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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슬로푸드와 사찰음식

기자명 김유신

음식을 상호 관계로 인식
매우 밀접한 연관성 지녀

인류 역사이래 음식을 분류할 때 속도를 기준으로 정한 경우는 현대의 ‘패스트푸드’와 ‘슬로푸드’가 유일한 것 같다. 패스트푸드는 말 그대로 빠른 음식이다. 주문한 음식이 주문자의 손에 도착하기까지 매우 짧은 시간이 소요되는 음식을 말한다. 늘 시간에 쫓기고 효율성의 굴레에 매어 사는 현대에 어울리는 음식이다.  저렴한 가격에 맞도록 원자재 가격을 낮춰야 하기에 환경파괴의 대표적 사례인 대규모 플랜트농업과 공장식축산으로 생산된 재료를 사용하게 된다. 그러므로 음식의 미감을 살리기 위한 여러 첨가물 등이 조리라는 이름하에 들어가고 결국 건강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반면에 슬로푸드는 느린 음식이다. 음식이 만들어지는 전 과정을 찬찬히 살피고 맛과 건강을 갖춘 음식을 찾기에 느린 음식이고, 천천히 준비되는 음식이다. 슬로푸드는 음식을 만드는 전 과정이 깨끗하고(Clean) 공정해야(Fair)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말하는 깨끗함은 “지구의 자원을 축내지 않고, 생태계와 환경을 해치지 않으며, 인간의 건강을 위협하지 않도록 생산된 음식”을 의미하고, 공정함은 “사회적 정의를 지키는 음식, 생산, 상품화, 소비의 모든 단계에서 공정한 임금과 조건에 맞춘 음식”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사람들이 앞서 말한 두 가지 조건을 충족한 맛과 건강까지 갖춘 음식, 즉 좋은 음식(Good)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좋은 음식”을 추구하고 구별하는 안목을 갖춘 사람들이 많아지면 “깨끗함”과 “공정함”을 통해 지구환경과 전통적인 농업문화의 전승, 합리적이고 건강한 사회구조가 실현된다고 말한다.

음식과 관련된 수많은 정의 중 독일 철학자 ‘포에르바하’의 “사람이 먹는 것이 곧 사람이다”라는 정의만큼 회자되는 정의도 없을 것이다. 포에르바하의 정의에 따르면 양질의 음식물이 들어가면 건강한 육체가 이루어지게 된다. 건강한 육체를 이룰 건강한 음식을 찾고 그 음식이 지속적으로 생산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드는 것, 그와 관련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는 것이 슬로푸드운동이다. 슬로푸드운동은 1986년에 이탈리아의 음식운동가 ‘카를로 페트리니로부터 주창되어 30년이 지난 오늘날 전 세계 180여개 국가에 지부가 조직되었고, 지구환경과 음식문화와 관련된 가장 영향력 있는 국제 NGO로 성장하였다.

이러한 슬로푸드와 사찰음식은 매우 밀접한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 슬로푸드는 음식을 개인간, 집단간, 혹은 인간과 자연간의 상호관계적 존재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찰음식과 궤를 같이 한다. 다만 사찰음식은 보다 가치 지향적이다. 오관게의 앞부분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가, 내 덕행으로 받기가 부끄럽네”는 음식이 만들어지기까지 인간의 노력, 자연의 작용, 인간과 자연의 관계성을 설명하고 있다. 뒷부분은 “마음의 온갖 욕심 버리고, 몸을 지탱하는 약으로 삼아 도업을 이루고자 이 공양을 받습니다”인데 사찰음식에서 음식을 통해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온 세상의 화평과 조화로움이다. 그러므로 세상의 화평과 조화로움을 구할 수 있는 음식이면 바로 사찰음식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는 채식이나 육식, 거칠고 부드러운 음식 등의 구별이 있을 수 없다. 세상의 음식이 곧 사찰음식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찰음식은 지향하는 바로 세상의 음식과 구별되기도 한다. ‘증일아함경’ 권 41 ‘마왕품 제45’에 보면 세상의 음식(世間食)과 진리의 음식(出世間食)을 구분하고 있다. 이 중 진리의 음식은 5가지로 선식(禪食), 원식(願食), 염식(念食), 해탈식(八解脱食), 희식(喜食)인데 이 모두 음식을 통해 우리가 얻어야 할 교훈과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바를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찰음식은 가치 지향적이라고 할 수 있다.

세상 속에서 깨끗함과 공정함을 추구하는 슬로푸드와 온 세상의 화평과 조화로움, 나아가 정토(淨土)를 구현하고자 하는 사찰음식이 어떻게 만나야 할지 진지한 고민이 필요할 때다.

김유신 한국불교문화사업단 발우공양 총괄부장 yskemaro@templestay.com

[1356호 / 2016년 8월 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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