 2012년 논산 훈련소 법당 호국연무사 대작불사를 성공적으로 회향했다. 그런 스님에게도 110년 역사를 자랑하는 종립대학 동국대의 이사장이라는 소임은 결코 쉽지만은 않을 터. 학교 발전과 구성원들의 화합을 위해 다시 한 번 뚝심을 발휘해야 할 자광 스님을 8월18일 동국대 정각원에서 만났다.

▲어렵고 혼란스러운 시기에 이사장직을 수락한 이유는.
“종비생 1기로서 학교에 대한 애정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게다가 종비생 제도는 불교계를 이끌어갈 젊은 인재를 양성하겠다는 발원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는가. 종단의 혜택을 입은 종비생 1기 출신으로서 학교를 위해 봉사해야겠다는 결심이었다.”

▲모교가 어떤 학교가 되길 바라는지.
“동국대는 조계종의 얼굴이고 불교의 꽃이다. 동국대가 잘못되면 얼굴이 망가지고 꽃이 시드는 꼴이 된다. 사명감을 갖고 학교를 제대로 일으키겠다. 과거 동국대는 최고 수준의 사립대였다. 그 위상을 하루빨리 회복해야 할 것이다.”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다면.
“모든 것을 제자리에 갖다놔야 한다. 지금 동국대는 격랑에 휩싸인 나룻배와도 같다. 흔들리고 있는 동국대가 다시금 순항하도록 하려면 각자 위치의 것들을 그 자리로 돌려놔야 한다.”

▲구체적인 방법은 무엇인가.
“정관과 학칙에 따른 운영이다. 인간관계도, 인정도 아닌 원칙을 최우선에 둘 것이다. 이것이 바로 동력이다. 개인적인 재주가 아무리 많아도 원칙에서 어긋나면 힘을 얻을 수 없다.”

▲학내 갈등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개인적인 탐욕에서 비롯됐다고 판단한다. 탐진치 삼독심의 눈으로 학교를 바라보려 하니 벌어지는 문제들이다. 삼독심을 털어버리면 학교는 빠른 시일 내에 정상화될 것이다. 구성원 모두가 자기 것만 찾으려는 욕심을 버리고 화합으로 향하길 바란다.”

구성원 개개인에게 삼독심을 버리길 당부하는 스님의 모습은 군승시절 유명한 일화를 떠올리게 한다. 스님이 전방근무를 할 때 삼청교육대에서 입소자 교육을 담당했는데, 어느 날 한 교육생이 기간병의 총을 빼앗아 대치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총격이 벌어져 부상자가 속출했다. 사단장의 명령을 받은 스님은 현장에 도착해 확성기를 들고 “나는 군인스님이다. 막사로 들어갈 테니 총을 쏘지 말라”고 외친 뒤 웃옷을 벗고 뚜벅뚜벅 막사로 걸어갔다. ‘부모님 은혜’를 소리 높여 부르자 막사 내의 교육생들이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막사에 도착해서는 피범벅이 된 채 뒹굴고 있는 부상자들을 밖으로 내보내게 하고는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행동하는 사람은 반드시 실패자가 된다. 누가 실패자가 되라고 한 게 아니라 스스로 그렇게 되는 것”이라고 즉석 설법을 펼쳤다. 숙연해진 교육생들은 총을 반납했고, 곧바로 상황은 종료됐다. 자칫 목숨을 잃을 수 있는 극단적인 상황에서 스님은 담대한 모습으로 불법을 이야기하며 총을 쥔 이들에게 울림을 전했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평생교육 단과대학 사업에 대한 생각은.
“교육의 기회는 만인이 평등하게 누려야 한다는 게 내 원칙이다. 형편이 안 돼서 배우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차원에서 좋은 사업이라고 본다. 동국대는 명문사립대이지 귀족사립대가 아니다. 프롤레타리아와 부르주아가 차별 없이 공부하는 장소다. 이 땅의 스님들이 110년 전, 허리띠를 졸라매고 기금을 모아 동국대를 세웠다. 어려운 사람들이 들어오면, 스님들이 탁발을 해서 그들이 등록금을 내지 않고도 공부하도록 했다. 자비심으로 교육시키자는 것이었다. 이런 역사가 있는 동국대를 왜 귀족사립대로 전락시키려 하는가.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자는 취지의 평단사업을 반대하는 것이 안타깝다.”

▲종단과 학교는 어떤 관계를 유지해야 하나.
“종단은 동국대를 설립한 주체다. 설립자의 위치를 흔들면 안 된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전국의 스님들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탁발을 해서 세운 학교가 동국대다. 설립자의 위치는 지켜져야지 그 자체를 부정하면 안 된다. 최근 일련의 상황들을 살펴보면, 종단이 그러한 위치를 확보하지 못해 학교가 격랑에 휘둘리는 나룻배와 같이 됐다고 본다.”

▲종립대학 동국대가 불교적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는 방안은.
“불교연구가 활발해져야 한다. 우리나라 최대 종교인 불교에서도 조계종이 설립한 종립학교이기에, 동국대에서 불교를 연구하고 활성화시킨다는 것은 굉장한 의미가 있다. 정체성 확립을 위해 동국대가 해야 할 일이 많다.”

원칙을 기반으로 불교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노력은 군승시절부터 스님의 과제였다. 스님은 1970년 군승 중위로 임관해 1995년 대령으로 예편할 때까지 25년간 군포교에 매진해왔다. 특히 국방부 군종실장이었던 1993년, 불균형적으로 운영되던 군종제도를 획기적으로 개선했던 일은 지금도 군포교 일선에서 전설처럼 회자되고 있다. 당시 개신교 군종목사 300명, 가톨릭 군종신부 70~80명, 불교 군승 70~80명이었는데, 군대 내 신자 비율을 따져봤을 때 불합리한 처사였다. 자광 스님은 군종목사 200명, 군종신부 70~80명, 군승 170~180명으로 조정하는 안을 국방부장관에게 건의했다. 개신교 단체들이 몰려들어 데모를 하는 통에 업무가 불가능할 지경이었다. 외로운 투쟁이었지만 스님은 굴하지 않고 안을 밀어붙였다. 결국 안이 확정돼 군승들은 군종목사들과 당당하게 어깨를 겨루며 포교에 나설 수 있게 됐다.

“정체성 확립에 있어 하나 더 말하고 싶은 것은, 전국 스님들과 불자들이 동국대에 거는 기대가 크다는 점이다. 만약 동국대가 잘못되면 예전 스님들이 그랬듯 오늘날 스님들도 탁발을 해서라도 살려낼 것이다. 불자들 또한 IMF 시절 금모으기 운동처럼 동국대를 위한 운동을 펼칠 것이다. 이게 바로 스님의 정신이고 불자의 정신이다. 부처님 법이 살아있는 한, 동국대는 쉽게 쓰러지지 않을 것이다.”

▲종비생 1기로 동국대에 입학했던 이유는.
“동국대 다니면 장가간다는 부정적 인식이 파다했던 시절이었다. 은사인 경산 스님께서 총무원장 시절 이러한 인식을 무릅쓰고 종단의 미래를 위한 종비생 제도를 만들었다. 그런데 정작 고등학교를 졸업한 스님이 없어 입학생 모집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던 중 경산 스님께서 나를 지목해 동국대 입학을 명했다. 1964년 인도철학과에 입학했던 것에는 이러한 배경이 있었다.”

▲살아오면서 가장 잘 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군포교는 일생을 건 불사였다. 1970년 군승으로 입대하기 전, 사찰 법회 참석자 대부분이 노보살이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아 불교의 미래를 걱정했다. 젊은 불자를 길러내기 위해 군포교에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던 이유다. 현재 논산 호국연무사 법회에 4000명 이상의 장병들이 참여한다. 의자가 모자랄 지경이다. 그 모습에 보람을 느낀다.”

▲어떤 이사장으로 기억되고 싶은지.
“학교를 정상적인 수준으로 올려놓은 이사장으로 기억되고 싶다. 전국 최고의 사립대였던 과거 위상을 회복하려 한다. 새롭게 만들자는 게 아니라, 잃어버렸던 것을 찾자는 것이다. 정관과 학칙을 중심으로 원칙을 지켜나갈 때 비로소 가능할 것으로 믿는다.”

김규보 기자 kkb0202@beopbo.com
 

[1356호 / 2016년 8월 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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