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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북한산 서암사-상운사-원효봉-원효암

원효봉이 호지해 온 천연의 부처님을 친견하다

▲ 북한산 원효봉. 치마처럼 넓게 퍼져 있는 암벽 위에 부처님이 가부좌를 틀고 계시다. 치마바위 기준으로 오른쪽(사진 왼쪽)으로 길게 늘어 선 바위 위에 원효암과 산신각이 자리하고 있다.

새벽 5시 50분. 서울 구파발 북한산성 입구 주차장에 서서 동녘의 빛을 기다린다. 일출시간은 6시 32분. 20분 기다렸으니 40분만 더 기다리면 산이 내어 보일 것이다. 태고 때부터 호지해 왔던 부처님을!

원효봉이 솟은 후 나투신 부처님
여신이 조성한 치마바위 위 정좌
서암사는 1925년 홍수로 매몰 후
사라졌다 2006년부터 복원 시작

영취봉 밑 상운사서 본 풍경 일품
원효대사가 정진했던 원효암 전각
진영 속 글없는 경전이 세간 경책

원효봉과 만경대, 노적봉은 어둠속에서도 짊어 온 세월의 무게를 전하려는 듯 시커먼 등뼈를 꼿꼿이 세우고 있다. 아주 작은 불빛 하나! 원효봉 7부 능선 부근서 새어 나오는 빛, 원효암이다. 얼핏 스쳐가는 기억만 해도 저 원효암 다섯 번은 찾았더랬다. 수도권에 머무르는 덕분이다. 100여 미터 앞에 있는 북한산성 탐방지원센터를 거쳐 저 산줄기 탄 것만도 20회는 족히 될 터! 백운대와 만경대를 비롯해 의상, 나한, 문수, 승가봉을 참 줄기차게 올랐더랬다. 허나,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의상봉과 마주한 원효봉이 솟은 후 나투셨다는 부처님을! 고백컨대 이 사실을 안 건 불과 하루 전, 정확히 10시간 전이다. 인터넷 서핑을 하다 우연히 건져 올린 대어!

▲ 상운사 전경. 영취봉 아래에 자리하고 있다.

‘북한산 아래서 원효봉을 이루는 산을 올려다보면, 부처님이 앉아계신 모습이 보인다. 그 위로 원효봉의 봉우리는 닫집처럼 지붕을 이루었고, 아래쪽으로 치마바위는 좌대를 형성하였다.’(문화콘텐츠닷컴 ‘원효암1’)

새벽을 밝히려는 황금빛이 만경대 너머로부터 건너온다. 원효봉에 깔렸던 어둠도 서서히 걷혀간다. 깎아지른 암벽.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넓고 길게 난 모양새가 영락없이 딱 치마다. 저 치마바위를 좌대로 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아! 부처님은 그 치마바위 중앙 상단에 앉아 계셨다. 원효암 바로 옆에 치마바위가 있고, 그 치마바위를 좌대 삼아 허리 꼿꼿이 편 채 당당하게 앉아 있다. 바람과 비가 빚은 천연의 부처님! 2500여년 전 인도의 싯다르타가 연기법을 깨달으시기 훨씬 이전부터 저 자리에 나투셨던 부처님이시다.

아침 7시. 똑 같은 형상도 빛에 따라 달리 보인다고 했다. 넉넉히 잡아도 1시간 후면 빛은 원효봉에 가득 들어 찰 터. 음영과 역광이 살아 있을 때 부처님을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보고 싶어 걸음을 재촉한다.

▲ 북한산성과 영취봉.

북한산둘레길 10구간(효자동)으로 이어지는 다리 앞에서 산을 바라본다. 나뭇잎 사이로 보이는 부처님. ‘나 여기 있다’ 하시는 듯해 절로 미소가 번진다. 계곡 따라 흐르는 물소리 너무도 청량해 마음에 담아 두려하니 이내 복원불사가 한창인 서암사에 이른다. 절은 북한산성 축성(1711) 이후 산성 안에 지어진 13개 사찰 중 하나였다. 광헌 스님의 주도로 절이 세워졌는데 당시만 해도 133칸 규모의 사찰이었다고 한다. 1925년 7월 대홍수로 인해 매몰돼 자취를 감췄다가 혜안 스님 원력으로 2006년부터 복원불사가 시작됐다. 원효암이 부처님 곁에 있다면 서암사는 부처님 바로 아래에 자리하고 있다. 여기서 원효봉을 올려 보면 부처님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다. 삼배 합장을 올린다.

경사도가 제법 되는 원효봉 오르는 길에 숨도 한 번 돌릴 겸 상운사로 잠시 길을 튼다. 200m 거리에 있으니 왕복 400m. 들어서 보니 산책길로도 손색없는 평지길이면서도 그윽한 숲길이다. 절은 원효봉이 아닌 바로 옆 영취봉 아래에 자리하고 있다. 3층석탑서 바라보는 북한산 풍경이 일품이다.

▲ 원효봉서 바라 본 북한산. ①영취봉 ②백운대 ③만경대 ④노적봉.

산 오른 나그네 편히 앉아 쉬라는 듯 원효봉은 오늘도 넓은 자리를 내어 주었다. 삼각산의 두 봉우리인 백운대와 인수봉, 노적봉과 함께 의상봉을 시작으로 한 의상능선이 한 눈에 들어 온다. 백운대와 만경대는 모두 쥐라기 말에 솟았다. 쥐라기가 약 2억 1000만 년 전에 시작 해 1억 4000만 년 전 쯤에 끝났다 하니, 1억 7000만 년 전 즈음 북한산이 선 셈이다. 백운대 바로 아랫자리를 차지한 영취봉과 원효봉 또한 그 즈음 솟지 않았겠나. 북한산 비바람, 그 얼마나 많은 시간과 공을 들였기에 저토록 또렷한 부처님을 조각해 냈을까! 1000만 년, 2000만 년, 5000만 년?

원효암은 암벽과 절벽 사이에 간신히 놓여 있다. 사람 한 명 들어설 수 있는 작은 문 바로 옆에 대웅전이 있다. 바위능선 사이로 길게 난 절개지를 따라 약수터와 산신각이 늘어서 있는데 정말이지 암벽에 붙어 있다는 표현이 적확하다. 확인할 게 있어 대웅전 참배에 앞서 산신각부터 찾았다. 그렇다. 산신각 내부 바위에 그려진 산신은 우리가 늘 보던 할아버지가 아니라 여신이었다.

▲ 원효봉서 바라본 의상능선 전경. ①의상봉 ②용출봉 ③용혈봉 ④중휘봉 ⑤나한봉 ⑥문수봉.

저 여신이 이 산에 어찌 들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그 어느 날, 여신은 자신의 치마로 암벽을 조성하고는 부처님께 공양했다. 그 공양물을 받으신 부처님은 친히 좌대 위에 오르시고는 가부좌를 틀었다. 여신이 올린 치마바위가 연화좌(蓮華座)로 변하는 순간이다.

일설에는 산신이 그려진 저 바위가 원효 대사가 앉아 정진했던 바위라고도 한다. 이 암자에  원효 대사가 머물렀다는 기록이 있고, 원효대사가 지팡이로 뚫었다는 약수터가 산신각 바로 옆에 있는 점을 감안하면 설득력 있는 설이다. 산신각 문을 닫고 돌아보니 얼핏 치마바위의 일부분이 보인다. 순간 뇌리를 스쳐가는 무언가가 있었다. 아!

▲ 원효암에 봉안된 원효대사 진영. 그림 속 ‘글 없는 책’이 이색적이다.

이 암자에 오르면서도 원효 대사는 ‘이 터를 어찌 찾아냈을까?’ 하는 궁금증이 늘 따라붙었는데 오늘에야 떨쳐낼 수 있겠다. 원효 대사도 그 언젠가 북한산을 찾았을 때 오늘 산행의 출발점이었던 북한산성 입구에 닿았을 것이다. 그리고 왼쪽에 솟아 난 봉우리를 보고는 단박에 저 부처님을 찾아냈을 터. 그 부처님 좀 더 가까이 친견하고자 이리저리 길을 찾다 이 터를 발견하고는 움막을 짓고 가부좌를 틀었을 게다.

▲ 원효 대사가 지팡이로 뚫었다는 약수.

여기 어디 쯤 앉아 북서쪽을 바라보던 원효대사는 사하촌 아랫마을에서 상서로운 기운이 일어나는 것을 직감하고는 산을 내려온다. 발길이 닿은 곳에서 석조 약사여래를 발견한 원효대사는 그 자리에 작은 법당을 마련 해 약사여래상을 모셨다. 그리고는 선언했다. ‘상서로운 빛이 일어난 곳이니 향후 많은 성인이 배출될 것이다.’ 하여, 절 이름을 흥성암(興聖庵)이라 했다. 오늘의 흥국사다. 나뭇잎이 다 떨어지면 흥국사도 시야에 들어올 게다.

▲ 원효암 대웅전 전경.

대웅전 문을 열고 부처님께 예를 올리고는 원효 대사 진영에도 삼배를 올렸다. 원효 대사의 서원이 있었기에 오늘의 이 암자도 서 있고 나그네들의 발걸음도 이어졌던 게 아닌가. 순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진영 속 경탁에 놓인 책. 불경이나 논서일 게 분명한데 아무 것도 쓰여 있지 않다. 수행자이자 당대 세계 최고의 저술가였던 원효 앞에 놓인 책에 그 어떤 글씨도 없다니! ‘문 없는 문’이요 ‘글 없는 책’이다. 그 누가 그렸나. 원효 대사의 심중을 적확히 꿰뚫은 화공만이 그려낼 수 있는 진영이다.

산을 내려오는 내내 원효 대사의 일성이 가을바람을 타고 귓가를 스쳐간다.

“비워라!” 

채문기 본지 상임논설위원 penshoot@beopbo.com

 

[도움말]


 

길라잡이
들머리는 서울 진관동 북한산성 입구. 100여미터 걸으면 두 길이다. 왼쪽 길은 계곡탐방 길이고 오른 쪽 길은 찻길. 왼쪽 길로 들어서면 바로 다리가 보이는데 건너지 않고 계곡을 따라 백운대 방향으로 걷다보면 북한동역사관(쉼터)에 이른다. 오른쪽 길은 노적사 방향이고 왼쪽 길이 백운대 방향이다. 왼쪽 길로 들어선다. 백운대와 원효봉(상운사)으로 갈라지는 분기점에 이르면 원효봉으로 이어지는 왼쪽 길을 택해야 한다. 원효봉 정상서 원효암으로 가려면 큰 바위 하나를 넘어야만 하는데 노약자에게는 다소 위험 하다. 서암문서(시구문) 10분 정도 내려오면 북한산 효자동 둘레길 분기점. 왼쪽 길을 택하면 들머리였던 구파발 북한산성 입구에 닿는다. 등산 시간은 2시간 30분. 하산 시간은 약 1시간 20분.


이것만은 꼭!

 
서암사: 서울 북한산 북쪽 수구문 일대의 산성을 지키던 승병들이 머물렀던 절로서 북한 산성 내 13개 사찰 중 하나다. 1925년 7월의 대홍수로 매몰됐다. 2006년부터 발굴 및 복원불사가 시작됐다. 한 번쯤 임시 법당을 찾아 참배해 봄직하다.

 

 

 
상운사 3층석탑: 고려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석탑 부재들을 모아 1999년 쌓은 탑이다. 석탑 옆 약사굴에는 조선 전기 조성된 것으로 전해지는 불상이 있다. 대웅전 앞 천불전에는 조선후기 목조아미타삼존불상이 봉안돼 있다.

 

 

 

 
원효암 산신각: 산신각 내부 바위에 호랑이와 함께 여산신이 그려져 있다. 대부분의 산신이 할아버지 모습인데 이와 달리 여산신이어서 이색적이다. 산신이 그려진 바위가 원효대사가 앉아 수행하던 바위라는 설도 있다.  

 

 

[1362호 / 2016년 10월 1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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