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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에 대한 예의

기자명 이중남

올림픽처럼 큰 국가대항 스포츠가 열리는 시즌이면 전국민은 열렬한 애국자가 된다. 지난주까지 아침에 눈을 뜨면 간밤에 무슨 재미난 경기 없었나 하는 궁금함에 텔레비전부터 켜기 바빴다. 하루는 펜싱 에페 금메달 소식에 다들 환호했는데, 여러 번을 봐도 누가 어디를 먼저 찔렀다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을 만큼 동작들이 빨랐다. 그래도 우리 선수가 이겼다는 결과는 기분 좋았고, 그 선수와 부모들이 독실한 불자라는 소식을 들은 뒤엔 뿌듯함이 더했다.

그런데 사전에 일면식도 없던 국가대표 선수들에게 우리가 느끼는 이 동질감의 원인은 무엇일까?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에 따르면 면대면(面對面) 접촉을 통해 친밀감으로 유지되는 공동체, 즉 어느 구성원이 다른 구성원 모두를 잘 알고 뒷담화를 수군대는 것이 가능한 자연적인 공동체의 최대 구성원 수는 150명이라고 한다. 이 수치를 넘는 사람들을 하나의 공동체로 묶으려면 자연적인 접촉만으로 안 되고 종교나 정치, 법률과 같은 ‘허구’, 즉 추상적인 요소에 대한 공통의 믿음이 있을 때에만 가능하다고 그는 주장한다.

어렸을 적 고무줄놀이에서 흔히 들었던 ‘대한의 노래’는 원제 ‘조선의 노래’를 업데이트한 것인데, 우리가 우리 겨레의 정체성을 어떻게 규정해왔는가를 잘 드러낸다. “백두산 뻗어나려 반도삼천리/ 무궁화 이 동산에 역사반만년/ 대대로 예사는 우리 이천만/ 복되도다 그 이름 조선이로세.”

백두산에서 시작하는 삼천리 영토, 대를 이어 반만년 간 공유해왔다는 집단 기억과 동질적인 문화, 배달 할아버지의 후손이라는 혈통주의. 그런 것들이 역사적 실재에 부합하는지 어떤지 모르겠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렇게 믿어왔다는 사실이다.

우리 사회도 어느덧 언필칭(言必稱) 다문화사회로 가는 병목을 지났다. 행정자치부가 발표한 ‘2015년 외국인주민 현황’에 따르면 90일 이상 국내에 체류하는 외국인은 174만을 넘는다. 연간 내국인 증가율의 25배에 달하는 수치다. 이제 반도 삼천리에서 태어나지 않은 사람, 우리와 다른 역사와 언어, 문화를 가진 사람, 피부나 생김새가 어딘지 좀 다른 사람들이 이 땅에서 함께 살아간다.

그렇지만 우리의 인식이 시대 변화를 잘 쫓아가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헌법재판소가 지난 2001년, 일제 치하에 중국 등지로 이주한 사람들을 재외동포의 범위에서 제외하고 해방 이후 미국 등지로 이주한 ‘한인’만을 재외동포로 규정했던 ‘재외동포법’에 대해 “민족적 입장을 차치하고라도 인도적 견지에서조차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없다”며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린 것은 이후 형성될 한국의 다문화 지형에 중대한 획을 긋는 사건이었다. 다문화 담론이 정부 주도로 도입되던 2005년 당시 주된 관심사는 ‘아이를 낳아주러 오는’ 아시아 출신 여성들이었던 만큼 이주여성을 다루는 법제 역시 비교적 관용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그러나 외국인 가운데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는 ‘단기순환’ 이주노동자들은 배려의 대상에서 늘 끝 순위다. 국적 취득 고사하고, 이들은 영주권 신청을 위한 국내 거주 요건 5년을 채울 수조차 없다. 최장 4년10개월이면 한국을 떠나도록 되어있기 때문이다. 굳은 일을 떠맡고 있지만, 극우 인종주의자들에게 아까운 일자리를 빼앗는 공적(公賊)으로 매도당하면서도 대꾸 한마디 못한다.

이주노동자 유입 초기의 야만적인 인권유린에 대한 반성으로 도입된 고용허가제마저 심각한 퇴행을 보이는 점은 우려스럽다. 특히 최초의 고용주가 해고하지 않는 한 1년간 직장을 옮길 수 없도록 제한하던 규정이 3년으로 늘어난 것은 사실상 자유계약의 원리 침식이며 강제노동 강요라는 비판은 아프게 새겨들어야 한다. 올림픽은 과정이 중요하다는 말을 흔히 한다. 이주노동을 둘러싼 현안 역시 국민경제상의 이익이라는 결과보다 인간에 대한 예의 준수라는 과정적 타당성을 엄수하며 풀어가야 할 이 시대의 숙제다.

이중남 마하이주민지원단체협의회 운영위원 dogak@daum.net
 


[1357호 / 2016년 8월 3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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