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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상덕 스님과 미타사 장김치

오신채와 고기 없는 사찰음식은 몸과 마음 치유하는 약식

▲ 일러스트=강병호 작가

서울 옥수동에 자리한 정수암은 미타사(彌陀寺) 여덟 암자 중 하나다. 미타사는 보문사, 청량사, 청룡사와 함께 서울의 대표적인 비구니 사찰로 신라 진성여왕 때인 888년 대원 스님이 창건한 유서 깊은 전통사찰이다. 한때 부속건물만 9동 68칸이나 되었다고 하니 그에 따른 암자도 수없이 많았다. 이 가운데 정수암은 주지 상덕 스님을 닮은 듯 단아하고 정갈한 모습으로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상덕 스님은 16세 되던 해 청룡사에서 법성 스님을 은사로 비구니계를 수지했다. 그러나 은사스님이 일찍 입적하는 바람에 18세 나이에 미타사 정수암 주지가 돼 정수암을 이끌고 있다.

아침은 죽, 저녁은 발우공양
활연꽃비빔밥 여름철 별미

고춧가루 쓰지 않는 장김치
스님들이 겨울에 즐겨먹어

두부간장졸임·솔잎찬밥은
미타사만의 독특한 음식

찬밥도 솔잎즙 섞어 찌면
변질되지 않고 향기 좋아

현재 미타사에는 20여명의 스님들이 상주하고 있다. 그러나 스님이 출가할 당시만 해도 스님 40여명이 주석했고, 적지 않은 수의 어린아이들이 함께 생활했었다. 대중이 많은 만큼 해야 할 일도 많았다. 당시는 옥수동 근처가 모두 산이라 노동이 가능한 스님은 틈나는 대로 나물을 캐고, 나무를 해다 불을 지펴야 했다. 물론 민가가 멀지 않았고 미타사에 다니는 신심 깊은 불자들도 많았던 때라 공양물 보시도 꽤 됐다. 때문에 한국전쟁 이후 모두가 어려울 때였지만 미타사 대중들은 부족해도 공양을 거르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대개 아침에는 죽을 먹었고, 점심과 저녁에는 발우공양을 했습니다. 기억에 남는 것은 공양을 준비할 때면 반드시 부드러운 음식 한두 가지를 만들어 올렸다는 겁니다. 미타사에서 함께 생활하는 노스님들을 불편 없이 모시고, 어린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한 배려였습니다. 출가 이후 마음으로 체득한 미타사 대중스님들의 가르침이 지금의 사회복지사업을 일구는 큰 밑거름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스님은 제철 나물을 활용한 미타사의 다양한 공양거리를 전해주었다. 봄에는 ‘제피잣볶음’ 여름이면 ‘노각무침’과 ‘활연꽃비빔밥’ 가을엔 ‘무청말림장아찌’ 겨울은 ‘장김치’ 등 계절별로 특색 있는 다양한 음식이 있다. 제피잣볶음 만드는 법은 봄철 연한 제피잎을 따서 들기름과 간장에 오래도록 볶는다. 제피잎이 다 볶아지면 잣과 고춧가루, 깨소금을 넣고 고루 저어주면 제피잣볶음이 된다. 노각무침은 늙은 노각의 씨를 파내고 적당한 크기로 썰어 소금에 절였다가 숨이 죽으면 물기를 꼭 짜서 고추장, 참기름, 청고추를 채 썰어 버무려주면 완성된다.

여름철 활연꽃비빔밥은 상덕 스님이 가장 좋아하는 별미 중 하나다. 만드는 법은 의외로 단순하다. 오색 빛깔 나물 비빔밥 위에 연꽃의 꽃술만 넣어 함께 비벼먹으면 된다. 그런데 그 향과 모양이 상상하는 것 이상이라서 귀한 손님을 대접할 때 내놓아도 손색이 없다. 무청말림장아찌는 가을 무청 여린 속을 소금에 약간 절인 후 헹구어 낸 다음 그늘에서 꼬들꼬들하게 말린다. 먹기 좋게 잘라 간장과 설탕, 고춧가루를 조금 넣어 버무려 둔 다음 보관해 두었다가 먹을 때마다 참기름과 물엿을 추가해 무치면 된다.

장김치는 상덕 스님뿐 아니라 미타사 스님 모두가 좋아하는 겨울철 별식이다. 주로 정월 새해 김치로 만들어 먹는 장김치는 고춧가루를 쓰지 않고 간장으로 담그는 것이 특징이다. 요즘의 보쌈김치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장김치 만드는 법은 먼저 깨끗하게 씻은 배추와 무를 집간장과 진간장을 섞은 간장물에 절인다. 사과와 배, 무, 대추, 밤, 석이버섯, 잣 등을 채 썰어 양념을 만든 후 절여 놓은 배추와 무에 버무리면 된다.

상덕 스님은 또 미타사의 독특한 음식으로 ‘두부간장조림’과 ‘솔잎찬밥’을 소개했다.

“식재료가 귀하던 시절 신도님들은 부처님께 음식을 공양 올리는 일이 종종 있었습니다. 두부를 판째로 올린다거나 가져온 쌀을 모두 밥을 지어 상단에 올리는 불자도 있었습니다. 그 많은 음식을 모두 소비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귀한 공양물을 버릴 수는 더더욱 없는 일이고,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두부간장조림과 솔잎찬밥입니다.”

두부간장조림은 두부를 한입 크기로 썰어 기름에 지져 물기를 완전히 뺀 후 끓인 간장물에 담가 놓는다. 이렇게 만들어진 두부간장조림은 한 달 이상 보관이 가능해 두부가 갑자기 많이 생기면 종종 활용했던 방법이다. 솔잎찬밥은 상단에 올린 밥이 식으면 솔잎즙을 끼얹어 다시 쪄놓으면 향도 좋고 오랫동안 변질도 되지 않는다. 비록 오래된 밥이어서 끈기는 없지만 그래도 향기로운 솔향기가 나서 먹을 만했다.

“부처님오신날이면 느티나무 새순을 뜯어 마치 쑥버무리 하듯 쪄내 대중에게 공양을 올리고, 된장찌개 하나를 끓여도 쑥이나 맨드라미 잎, 무청 등 건강한 제철 식재료를 넣어 정성으로 음식을 만들었습니다. 비단 사찰음식뿐 아니라 우리의 전통음식 모두가 천연의 재료를 사용한 생명의 음식이요, 온몸을 치유하고 살려주는 약식입니다. 더욱이 오신채와 육식을 사용하지 않는 깨끗하고 건강한 사찰음식은 현재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물론 미래세대를 위해 반드시 보전해야 될 문화유산입니다.”

정리=김현태 기자 meopit@beopbo.com

   
 

 

 


 
상덕 스님은

1968년 서울 청룡사에서 법성 스님을 은사로 비구니계를 수지했다. 동국대 승가학과, 경국사 불교연구원 대교과 등에서 수학했으며 미타사 정수암 주지, 서울 옥수종합복지관 관장 등의 소임을 맡고 있다.

[1356호 / 2016년 8월 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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