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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한승원 소설가

고독에 유배하니 상구보리 하화중생 달빛 속 유영하더라

▲ 여든을 바라보는 소설가 한승원은 자신의 글이 독자들을 깨달음의 길로 안내하길 바랐다.

“황혼의/비낀 빛살 아래/집 한 채 짓습니다.(…중략…)그 시원의 숲 속/옹달샘에 빠져 있는 달/바가지로 길어가지고 히들거리며 암자로 달려왔다가/사라져버린 그 달 때문에 슬피 울다가 죽어간/스님,/대취하여 강물 속의 달 건지려다가 익사한/이태백을/기리는/달 긷는 집.”(한승원 ‘달 긷는 집’의 ‘서시’ 중)

1966년 ‘가증스런 바다’로 입선
2년 뒤 신춘문예서 ‘목선’ 등단
소설 ‘아제아제~’ 널리 읽혀져

증심사에서 혼례 등 깊은 불연
불교와 직간접 관계 역사 인물
초의·원효·다산 등 창작으로
한승원 판 싯다르타 재해석도
‘사람의 맨발’로 출가정신 강조

문단 입문 50년 기념 준비 한창
장편·자선소설집 출간도 앞둬

▲ ‘사람의 맨발’
한승원 글/불광출판사
전남 장흥 해산토굴 아래 ‘달 긷는 집(한승원문학학교)’에 객이 들었다. 선경(禪境) 옆 돌계단 올라 견월정(見月亭)을 건너도 인기척 하나 없었다. 그는 반쯤 마당 쪽으로 큰 창문 열고 늦여름 매미울음, 아직 더운 바람 곁에서 글을 읽고 있었다. “밥은 먹었어요?” 어색함 비집고 찾아온 허물 없는 첫 소식이 정겹다. 안경 너머로 달빛 담은 눈이 끔뻑였다. 소설가 한승원(79)이다.

“더워서 ‘달 긷는 집’으로 피서 왔어요. 제가 명명했는데 예쁘지요? 달은 진리를 상징하고 최고 아름다움의 경지를 뜻합니다. ‘달 긷는 집’은 참된 삶이 어떤 것인가를 알고 가는 집입니다.”

그는 고향에 빚 갚는 심정으로 글을 써왔다. 1966년부터 무려 50년 동안 그래왔다. 자신이 나고 자란 어머니 품에 대한 그리움일까. 첫 작품을 태생시킨 고향이기 때문일까.

고등학교 졸업 시험 치르고 담임에게 말도 없이 고향으로 갔다. 대학 갈 생각이 없어서다. 사실 형은 군대에 갔고, 아버지는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한쪽 다리가 불편했다. 논농사하고 김양식도 하면서 가정을 일으키고 소설도 쓰면 된다고 여겼다. 3년 동안 죽어라 일했지만 창작까지 하기에 버거웠다. 오직 글쓰기에만 마음을 두다 보니 갈 수 있는 대학도 적었다.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로 진학하면서 숙연이 싹텄다. ‘무녀도’ ‘역마’ ‘등신불’로 유명한 김동리 선생을 스승으로 만났다. 훗날 그는 소설 ‘원효’로 스승인 김동리 이름을 딴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순수문학정신을 배웠어요. 늘 소설 들고 가서 괴롭혔던 분입니다. 그러나 작품 질이 떨어져도 꼼꼼하게 짚어가며 가르치셨지요. 군 제대 후 찾아가 뵙고 ‘이만 가겠습니다’ 인사드리면, 꼭 대문 밖까지 나와 ‘잘 가거라’하시며 다정하게 배웅하셨어요. 소설도 그렇게 배려심 깊었습니다. 얼마나 힘들게 써왔는지 아시는 겁니다. 후배들에게 아주 조심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는 교사로 재직하면서 글을 썼다. 1968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당선작 ‘목선’으로 등단했다. ‘목선’은 갯마을 사람들 이야기다. 아버지 대신 김양식하고 쟁기질하며, 새끼 꼬아 김발 엮고 김 말뚝 박던 갯바닥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다. 소설가를 꿈꾸던 시절의 성장소설이다. 주인공 이름도 승원이다. 그렇게 그는 분신들을 뚝뚝 떼어내 작품들을 창작했다. ‘피플 붓다’(랜덤하우스, 2010) 주인공 상호도 일류대학에 진학하길 바라는 어른들 소망을 어기고 문예창작과에서 소설과 시 쓰기를 꿈꾼다. 소설 ‘불의 딸’ ‘포구’ ‘아버지와 아들’ ‘해일’ ‘시인의 잠’ ‘동학제’ ‘아버지를 위하여’ ‘해산 가는 길’ ‘멍텅구리배’ ‘물보라’ ‘흑산도 가는 길’ ‘키조개’ ‘겨울잠 봄꿈’ ‘사랑아, 피를 토하라’도 마찬가지다. 주인공은 그의 분신들이다. 불자들에게 널리 알려진 ‘아제아제 바라아제’ ‘초의’ ‘원효’ ‘추사’ ‘다산’ 역시 자신이 투영됐다.

그는 스님이거나 불교와 직간접적으로 인연 깊은 역사인물도 소설 속 주인공으로 등장시켰다. 종교적 색채 걷어내고 생에서 부딪히는 여러 문제들을 고뇌하며 이겨내는 인간의 생명력이라는 밑그림에 상상이라는 물감을 뿌렸다. 그는 “불교와 인연 맺은 결과물”이라고 했다.

“증조모님은 돌아가실 때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염불을 하라고 했답니다.  참, 서라벌예대서 도안 스님(전 LA관음사 주지, 2006년 8월 입적)을 친구로 만나 반찬과 용돈 떨어지면 스님이 주지로 있던 절에서 일주일이고 한 달이고 기식했던 기억도 잊지 못할 인연입니다.”

고교 졸업 뒤 집에서 농사 지을 때였다. 낮잠 자던 그의 귓가에 목탁과 염불소리가 들렸다. 잠결이라지만 청아했다. 한 여름, 시원한 바람이었다. ‘문학병’에 시달리던 그해 겨울, 그는 핫바지에 털 점퍼 걸치고 천관사에 올랐다. 절 분위기가 마음에 들면 한 달쯤 머물며 소설 좀 써볼 요량이었다. 그 무렵 자신을 어딘가에 가두고 부리고 싶었다. 마음대로 자신을 부리고 확실한 주인노릇을 하고팠다. 비탈진 길 따라 굽이굽이마다 들솟아 있는 억새풀, 띠풀, 사리풀들이 겨울 찬바람에 몸부림치며 울어댔다. 폐허나 다름없던 천관사에서 황토로 지은 요사채 한 채가 움막처럼 엎드려 있었다. 그 도량 금빛 부처님이 반개한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억새숲 울음이 황량한 도량과 그의 마음을 헤집고 다녔고, 그는 하산했다. 그 바람소리는 지금도 그의 가슴에 머무르고 있다. 훗날 그가 광주 증심사 부처님 앞에서 혼례 올리고 ‘아제아제 바라아제’를 쓰고, 서재 한 복판에 부처님 모시고 사는 것이 다 그 바람 탓(?)이다.

황량해서 더 절절했던 불연의 바람은 오랜 숙원으로 이어졌다. 싯다르타의 출가정신을 담은 소설을 세상에 내놨다. ‘사람의 맨발’(불광출판사, 2014)이다.

“영혼의 스승인 석가모니 부처님의 삶을 소설로 써보는 것이 오랜 큰 소망이었죠. 여행 중 와불의 맨발을 보곤 했는데 의문이 들었어요. 길 위에서 태어나 평생 온 세상의 길을 맨발로 걸어 다니며 사람의 길에 대해 가르치다가 길 위에서 열반한 석가모니 부처님의 ‘맨발’이란 무엇인가. 싯다르타는 신과 악을 거부하고 고독한 인간을 구제하려고 출가했습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은 인간의 오만이 아니라 인간이 절대고독자임을 뜻하지요. 그 출가정신을 말하고 싶었어요. 정글 같은 세상 속에 싯다르타 맨발은 장엄한 출가정신 표상입니다.”

싯다르타는 출가 전 커튼, 침대, 이불과 베개, 식탁과 은식기와 천천히 작별인사를 나눈다. 70년 넘게 살아온 소설가 자신의 인생을 정리하는 마음을 담았단다. 그(싯다르타)는 권력을, 명예를, 사치를, 안락을, 관행을 내려놓았다.

맨발은 멋진 신발로 상징되는 탐욕 벗은 발이었다. 맨발은 ‘나는 이렇게 살아왔다. 그대는 어떻게 살아가겠는가?’ 메시지였다. 부처님이 관 밖으로 쑥 내민 맨발이 고하는 일갈이다. 가섭은 어흑어흑 울었다. 연꽃 하나 들어 올릴 땐 스승과 함께 미소 지었고, 이제는 울었다. 말이 떠난 자리에서 피어난 깨달음의 꽃이다.
맨발은 한승원 그가 닮고 싶은 발이자 인생이다. 그는 스스로를 다산처럼 절대고독에 가두고 그 감정을 글로 승화시키고 싶다. 자신을 해산토굴에 유배시켰다. 부처님은 입멸 전 아난에게 스스로 등불 켜고 나아가라고 했다. 한승원은 “글 쓰는 행위가 깨달음 구하는 길이며 중생과 함께 하는 길이자 제 등불”이라면서도 “아직도 석가모니 가르침 속에서 헤엄치고 있다”고 고백했다. 그는 시 ‘석등’에 이렇게 썼다.

“내가 토굴 입구에/무위사의 석등을 세우고 그 속에/백열전구 넣어 밤마다 밝히는 뜻은// 나의 삶이 누군가의 미망을 밝히는/등불이기를 희망하며 살아왔음을/나에게 증명하고 싶어서입니다.”

한승원은 한국문학 거목으로서 든든한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그의 문하에서 많은 작가들이 배움을 청하고 있다. 등단에 앞서 2년 전인 1966년 ‘신아일보’에 ‘가증스런 바다’로 입선했으니 한승원이 문단에 이름을 내민 지 50년이 됐다. 곧 ‘달개비꽃 엄마’(문학동네, 2016)라는 50주년 기념장편소설이 나온다. 위즈덤하우스에서는 대담집과 자신이 가려 뽑은 소설집도 출간된다. 10월8일 장흥에서는 후배들이 축하를 건넨다. 아들 한동림도 소설과 동화를 쓴다. 딸 한강은 ‘채식주의자’로 노벨문학상, 콩쿠르 문학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맨부커상을 수상한 첫 한국인이 됐다.

한승원, 해산토굴과 ‘달 긷는 집’서 길을 찾을 수 있을까. 어둠 내리자 달빛 형형하고, 풀벌레 소리 청아하다. 그는 나뭇가지 사이로 달 엿보다 문득, 해산토굴 연못에 비친 달이 탐났으리라. 풍덩! 달빛에 취했을까, 익사했을까. 절대고독이란 집 짓고 스스로를 유배시키자 비로소 그는 상구보리 하화중생이라는 달빛 속에서 자유롭게 헤엄쳤다.

한승원은 마당까지 나와 객을 배웅하며 합장했다. ‘달 긷는 집’ 밖으로 불쑥 내민 ‘사람의 손’이었다.

최호승 기자 time@beopbo.com

 

한승원 소설가 추천도서

 
‘그리스인 조르바’/  카잔차키스/ 열린책들
그리스 대문호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장편소설로 호쾌한 자유인 조르바가 펼치는 영혼의 투쟁을 풍부한 상상력으로 그리고 있다. 한승원은 ‘인간의 자유’를 추천이유로 내세웠다.
추천도서 모두 인간과 자연의 생명력을 그리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그가 창작한 여러 소설을 관통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자기 앞의 생’/ 로맹 가리/ 문학동네
“꿈을 가지고 살아가는 주인공 모모가 인간의 생명력을 토대로 아름다운 삶을 펼쳐나간다.”
소설가 한승원이 첫 번째로 꼽은 추천도서다. 러시아 이민자 출신 유태인 ‘휴머니즘 작가’ 로맹 가리가 썼다. 실제보다 많은 나이를 살고 있는 열네 살 모모는 소외된 사람들을 통해 슬픔과 절망을 딛고 살아가면서 삶을 껴안고 상처까지 보듬는 법을 배운다.

 

 

 
‘아들과 연인’/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 민음사
영국 작가 로렌스는 생전 세상의 편견으로 대접받지 못했다. ‘아들과 연인’은 자서전적인 소설로 영국 노동자 계급의 생생한 가족 풍경 속 인간관계의 미묘한 심리 변화를 형상화 했다.
한승원은 “‘채털리 부인의 사랑’ 등 성적 묘사가 짙다는 편견이 있다”면서도 “그러나 인간의 생명력을 부정하는 문명을 바라보는 비판적 시선이 놀랍다”고 했다.

 

 

 

 

‘황금 물고기’/ 르 클레지오/ 문학동네
“자연친화적인 소설이다.”
한승원 소설가는 한 마디로 추천을 압축했다. ‘황금 물고기’는 프랑스 현대문단의 살아있는 신화로 불리는 르 클레지오가 그린 물고기처럼 순진무구한 천진성과 강한 생명력을 지닌 한 소녀의 역경에 찬 성장기다.
아프리카에서 태어난 라일라는 인신 매매범들에게 납치돼 아랍, 프랑스, 미국을 떠돌다 아프리카로 돌아오는데….

 

 

[1358호 / 2016년 9월 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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