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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법과 호박범벅경

기자명 심원 스님

더워도 너무 더웠던 올 여름, 스님들이 모여서 법률 특강을 들었다. 이른바 ‘김영란법’ 특강이었다. 그게 신기하여 일간지들이 갖가지 제목으로 기사화 했다. 

‘스님들도 김영란법 열공 중’ ‘스님도 김영란법 적용 대상?’ ‘조계종, 종교계 처음으로 김영란법 특강’ ‘김영란법 공부하는 스님들…왜?’ 등등.

김영란법의 정식 명칭은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로 법안을 발의한 김영란(당시 국민권익위원장)의 이름을 따서 김영란법이라 부르는 것이다. 법에 사람 이름이 붙는 것은 세 경우로 나뉘는데, 발의한 사람의 이름을 딴 법안(김영란법, 오세훈법), 처벌 대상자의 이름을 딴 법안(조두순법, 전두환법, 유병언법), 또 사건 피해자의 이름을 딴 법안(최진실법, 신해철법) 등이다. 이외 드라마 주인공의 이름을 딴 ‘장그래법’도 있다. 법의 정식명칭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이름으로 별칭하는 이유는 이슈가 되는 인물로 세간의 관심을 야기시키고 여론을 형성해 법안 통과를 수월하게 하려는 목적이 크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사람이름을 딴 법안의 공통점은, ‘출가자의 비행이 있을 때마다 그것을 규제하는 금지조항을 만든’ 수범수제(隨犯隨制)의 승가 계율처럼, 어떤 사건이 발생하였을 때 그에 대응하여 만들어진 법안이라는 것이다. 김영란법의 경우, 당시 항간의 화제가 된 ‘벤츠 여검사’ 사건과 같이 고위 공직자가 금품과 향응을 받고도 직무관련성이나 대가성이 없다는 이유로 무죄를 받았던 사례들이 도화선이 되었고[隨犯],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관피아’(관료 마피아) 척결을 요구하는 여론이 확산되면서, 드디어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로 귀착된 것이다.[隨制]

필자는 김영란법의 제정취지에 원칙적으로 동의한다. 김영란법에 대한 헌재의 합헌 결정문에서 ‘세월호 참사와 같은 비극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한다는 취지에서 청탁금지법 적용 대상에 민간부문 중 사립학교 관계자와 언론인을 포함시켰다’라고 밝혔듯이, 개인의 사익을 위한 사소한 범법 행위가 결국 참사의 환경을 만드는데 일조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법안이 제정되는 과정에서 지엽적인 것에 치우쳐 본래 취지가 뒤로 밀려나고 있다. ‘2만9000원 김영란정식’ ‘식(食)파라치’ ‘3·5·10법(3만원이 넘는 음식 대접이나 5만원이 넘는 선물, 10만원 이상의 경조사비 처벌) 등과 같이 밥값과 경조사비 책정에 이목이 쏠려 본질이 희미해져 버린 것이다. 또 이 법의 적용 대상자가 언론계 종사자·사립학교 임직원까지 확대되고, 여기에 배우자까지 포함하여 40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다보니 ‘김영란도 조심해야 한다는 김영란법’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결코 근본취지를 망각해서는 안된다.

장덕진 서울대 교수의 말처럼 법안의 핵심은 개인의 사익을 위해서 한국 사회의 시스템을 갉아먹는 행위를 엄하게 처벌하는 것에 두어져야 한다.

또한 이 법이 위헌이라고 주장한 사람들의 말도 귀담아 들어야 한다. 자칫하면 ‘권력자에게 언론을 통제하는 수단을 허용해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고, 부부간의 불신을 조장해 가정을 파괴하며, 부정청탁의 개념을 모호하게 규정해 국민들의 일반적 행동자유권을 침탈하는 법’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운용의 묘가 절대 필요하다.

30여년 전에 입적하신 수덕사 방장 혜암(惠菴) 스님의 유명한 일화가 떠오른다.

평생을 ‘관세암보살, 관세암보살’하며 관음기도를 한 노보살님과 ‘관세음보살’이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젊은 보살님이 누구의 주장이 옳은 지 혜암 스님께 판결을 의뢰했다. 그런데 두 보살님은 자신에게 유리한 판결을 위해, 스님이 좋아한다고 알려진 호박범벅과 국수를 따로 몰래 뇌물로 올렸다. 이렇게 맛난 양쪽의 뇌물을 다 받아 잡수신 큰스님, 어떤 판결을 내리셨을까? “으흠, ‘호박범벅경’에는 관세암보살이 맞고 ‘국수경’에는 관세음보살이 맞느니라.” 하시고는 유유히 방장실로 들어가셨다.

김영란법 어떻게 적용해야 할까?

심원 스님 중앙승가대 강사 chsimwon@snu.ac.kr
 

[1358호 / 2016년 9월 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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