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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으로 수단 정당화하려는 것은 부당

몇 군데 모임에서 필리핀 두테르테 대통령의 ‘마약과의 전쟁’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런데 우연인지 몰라도 그 이야기들의 대부분이 두테르테 대통령을 칭찬하는 발언들이었다. “우리나라도 속 시원하게 그런 강력한 정책을 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의견들이었다. 들으면서 우리나라가 이렇게 극단적인 정책에 대한 갈증이 있을 정도로 갑갑함이 누적되어 있었는가 하면서도, 이런 방식의 사고가 갖는 위험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필자로서는 필리핀의 상황에 대해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지 못하기에, 지금 벌어지고 있는 ‘마약과의 전쟁’에 대한 적절한 평가를 내릴 입장이 되지 않는다. 한편으로는 사람의 목숨을 함부로 다루어서는 안 된다는 일반론을 생각하게 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마약과 관련된 필리핀의 상황이 정말 그와 같은 극약처방이 필요할 정도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도 된다. 보편적인 가치, 일반적인 원칙을 쉽게 포기해서는 안 되는 것이 틀림없지만, 정말 최악의 상황에서는 그런 일반론에 얽매어 상황이 돌이킬 수 없는 파국에 이르도록 해서도 안 될 것이다. 그러하기에 간접적으로밖에 알 수 없는 필리핀의 사태에 대해 쉽게 말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렇지만, 아니 그러하기에 오히려 그런 외국의 예를 쉽게 우리나라에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들에 대해서는 경각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우리가 잘 모르는 외국에 대하여 함부로 평가하는 것을 삼가야 하는 것처럼, 전혀 상황이 다른 우리나라에 외국의 실례를 그대로 적용시키려 하거나, 외국과 비교하여 우리나라를 재단하고 평가하는 것 또한 섣부른 짓이다. 무엇보다도 필리핀의 ‘마약과의 전쟁’은 상당히 극단적인 사례에 들어가는 일이요, 그런 극단적인 사례에 대하여는 아무리 신중하게 그 득실을 따진다 해도 지나치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필리핀에서 행해지고 있는 ‘마약과의 전쟁’은 목적과 수단의 관계에 대한 극단적 관점이 내재돼 있다. 올바른 목적을 위해서는 어떤 수단을 동원해도 괜찮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이 생각은 일반론으로 말하면 매우 위험한 것이요, 함부로 동의해서도 안 되는 명제이다. 목적과 수단은 일종의 정합성을 가지고 연결되어야 한다. 목적으로 추구하는 것과 반대되는 요소는, 가능하면 그 목적을 달성하는 수단에 포함시키지 않아야 한다. 마약을 일소하려는 목적에는 분명 마약이 인간의 존엄성을 떨어뜨리고, 생명을 해친다는 판단이 있다. 그것이 사회악이 되는 이유도 궁극적으로는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인간의 존엄성, 생명 존중의 사상이 그 목적에 깊게 연관되어 있다. 그런데 그 목적을 위한 수단에 생명을 가볍게 여기는 요소가 많다면 분명히 목적과 수단 사이의 정합성이 깨지고 마는 것이다. 자칫 이런 수단을 사용함으로써 생명을 가볍게 여기는 풍조가 일반화된다면, 혹 마약으로 말미암은 폐해보다 더 큰 위험이 닥칠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러한 정합적이지 않은 목적과 수단의 관계를 정당화하고 용인하기 위해서는, 지금 필리핀의 사태가 그러한 원칙론에 연연하다가는 도저히 회복할 수 없는 치명적인 파국을 맞을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 정당화되어야 한다. 과연 그러한 지경인지를 모르기에 두테르테 대통령의 정책에 대해 섣부른 평가를 내릴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어떠한 수단을 사용한다는 것은 단지 일과성의 문제가 아니다. 가능하면 올바른 수단을 사용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도록 해야 한다. 우리의 가까운 역사에도 독단적으로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목적이라고 내세우면서 바르지 않은 절차와 수단을 쉽게 끌어다 썼던 아픈 과거가 있다. 한때의 인기에 영합하는 그럴듯한 목적, 여론몰이로 급조한 목적을 내세우며 부당한 짓을 저지르던 권력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권력들이 가장 쉽게 사용한 방식, 그것이 바로 목적으로 수단을 정당화하려는 방식이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남의 나라 일이라고 가볍게 말하기보다, 빠른 시일 안에 필리핀도 목적과 수단이 정합성을 가지게 되는 상황으로 호전되기를 기원해야 할 것이다.

성태용 건국대 철학과 교수 tysung@hanmail.net

[1360호 / 2016년 9월 2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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